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재에 보복대응'…서방-푸틴 경제전쟁 본격화

러, 우크라 동부 국경에 병력 증강…'조지아 전쟁' 재현되나

우크라이나 사태로 촉발된 서방과 러시아의 갈등이 경제 전쟁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우크라이나 사태의 책임을 물어 러시아를 상대로 광범위한 경제 제재를 가하자 러시아가 전방위적인 금수 조치로 보복 대응에 나서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이에 더해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동부 국경에 전투태세를 갖춘 병력 2만명을 증강 배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무력 충돌의 위험도 커지고 있다.

◇반격에 나선 푸틴…美 "러시아 고립 심화할 것"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6일(이하 현지시간) 러시아 제재에 동참한 국가에서 생산한 농산품·원료·식품의 수입을 1년 동안 금지·제한하는 내용의 대통령령에 서명했다.

러시아 정부는 7일 수입 금지 대상이 되는 농산물·원료·식품 목록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 목록에는 미국산 농산물 전량과 일부 축산물, EU의 채소·과일류가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고 러시아의 리아노보스티 통신은 보도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와 함께 유럽 항공사들의 러시아 영공 통과 금지 조치도 검토하고 있다. 또 우주방위산업 관련 전자부품 수입국을 서방 국가들에서 중국으로 전환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다.

앞서 미국과 유럽연합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합병하고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친러시아 반군 세력의 활동을 지원한 책임을 물어 러시아 금융·방위·에너지 분야에 대한 광범위한 제재를 결정한 데 따른 보복성 조치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5일 서방의 경제 제재에 대해 "정치적 수단으로 경제를 압박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이는 규범과 원칙에 어긋난다"며 내각에 대응책 마련을 지시했다.

미국 정부는 러시아의 식품 금수 조치가 러시아의 국제적 고립을 심화하고 러시아 경제에 더 큰 피해를 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날 서방의 대러 제재가 의도했던 대로 러시아 경제에 큰 압력을 가하고 있다면서 러시아의 금수 조치에 대해 "장기적으로 봤을 때 러시아 경제와 자국 국민에게 손실을 끼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푸틴의 식품 금수 조치가 실행되면 유럽과 미국의 농가나 식품 수출업자에게 큰 타격을 주는 동시에, 러시아에서는 인플레율이 더욱 높아지고 일부 식품 부족 현상을 초래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IHS에 따르면 러시아는 유럽산 과일·채소의 최대 수입국이자 미국산 가금류 수입 2위 국가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러시아의 금수 조치가 농산물 수출국들에 막대한 손실을 끼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러시아로서도 서방 식품에 대한 금수 조치가 자국 경제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우려가 있다. 전체 식량의 40% 이상을 수입하는 러시아가 식품 품귀 현상을 겪는다면 가뜩이나 올해 상반기 7.9%까지 치솟은 물가가 더욱 교란되는 상황을 피하기 어렵다.

한편에서는 러시아의 금수 조치가 미국과 유럽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러시아의 금수 조치가 유럽의 농가에 타격을 입힐지 몰라도 유럽 전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또 러시아가 미국산 축산물 수입을 금지하더라도 미국에 치명적인 손실이 아니라고 분석했다. 러시아가 최근 몇년 간 자국 축산 산업을 살리기 위해 무역장벽을 설치하면서 미국의 대러 축산물 수출이 이미 감소한 상황이라고 WSJ는 전했다.


◇러, 우크라 접경 병력 증강…서방 "우크라 침공 위험 증대"

서방과 러시아 간 경제 갈등의 단초를 제공한 우크라이나 동부에서는 군사적 긴장이 한층 높아지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반군을 지원하는 데서 더 나아가 직접 무력 개입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면서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0)는 6일 러시아가 최근 전투태세를 갖춘 병력 2만명을 우크라이나 동부 접경 지역에 집결시켰으며, 러시아가 인도주의나 평화유지 임무를 명목으로 우크라이나에 병력을 투입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 병력 2만명은 모두 우크라이나 국경 50㎞ 이내에 배치된 상태라고 FT는 미국 정부 관계자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줄곧 접경 지역에 병력을 배치해왔지만, 이처럼 국경 가까이 배치한 적은 없었다.

이와 관련, 척 헤이글 미국 국방장관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위험이 증대됐다며 "국경을 따라 증강 배치된 러시아군과 그들의 정교함, 훈련, 무장 수준을 보면 이는 현실이고 위협이며 분명히 발생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도날드 투스크 폴란드 총리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사태에 무력 개입할 위험이 증가했다고 판단할 만한 이유가 있다고 경고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현재로선 우크라이나 정부군에 대한 미국의 추가 지원이 필요하지 않다면서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 것은 "명백히 다른 차원의 문제다. 아직 그 정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AP통신 등은 보도했다.

이날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과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전화통화를 하고 러시아의 병력 증강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고 백악관은 밝혔다.

한편 FT는 러시아의 병력 증강과 관련, 우크라이나에서 '조지아 전쟁'의 재현이 우려된다고 보도했다.

러시아는 2008년 8월 조지아가 친러 성향 자치공화국 남오세티야에 군사공격을 가한 것을 빌미로 조지아와 전면전을 개시했다. 막강한 군사력을 앞세운 러시아의 승리가 굳어지자 유럽의 중재로 러시아와 조지아 간에 휴전 협정이 체결됐고 이후 남오세티야는 조지아로부터 완전한 분리·독립을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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