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이 합의 파기에 따른 정치적 부담을 각오하고서라도 여당에게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는 형국이다.
야당이 여당에 매달리면 매달릴수록 결국엔 그 정치적 부담은 여당이 지는 '정치적 역설'이 나타날 공산이 커지고 있다.
여·야 원내대표는 지난 7일 세월호 특별법을 합의했다.
새누리당은 반겼고, 새정치연합은 뜨악했다.
그때부터 유가족들은 세월호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지 않은 세월호 특별법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며 단식농성을 강화하고 있다.
새정치연합의 정동영 고문과 천정배 전 의원 등이 원외임에도 협상은 잘못됐다며 재협상의 불을 지폈고, 초재선 의원들을 중심으로 강경파 의원들이 가세했고, 11일에는 시민단체들도 합세했다.
실무적인 판단만으로 덜컥 합의한 박영선 원내대표는 당황했고 유가족들을 수차례 만나 설득했으나 실패했다.
세월호 특별법 합의는 유가족과 시민단체, 야당의 강경파 의원들이 합세하면서 11일 오후 사실상 파기됐다.
이날 오후 열린 새정치연합 의원총회는 특별법의 합의를 파기하고 재협상을 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참석 의원 70여명 가운데 30명가량이 발언대에 섰고 합의를 전면 무효화하라는 강경론이 의원총회장을 지배했다.
황주홍 의원은 "박영선이라는 강경파가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으나 동료 강경파들이 벌떼처럼 대들었다"고 의총장의 분위기를 전했다.
강경파가 당론을 좌지우지하는 새정치연합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줬다.
새누리당의 한 최고위원은 "새정치연합과 협상을 해 타결을 지어도 당 내 강경파 의원들이 흔들어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이런 상황에서 야당 누구와 어떤 합의를 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이명박 정권, 박근혜 정권 하에서 여·야 관계가 원만했다는 김무성-박지원 체제에서도 민주당(새정치연합 전신)의 강경파들은 여·야 합의를 수시로 뒤엎어버렸다는 게 새누리당의 판단이다.
◈ 與, '새정치연합은 강경파 주도의 당이 됐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이런 야당의 강경한 분위기에 대해 마땅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이완구 원내대표가 박영선 원내대표와 오늘 어떤 합의를 한다고 할지라도 야당 의원총회에 가면 또 거부될 텐데 뭘 합의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따라서 여·야 원내대표가 12일 만나 세월호 특별법에 대해 재협상을 한다고 하지만 쉽지 않는 국면이다.
새누리당이 야당에 아직은 양보할 자세가 안됐다.
이완구 원내대표는 이날 아침 YTN 라디오에 출연해 "신뢰문제가 깨지니 앞으로 어떻게 운영할지 막막하다"며 "(야당의 합의 파기에 대해) 충격적이며 원칙을 지키며 하겠다"고 말했다.
세월호 특별법 T/F팀 간사인 홍일표 의원도 이날 아침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야당을 요구를 들어줄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새누리당도 유가족들과 새정치연합 강경파들의 가장 큰 요구사항인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주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강경론이다.
◈ 새누리, '수사권과 기소권'은 수용 불가
수사권과 기소권 부여 문제는 절대 들어줄 수 없다는 것이다.
여·야가 합의할 수 있는 쟁점은 특별검사 야당 추천권과 김기춘 비서실장, 정호성 제1부속실장의 청문회 증인 채택문제 정도다.
새누리당 한 핵심 관계자에게 이날 아침 전화를 걸어 '특검 추천권을 양보하는 게 어떠냐'고 물었더니 "특검추천권을 준다는 것 자체에 대해서도 당내 반대가 많다"며 "그것 주면 될 것 같으냐"고 반문했다.
야당에 대한 불신이 깊음을 내비친 발언이다.
세월호 청문회에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과 정호성 제1부속실장을 세우는 증인 협상 부문도 청와대를 변호하는 여당으로선 수용하기 어려운 난제라고 말한다.
유가족과 야당이 요구하는 어느 것 하나 타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국회 공정과 대치정국이 계속될 공산이 커졌다.
야당 지도력은 거의 공백상태라 세월호 특별법 국면을 타개할 힘이 없고, 그렇다고 힘 있는 여당이 야당의 요구를 쉬 받아줄 것 같지도 않기 때문이다.
박영선 원내대표이자 비상대책위원장의 입지도, 지도력도 유가족들과 당 내 강경파들에게 휘둘리고 있는 상황이어서 유가족을 설득할 힘도, 강경파들을 진무할 힘도 없어 보인다.
야당 지도부(누가 야당 지도부일지라도 마찬가지이겠지만)가 어찌할 수 없는 국면으로 빠진 만큼 세월호 특별법 해결의 공은 새누리당이 받을 수밖에 없게 됐다.
좋든 싫든 새누리당 지도부, 김무성 당 대표와 이완구 원내대표가 풀 수밖에 없는 여의도의 현실이다.
안 풀고 버티면 국회 공전은 계속되고 민생법안 하나도 처리할 수 없다.
13일 본회의를 열어 세월호 특별법과 민생법안을 처리하자는 합의는 물거품이 됐다.
당장은 야당에게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겠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정치 무력화에 대한 책임론이 여당에게 돌아간다.
김무성 대표와 이완구 원내대표가 결단을 내린다고 하더라도 당 내는 물론이고 청와대를 설득해야 하는 부담을 지게 된다.
결단을 한다고 할지라도 야당의 강경파와 유가족들의 요구를 만족시킬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강하다.
◈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결단하더라도 野 받을지 의문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백퍼센트 만족할만한 협상이란 없는데도 백퍼센트를 달라고 하는 야당에 대한 신뢰지수가 낮은 게 문제"라고 진단했다.
여권 관계자는 "김 대표로서도 세월호 특별법 문제를 어찌할 수 없는 국면으로 빠져버린 듯 하다"며 "김 대표의 특별법 입지도 넓은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럴지라도 야당과 여당의 온건파들은 '통큰 정치'를 지향하는 김무성 대표의 결단을 기대하는 눈치다.
김무성 대표가 지난해 말 철도파업을 당당하게 푼 것처럼 세월호 특별법을 원만하게 푸는 정치력을 발휘해달라는 주문이다.
김 대표는 당시에 지역구인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도중 누가 들을까봐 KTX 화장실 문을 잠그고 노조와 국토부 장관, 코레일 최연혜 사장과 수차례 통화하며 합의를 이끌어냈다.
여권 일각으로부터 쓸데없이 나섰다는 핀잔을 듣기도 했지만 국민으로부터는 '무대(무성대장군)답다'라는 격려를 받았고, 그게 자양분이 돼 7.14 전당대회에서 민심과 당심으로부터 당 대표 선택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