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보러 고국찾은 '교황의 20년지기' 문한림 주교

아르헨티나 주교시절부터 친분…"지금처럼 큰 인물 될 줄 몰랐어요"

"얘들아! 내가 아프구나."

프란치스코 교황과 오랫동안 알고 지내는 사이인 아르헨티나 산마르틴 교구 보좌주교 문한림(59) 주교가 아이들 싸움을 말리는 모습은 어딘지 교황을 닮은 듯했다. 10일 서울 옥수동성당에서 만난 문 주교는 서로 때리며 다투는 아이들을 다정한 목소리로 타일렀다. 문 주교는 교황 방한 행사를 위해 최근 한국에 왔다.

서울 가톨릭대학에서 공부하다 1976년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떠나 신부가 된 문 주교는 교구장과 교구 사제로 만난 프란치스코 교황과 20년 넘게 교류하고 있다. 교황은 지난 2월 문 신부를 보좌주교로 임명했다.

교황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들은 지금처럼 세계의 존경을 받는 대단한 인물이 될 줄 알았을까.

"그런 생각은 전혀 못했어요. 신부들이 아프면 밤새워 간호를 하는 걸 보고 좀 특별나구나 하는 생각은 했죠. 주위 사람들도 교황이 되고 유명인물이 되실 거라고는 예상 못했습니다. 그래서 콘클라베(교황선거) 결과를 보고 다들 깜짝 놀랐어요."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르헨티나 주교, 추기경 시절 때 자신을 전혀 드러내지 않아 어떤 일을 하는지 주변 사람들이 전혀 알지 못했다고 한다.

"교황이 된 뒤에는 감추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잖아요. 보통 사람들은 잘 몰랐지만 교황을 뽑는 추기경들 사이에서는 어떤 분인지 알고 계셨을 거예요. 콘클라베 들어가기 전에 서로 얘기들을 하거든요."

프란치스코 교황은 언제나 한결같이 평범한 신부였다고 문 주교는 회고했다.

조그만 침실에는 옷장과 의자 말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크기와 모양까지 똑같은 의자 두 개를 놓고 손님을 맞았다. 높고 낮음이 따로 없었다. 자신한테 존칭을 쓰는 것조차 불편해 했다.

교황으로 선출되고 나서 TV에 비친 그의 모습은 아르헨티나에 있을 때와 변함이 없었다. 문 주교는 "예전부터 신던 낡은 구두를 그대로 신고 계셨을 정도니까요"라고 말했다.

행동도 똑같았다. 아르헨티나에서도 신부가 되기 전부터 틈만 나면 빈민촌을 갔다고 한다. 추기경이 된 뒤에도 평신도나 시민들한테 직접 전화해서 안부를 물었다.

교황이 된 뒤에는 그렇게 못할 줄 알았다고 한다. "바티칸에선 워낙 일이 많아 불가능할 거라 생각했는데 예전 그대로시더라고요. 사람들을 믿고 책임을 나눠주고 당신 할 일은 계속 하는 게 그분 스타일입니다."

문 주교한테는 요즘 '그렇게 평범한 분이 어떻게 교황까지 됐냐'는 질문이 종종 들어온다.

"교황도 젊은 시절 춤과 축구, 여자를 좋아하셨다고 하잖아요. 좋아하는 게 있는데도 더 좋은 소명을 찾았다는 게 훌륭한 거 아닐까요? 특출난 자리에 있지만 그러면서도 그토록 평범하다니 신기할 따름이죠."

교황의 엄청난 인기도 그런 평범함과 친근함에서 나오는 것 같다는 게 문 주교의 생각이다.

교황은 지금까지 그래왔듯 이번 방한 때도 방탄차를 타지 않는다. 신자들과 눈을 맞추고 더 가까이 하기 위해서다. 교황의 안위를 책임지는 경호 쪽에서는 볼멘소리가 나올 만하다.

"총에 맞아 죽을 운명이라면 진작에 그랬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거 같아요. 신부 때도 주교, 추기경 시절에도 위험한 빈민촌을 계속 다니셨잖아요. 방탄차로 세상과의 장벽을 만들고 싶지 않은 겁니다."

끊임없이 세상에 화두를 던지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메시지 가운데 어떤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 문 주교에게 물었다.

"교황 생각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건 직접 쓴 '복음의 기쁨'입니다. 교황명을 왜 프란치스코라 했는지 생각해 보면 그분 마음을 읽을 수 있어요. 아시시의 성인 프란치스코처럼 교회는 가난의 영성으로 살아야 하고, 세상 속에 나아가 선교를 통해 교회를 쇄신해야 한다는 겁니다."

문 주교는 "사람이 잘 먹고 잘 살면 마음이 무뎌진다"고 했다. 유럽 사람들이 그렇듯 한국도 점점 사치스러워지고 무뎌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시복식을 통한 한국천주교, 한국민을 위한 축복과 한반도 평화 기원에서 교황 방한의 의미를 찾는다고 말했다. 또 교황은 한국이 아시아에서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한 것 같다고 했다.

문 주교는 교황 방한 행사 3곳에 정식 초대됐지만 가능하면 모든 행사에 참석할 계획이다. 한 번쯤은 교황을 직접 대면할 기회도 있을 것 같다고 한다.

"교황께서는 휴가기간을 이용해 한국에 오십니다. 한국을 정말 많이 사랑해서 오신다는데 종교에 상관없이 열린 마음으로 맞는 게 좋은 일 아닐까요? 한국을 얼마나 많이 사랑하시는지 함께 지켜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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