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관계자는 8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경내에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박 대통령이 경내에 있었다는 사실은 김기춘 비서실장이 국회에서 한 발언에도 다 나와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김 실장은 지난달 7일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해 "(박 대통령이) 집무실에 좀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저희들이 서면으로 많이 올린다"고 말해 경내에 있었음을 암시했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가 침몰한 지난 4월 16일 오전 10시에 침몰 소식을 서면으로 처음 접한 뒤 오후 5시 10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할 때까지 비서실과 국가안보실로부터 20여 차례에 걸쳐 유선·서면보고만 받았을 뿐 대면보고는 한차례도 받지 않았다.
대형 여객선이 침몰하는 와중에 박 대통령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유선·서면보고만 받은 사실이 드러나 7시간 동안의 행적에 대한 의혹이 증폭됐다.
급기야 일본 우익언론인 산케이 신문은 지난 3일 박 대통령이 청와대 밖에서 오랜 측근이자 비선으로 알려진 인사를 만난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청와대는 이에 강력 반발해 민형사상 소송을 끝까지 묻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청와대 경내에 있었던 사실이 드러난다 해도 7시간 동안의 행적에 대한 의문은 풀리지 않고, 오히려 박 대통령 책임론이 더 증폭될 수 있다.
세월호의 침몰이 급속히 진행중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긴급 관계장관회의나 수석비서관회를 한차례도 열지 않고, 대면보고도 받지않은 당시 상황이 쉽게 납득되지 않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가 침몰하기 시작한 때로부터 1시간 30분 가량이 지난 오전 10시 30분 김석균 해양경찰청장에게 전화로 "단 한명의 인명 피해도 발행하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했지만 이때는 이미 배가 상당히 침몰한 때였다.
이어 오후 5시 10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찾아 "지금 5시가 넘어서 일몰시간이 가까워오는데 어떻게든지 일몰 전에 생사 확인을 해야 하지 않겠나 그런 생각이다. 다 그렇게 구명조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라고 말했지만 당시 상황에 맞지 않는 주문이었다는 지적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