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일병 어머니, "엄마를 용서해라...너와 같은 죽음이 다시 나오지 않길"

군인권센터 주최 추모제 열려...군 사망 유가족들 비통한 심정 토로

8일 오후 국방부 앞 '윤 일병과 또 다른 모든 윤 일병들을 위한 추모제'에서 윤 일병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쓴 편지를 읽은 후 참석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있다.(CBS노컷뉴스 윤성호 기자)

지난 4월 가혹행위로 숨진 윤 일병의 유가족과 또다른 군 사망사고 유가족들이 참여한 가운데 인권침해로 희생된 장병들을 위한 추모제가 열렸다.

8일 저녁 7시 30분쯤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군인권운동단체 '군인권센터' 주최로 열린 '윤 일병과 또다른 모든 윤 일병들을 위한 추모제'에서 윤 일병의 어머니는 떨리는 손으로 아들을 위해 준비한 편지를 꺼냈다.



뜻하지 않은 비극으로 아들을 저 세상으로 보낸 어머니의 마음은 원망보다는 미안함과 안쓰러움으로 얼룩졌다.

"아들아, 35일동안 얼마나 힘들고 얼마나 많이 아팠니. 엄마와 통화할 때 한번이라도 귀뜸을 해 줬더라면......내가 면회를 간다고 말했을 때 '엄마 오지마, 엄마 오지마. 4월은 안돼'라고 했을 때 미친 척 하고 한번만 부대를 찾아갔더라면...... 정말 미안하다 바보같은 엄마를 용서해다오. 너무 죄스러워서 하루하루가 고통이고 피눈물을 삼키며 살고 있다"

평소 부모님 말씀을 잘 듣고 가족을 배려하던 아들의 모습은 시간이 지날수록 뚜렷해 지기만 했다.

"곰곰이 생각하고 또 생각해봐도 넌 엄마 아빠에게 한번도 꾸지람을 들은 적 없는 다정하고 착한 아들이었지. 너는 우리 가족의 커다란 기쁨이었고, 너의 존재만으로도 엄마 아빠의 살아가는 희망이고 이유였단다. 엄마가 힘든 일이 있으면 내 옆에 살며시 다가와 손을 잡아주며 '엄마, 조금만 참아. 내가 있잖아' 속삭이던 아들, 엄마가 다리가 아프다면 누나들보다 먼저 다가와서 아픈 곳을 정확히 짚어 시원하게 주물러 주곤 했던 내 아들아!"


아들의 죽음만으로도 슬프지만, 자신과 같은 억울함이 또 생길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더욱 심장이 에는 듯 가슴을 움켜쥐고 말을 이어갔다.

"이제는 정말 편히 쉬렴. 엄마 아빠 누나들은 너의 안타깝고 슬픈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정확한 진실이 규명되기를 바란단다. 또 네가 한알의 밀알로 썩어져서 너의 죽음을 통해 다시는 너와 같은 억울한 죽음을 당한 제2, 제3의 윤 일병이 나오지 않기를 너무나도 간절히 바라고 기도한단다 "

<윤일병 어머니의 육성 편지 전문>


이날 군에서 사망한 아들을 둔 유가족들과 종교계 관계자들, 추모객 등 100여명이 모여 윤 일병을 추모했다.

윤 일병 어머니가 가슴을 움켜쥐며 한줄 한줄 써 온 편지를 읽어내려 갈 때마다 곳곳에서'또다른 윤 일병'의 어머니들이 가슴을 치며 울음을 터뜨렸다.

추모객들은 서로 옆 사람의 손을 꼭 잡고 들썩이는 어깨를 다독이며 함께 슬픔을 나눠나갔다.

성추행을 견디다 못해 자살한 여군 대위 아버지의 친구라는 이모(57)씨는 "친구의 딸을 생각하면 너무 가슴이 아프고 답답한데, 본인은 오죽하겠나. 답답함을 달래는 것은 물론 앞으로는 이런 일들이 없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으로 나왔다"고 비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또다른 윤 일병'의 어머니들도 아들의 영정사진을 안고 마이크를 잡았다.

2011년 육군훈련소에서 뇌수막염을 앓다 군의 허술한 관리로 사망한 고 노우빈 훈련병의 어머니 공 모 (51)씨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겨우 적어온 편지를 들고 읽어내려 갔다.

"건강한 우리 아들, 네 말대로 '신선한 1등급 제품' 당당하게 입대했지. 아들아,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도 수의사를 만나고 죽는단다. 강아지만한 대접도 못받고 우리 아들은 죽어가야 했어. 의식이 있는 동안 부모에게 전화도 한 통 못하는 그 곳에서,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예의도 받지 못하는 그 곳에서 그 가누지 못하는 몸으로 네가 느꼈을 절망과 공포를 생각하면 지금도 오금이 저린다"

국방의 의무를 하다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숨을 거둔 아들 생각만 하면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분노가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뇌종양으로 사망한 고 신성민 상병의 누나는 "가해자는 행복하게 지내는데 왜 남겨진 우리는 하루하루 고통 속에 살아야 하는지 왜 국가인권위는 가해 군인들의 변호인이 돼 있고, 기본도 지키지 않은 군의관과 그들을 감싸는 국군수도통합병원 모두다 용서가 안된다. 가해자는 분명한데 아무도 처벌받지 않는다"며 억울한 심정을 토로했다.

부대에서 성추행을 당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군대위의 아버지는 "눈물이 너무 납니다. 딸이 너무 보고 싶습니다. 하루 3시간 자고 일하고 오면 딸이 보고 싶어서 도저히 못살겠어요. 군대는 정말 믿으면 안됩니다. 나같이 당하지 마시고 군을 믿지 마세요"라며 흐느꼈다.

어머니들의 마음은 한결같았다. 다시는 나의 아들과 같은 '또다른 윤 일병'이 생기지 않는 것이 한 가지 바람이었다.

아들이 군에서 성추행과 구타 가혹행위를 당해 극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다는 한 어머니는 "우리는 선임병의 노예로 아들을 군에 보낸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제 아들은 육체적 정신적 아픔의 소리를 속으로 삭히고 있습니다"라고 울먹였다.

이어 "그저 흘려보내지 말아주길 바랍니다. 그래야만 우리 젊은이들이 국방의 의무를 소중히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국가는 제발 모든 책임을 다하시길 진심으로 빕니다. 다시는 이런 피해가 없는 군이 되길 진심으로 소망합니다"라고 덧붙이며 고개를 숙였다.

이들의 발언이 하나하나 끝날 때마다 추모객들은 '군인권법 제정하라', '군 사법권 독립성 보장하라', '입대할 때 그 모습 그대로 돌려달라'고 쓰인 손피켓을 흔들고 박수를 치며 응원했다.

8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군인권센터 주최로 열린 '윤 일병과 또 다른 모든 윤 일병들을 위한 추모제'를 마친 군 자살자ㆍ의문사 유족들과 참석자들이 종이비행기를 접어 국방부를 향해 날리고 있다.(CBS노컷뉴스 윤성호 기자)

이날 추모제를 주최한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은 "국가는 책임지고 죄송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국가의 의무를 강요하면서도 결국 자식이 군대가서 죽으면 그냥 장례식 빨리 치러야 한다는 꼼수 뿐"이라고 국방부의 허술한 대처와 태도를 비판했다.

또 군에서 사망하면 모두 순직으로 인정하되 군이 입증을 할 수 있을 때만 순직처리 하지 않는 내용의 '군 인사법'을 하루빨리 국회 통과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기독교·천주교·원불교 관계자들은 고인을 위한 종교의식을 치르며 명복을 기원했다. 추모객들은 '희망'을 상징하는 보라색 종이로 비행기를 접어 국방부 쪽으로 날렸고, 리본을 국방부 담장에 묶으며 책임있는 자세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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