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는 7일(현지시간) 하루 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발표한 대통령령에 따라 유럽연합(EU), 미국, 호주, 캐나다, 노르웨이 등에서 생산된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생선, 과일·채소, 우유, 유제품 등의 수입을 전면 금지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당장 미국산 소고기와 닭고기, 유럽산 유제품 및 과일·채소 등의 수출이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 "EU 손실 120억 유로 이를 것"…러시아도 반사 피해 불가피 = 모스크바 주재 EU 대사 비가우다스 우샤츠카스는 러시아의 식품 수입금지 조치로 EU가 입게 될 손실이 120억 유로(약 16조 6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러시아는 EU의 가장 큰 과일·채소 수입국이다. 2011년 기준으로 EU 과일 수출의 28%, 채소 수출의 21%를 러시아가 차지했다.
미국의 육류 수출에도 영향이 불가피하게 됐다. 러시아는 지난해 27만 6천t의 미국산 닭고기를 수입해 전체 미국 닭고기 수출의 8%를 소화했다.
이번 제재로 러시아도 불가피하게 반사 피해를 볼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러시아 내 농산물 및 식료품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제품 가격이 상승하는 등의 혼란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국내 수요의 70%를 수입하는 과일과 30%를 수입하는 육류가 가장 민감한 영향을 받을 것으로 관측했다.
한 서방 외교 소식통은 이타르타스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 소비자들이 질 좋고 값싼 유럽산 제품을 대체하는 데 드는 운송비 증가 등으로 식품 가격 상승이라는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소식통은 "정치적 동기의 대규모 수입 금지는 러시아가 준수를 약속한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의 직접적 위반"이라며 "이 조치를 면밀히 분석해 WTO에 이의를 제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EU가 대응 조치를 취하는 것도 검토할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반면 일부에선 수입금지 조치의 충격이 우려한 만큼 크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국내 수요 증대로 러시아 생산업자들의 경쟁력을 키우는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란 주장도 내놓고 있다.
◇ 농산물·식품 타깃으로 삼은 건 충격 최소화 차원 = 러시아가 대서방 보복 제재의 첫 표적을 농산물과 식품으로 잡은 것도 서방에 끼칠 타격에 비해 러시아의 충격이 그렇게 크지 않고 오히려 국내 업자 경쟁력 제고라는 부수적 효과를 노릴 수 있다는 계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러시아 정부가 수입 금지 품목 선정에서 대체 수입원 모색이나 국내 생산에 큰 문제가 없는 품목들을 선별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러시아 하원 예산세제위원회 제1부의장 옥사나 드미트리예바는 "상점 진열대가 비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다만 어디서 수입한 어떤 질의 상품으로 채우느냐가 문제"라고 말했다.
관계당국은 육류는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과일과 채소는 터키와 아제르바이잔, 식품은 칠레와 중국산 제품으로 대체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립 금융대학 러시아-중국 센터 소장 니콜라이 코틀랴로프는 "EU와 미국산 수입품의 상당 부분을 중국이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브라질 양계 업계는 벌써 "추가로 15만t의 닭고기를 러시아로 수출할 여력이 있다"며 의욕을 보였다.
메드베데프 총리는 이날 수입 금지 조치를 발표하면서 "이번 조치가 국내 업자들을 위해 상점 진열대를 깨끗이 치워주는 역할을 할 것"이라며 "수입 대체품을 확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러시아 정부는 4년 전부터 식량안보 개념을 확립하고 주요 수입 식품의 국산화에 노력해왔다. 그 결과 곡물, 설탕, 식용유, 감자, 닭고기 등에서는 상당한 성과가 있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이번 수입 금지 조치가 이런 정부의 시책에 의외의 지렛대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하지만 당장 대체 수입 국가를 찾고 국내 업자들을 양성하며 새로운 수송망과 유통망 등을 개발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게다가 수입 금지 조치가 장기화할 경우 인플레 등의 영향으로 러시아 경제가 상당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더 큰 설득력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