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문제해결 서둘러라" 美, 일본에 압박메시지

위안부 피해자 면담 배경 주목…'보편적 인권이슈' 인식

미국 백악관과 국무부가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공식 면담을 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미국의 정책 변화 가능성이 주목된다.

미국은 그동안 이번 사안을 보편적 인권문제로 인식하고 나름대로 진지한 접근을 꾀하고 있으나 정부 차원의 적극적 개입은 자제해왔다.

동맹인 일본과의 외교관계를 의식했기 때문이었다. 미국 정부가 1990년대 후반 위안부 관련자들이 포함된 일본 전범 35명을 입국금지 리스트에 올리면서도 그 명단과 범죄행위를 공개하지 않은 것은 이런 맥락이다.

그러나 지난해 초 일본 아베 정권이 출범한 이후 과거사, 특히 위안부 문제가 한·일 외교의 최대 쟁점으로 부상하면서 워싱턴의 기류가 바뀌기 시작했다.


미국 사회를 지탱하는 근본가치의 하나인 인권 관련 사안이어서 미국이 마냥 '뒷짐'을 지고 있을 수 없다는 명분론과 함께 실리적·전략적 요인이 대두했다. 이번 사안을 그대로 놔둘 경우 한·일관계 개선이 어렵고 이는 미국의 동북아 전략 운용에 중대한 차질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된 것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4월말 방한 때 기자회견을 하면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끔찍하다, 지독하다, 쇼킹하다(terrible, egregious, shocking)"고 강도높게 일본을 비난한 것은 이 같은 워싱턴의 변화된 인식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됐다.

이는 힐러리 클린전 전 국무장관이 2012년 3월 한ㆍ미 외교장관 회담에서 위안부에 대해 '강요된 성노예(enforced sex slaves)'라고 규정한 것보다도 대일 비난의 수위가 더 높아진 것이다.

여기에는 지한파 의원들을 중심으로 한 의회의 기류가 상당한 압박요인이 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마이크 혼다(민주·캘리포니아) 의원이 지난 1월 일본 정부의 '군대위안부 결의안' 준수를 촉구하는 세출법안을 통과시킨데 이어 하원 외교·군사위 내에서도 미국 정부가 한·일관계 개선 차원에서 위안부 문제해결에 적극 나서라는 목소리가 잇따랐다.

일례로 하원 군사위 소속 로레타 산체스(민주·캘리포니아) 의원이 지난 5월 "한·미·일 3국 협력 구축 차원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라"라고 공개 촉구하기도 했다.

우리 정부가 국제무대에서 적극 공론화 작업에 나선 것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볼 수 있다.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은 지난 10월 유엔총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사례를 소개하고 일본 정부의 사과와 책임있는 조치를 촉구한 바 있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면담은 이번 사안을 어떤 식으로든 해결해야 한다는 미국 정부의 의지를 확인하는 동시에 일본이 구체적인 행동에 나서도록 압박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미국 정부로서는 일본과의 외교관계를 의식하며 여전히 과도한 개입으로 비쳐지는 것은 자제하려는 기류가 강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외교소식통들은 이날 "업무상 유관성이 있는 담당자들이 위안부 피해자들을 면담한 것은 의미있지만 미국 정부 나름대로 '급'(級)을 조정해 실무자들을 면담 상대로 정했고 비공개 형식으로 면담을 진행한 것으로 안다"며 "지나치게 확대해석되는 것을 경계하려는 의도가 읽힌다"고 말했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지명자는 지난 6월 상원 외교위 청문회에 나와 "한·일간의 대화를 장려하겠다"고 밝히면서도 양국간 '중재 역할'(mediation role)을 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이번 면담을 허용한 것 자체가 위안부 문제를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볼 수 있어 일본 정부의 반응이 주목된다. 특히 현재 국장급 실무선에서 진행 중인 한·일 위안부 협상에 어떤 영향을 줄 지 워싱턴 외교가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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