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각 통신사는 '계약자 과실'로 소비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면서 배짱 영업을 하고 있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부산 영도구에서 사는 A(67) 씨는 최근 통장 정리를 하다가 화들짝 놀랐다.
2011년 7월쯤, 기존에 이용하던 SK브로드밴드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해지했는데 무려 3년간 매달 4만5천 원씩 모두 160만 원이 자동이체로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분명 상담원과 해지 신청 통화까지 하고, 직원이 와서 인터넷 연결 칩까지 수거해간 터라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A 씨는 SK브로드밴드 측에 항의했지만,돌아온 답변은 어이없는 것이었다.
당시 A 씨의 아내가 전화로 해지 신청을 했지만, 계약자 본인 확인 과정을 거치지 않아 해지접수가 안됐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과금된 금액의 1년치를 돌려주겠다는 황당한 답변을 받았다고 A 씨는 밝혔다.
이에 A 씨가 재차 따지며 항의하자 이번에는 2년 치를 돌려주겠다는 답변을 했다.
A 씨는 "서비스를 아예 사용하지도 않았는데 무려 3년간 돈을 인출해갔다니 황당하다"며 "돈의 문제를 떠나서 가입을 권유할 때는 귀찮을 정도로 전화와 문자를 보내더니, 해지할 때는 휴대폰 문자 알림 한통 없이 책임이 없다며 고객들에게 뒤집어씌우는 대기업의 행태에 놀랄 따름"이라고 밝혔다.
또,"늦게나마 돈이 인출되는 걸 발견했길 망정이지 만약 그대로 뒀다면 나도 모르게 몇년이고 돈이 인출됐을 것 아니냐"며 "대기업이 고객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것과 다른게 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부산 북구에 사는 B(49) 씨도 올해 1월쯤, EBS 홈스쿨 동영상 9만 건을 무료로 볼 수 있다는 광고를 보고 사교육비를 절감하기 위해 LG 유플러스 초고속 인터넷과 IPTV 결합상품을 신청했다가 낭패를 봤다.
막상 제공되는 EBS 서비스 가운데 무료는 몇 개에 불과하고 대부분 유료강좌였기 때문.
B 씨는 LG 유플러스 측에 당장 계약 취소를 요청했지만, LG 측은 해지 시점을 얼버무리며 차일피일 미루더니 "며칠 뒤 콘텐츠를 제공할 방침"이라고 만류하다가 급기야 "기존에 이용하던 인터넷 선 마저 끊어버리겠다"고 강압적인 태도를 보였다.
금액은 5만7천 원에 불과했지만 화가 난 B 씨는 시민단체의 도움을 받아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 처럼 속도와 성능은 초고속을 자랑하는 국내 주요 인터넷, IPTV 서비스가 해지에는 '모뎀'수준의 늑장 대응을 하면서 소비자들의 피해가 끊이지 않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에 2012년부터 2013년 8월까지 접수된 초고속인터넷 피해구제사건은 무려 529건. 사업자의 해지누락 피해가 24.8%로 가장 많았다.
원래 정부 방침에 따라 각 통신사는 이용약관에 해지 접수, 완료시 이용자에게 각각 한 차례씩 문자 통보를 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통신사 측은 '본인 확인이 안됐다'거나 '계약자가 약관 내용을 잘 읽지 않았다'는 등의 핑계로 사실상 피해자의 과실로 돌리며 배짱 영업을 하고 있다.
또, 유선통신상품 판매가 가입에서 해지까지 본사·직영·일반사업자·판매점으로 다분화 돼 있는 복잡한 유통망 때문에 제대로 해지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대형 통신사들이 영업망을 외주화하면서 이 같은 피해가 속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소비자들의 피해가 잇따르자 지난달, 3개 IPTV 사업자(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KT)가 2009년 디지털 콘텐츠를 판매할 때부터 청약철회 가능 여부 등 거래 조건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았다며 시정명령과 과태료 300만 원을 부과했지만, 소비자들의 피해에 비해서는 솜방망이 처벌에 불과해 기업의 배짱 영업에 대한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YMCA 시민중계실 황재문 실장은 "초고속 인터넷 결합상품 등 유선통신상품은 가입에서 관리 A/S, 해지까지 통합 관리되는 시스템이 아니다. 운영방식이 고객 중심이 아닌 기업중심인 것이다. 이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서비스 해지와 관련해 늑장을 부리거나, 꼼수를 쓰는 기업에 패널티를 부과하는 등의 제도 도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