부모 손에 이끌려 여러 차례 정신병원에 입원했지만 자해 소동 끝에 병원 문을 나와야 했다. 먹고 토하는 게 하루 일상인 소녀는 결국 입시를 앞두고 학교도 휴학했다.
신경성 식욕부진증(거식증)에 걸린 그녀는 그렇게 조금씩 말라 죽어가고 있었다.
보다 못한 부모는 지인의 소개를 받아 청소년 담당사제를 찾아갔다.
"신부님, 제발 우리 딸 좀 살려주세요."
아무 말 없이 부모의 하소연을 듣던 신부가 입을 열었다.
"전 의사가 아니어서 따님을 살릴 능력은 없지만 친해질 수 있는 기술은 있습니다."
신부는 이후 3개월 동안 숨어서 소녀를 관찰했다. 부모의 요청이 아닌 우연히 마주친 것처럼 접근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대인기피증이 심한 소녀는 끝내 마음을 열지 않았다.
결국 부모는 신부를 집으로 초대해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소녀와 친해진 신부는 어느 날 소녀에게 농담처럼 가볍게 한 마디 던졌다.
"내년(2011년)에 스페인에서 세계청년대회가 열리는데, 너 거기 갈래?"
하지만 소녀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하루하루 사는 것도 힘든데 그 먼 곳까지 갈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날 때마다 신부가 전해주는 세계청년대회 이야기를 들으며 조금씩 호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지금 이 체력으로는 무리'라는 의사의 진단은 오히려 '꼭 가고야 말겠다'는 오기를 불러일으켰다. 그 때 신부가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몸무게를 40kg로 만들어 오면 데려갈게."
이 말을 들은 소녀는 제 발로 병원에 찾아가 입원했다. "세계청년대회에 가면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소녀는 회고했다.
몇 개월간의 견디기 힘든 치료를 받은 끝에 소녀는 당당한 모습으로 신부 앞에 나타났다. 그녀의 몸무게는 약속한대로 40kg가 넘었다.
소녀의 기대대로 2011년 스페인에서 열린 세계청년대회는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하루에 수십 km씩 걷는 힘든 여정 속에서도 웃으며 서로 안아주고 격려하는 전 세계 청년들과 어울리면서 소녀는 자신이 살아야할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이후 소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학교에 복학한 소녀는 교내 마라톤대회에서 1등을 할 정도로 건강해졌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미국 워싱턴주립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있는 소녀는 전공을 의학으로 바꾸는 문제를 고민 중이다. 전공을 바꾸려는 이유에 대해 소녀는 웃으며 말했다.
"저와 같은 병에 걸린 사람은 제가 가장 잘 고칠 수 있을 것 같아요."
먹는 문제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청년대회를 계기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이 소녀는 15일 프란치스코 교황과 같은 식탁에 앉아 점심식사를 한다. 교황을 만나면 무슨 얘기를 하고 싶냐는 질문에 소녀는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었다.
"'내년에 유럽여행을 가기 위해 지금 돈을 모으는 중인데 로마에서 교황님을 찾아가면 점심 한 끼 사주실 수 있나요?'라고 물어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