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는 과거에도 정부를 비판하는 예술작품들에 제동을 걸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아 왔다.
◈ 잇따른 정부 비판 예술작품
5.18 당시 시민군 출신인 민중화가 홍성담 화백은 오는 9월 5일 개막하는 광주비엔날레 20주년인 '광주 정신展'에 출품할 대형 걸개그림 '세월오월'을 동료 화가들과 함께 제작하고 있다.
가로 10.5m × 세로 2.5m에 이르는 '세월 오월'은 세월호 참사를 5.18민주화운동과 연계해 묘사한 작품이다.
홍 화백은 이번 작품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기춘 비서실장의 허수아비로 묘사했다.
5.18 당시 활동했던 시민군과 주먹밥 아줌마가 '세월호'를 들어올리면서 승객들이 안전하게 탈출하고 모세의 기적처럼 바다가 갈라지는 모습도 묘사돼 있다.
또 노란색 비옷을 입고 유모차를 앞세운 시민들이 '가만 있지 마라'는 펼침막을 들고 세월호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모습도 담겨 있다.
세월호 참사 현장인 진도 팽목항과 세월호 사고 부실 관제의 산실이었던 진도 VTS 등도 묘사됐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문창극 전 국무총리 지명자 등이 웃고 있는 모습도 표현돼 있다.
이에 앞서 홍 화백은 지난 2012년 6월 광주시립미술관 개관 20돌 기념전에서 4대강 사업을 비판하는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 작품에서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삽을 악기로 연주하고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 등이 허수아비로 등장했다.
김병택 화백은 지난 2009년 12월 광주민족미술인협회와 민족예술인총연합이 5.18 기념문화관에서 개최한 환경기획전에 '삽질 공화국'이라는 작품을 선보였는데 삽 형태의 종이 부조 위에 이명박 대통령의 얼굴을 모자이크 형식으로 표현했다.
지난 2013년 8월 15일 광복절 경축식에서는 광주시립소년소녀합창단이 남미 사회주의 혁명가 체 게바라의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공연하기도 했다.
◈ 광주시 정치색 띤 작품에 '제동'
광주시는 홍 화백의 세월 오월 작품과 관련해 "시 예산 지원으로 개최되는 광주비엔날레에서 대통령을 희화화하는 작품을 전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이는 표현의 자유를 넘어선 것"이라고 밝혔다.
광주시는 담당 큐레이터에게 작품 수정을 요구했고 작품 수정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작품을 전시하게 할 수 없다는 단호한 입장이다.
광주시는 홍 화백이 2012년 4대강 사업을 비판하는 작품을 선보일 때도 철거를 지시했고 2009년 김병택 화백의 '삽질공화국' 작품도 철거를 요구했다.
광주시는 시립소년소녀합창단의 체 게바라 티셔츠가 문제가 됐을 때에는 합창단 지휘자를 문책기로 했고 이후 지휘자는 자진 사퇴했다.
광주시 관계자는 "자치단체 입장에서 대통령이나 정부를 비판하는 작품들을 못 본척할 수 없는 처지"라며 "예술인들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의도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 예술인 등 표현의 자유 침해 반발
홍 화백은 "광주비엔날레 특별전으로 광주정신전을 하면서 이 정도의 패러디조차 하지 못하게 한다면 광주정신전을 하지 말아야 한다"며 광주시의 압력에 강하게 반발했다.
민족미술인협회 광주지회 김화순 화백도 광주CBS 시사프로그램 CBS매거진에 출연해 "홍 화백의 '세월 오월'은 정치를 풍자한 작품으로 시민들에게 평가받아야 한다"며 "광주시가 작품 수정이나 전시 불가 운운하며 작품에 개입하는 것은 어이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김 화백은 이어 "이 작품은 5월 정신에 부합하는 것이 무엇인가 고민하고 만든 작품"이라며 "광주에서 정치를 풍자한 예술 작품에 제동이 걸리는 일이 여러차례 발생해 안타깝다"고 밝혔다.
김 화백은 "작가가 시대 상황이나 대통령을 풍자하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라면 외국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며 "광주시는 더 이상 작가들의 표현과 창작의 자유를 침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광주시의회 문상필 의원도 7일 보도자료를 통해 "광주시는 홍성담 작가의 '세월오월' 작품에 대한 전시 불가 입장을 당장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문화수도를 자처하는 광주시가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며 "문화예술의 사상과 정신은 어떤 이유로도 부정하거나 무시해서는 안 되는 것이고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의원은 "광주시가 박근혜 대통령을 풍자적으로 묘사했다는 이유로 작품의 전시를 불허하는 것은 광주시 스스로 5.18 정신인 광주정신을 부정하는 것이고 광주시민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