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감독은 불쑥 "저 노란 머리가 멋있게 보여?"라고 물었다. 머리를 염색한 일부 선수들을 보며 한 말이었다. 이에 "야구만 잘 하면 상관 없는 것 아니냐"는 답에 김 감독은 "야구를 못 하니까 외국인 선수처럼 물들이면 잘 할 줄 알고 저러는 것"이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노장 감독의 말 때문이었을까. 과연 머리카락이 검은 선수들이 맹활약을 펼쳤다. 토종과 외국인 선수다. 포수 정범모와 외야수 펠릭스 피에가 주인공이다.
정범모는 결승타 포함, 개인 1경기 최다 안타, 타점의 불방망이를 휘두르며 9-8 승리를 이끌었다. 3점 홈런 포함, 4안타 5타점 1득점의 맹활약이었다.
이양기의 적시타로 1-0으로 앞선 2회 정범모는 3점포를 뿜어냈다. 1사 1, 2루에서 상대 선발 하영민의 시속 137km 직구를 잡아당겨 왼쪽 담장을 넘겼다. 순식간에 4-0으로 달아나는 초반 기선 제압포였다.
4-4 동점이 된 7회는 천금의 결승타를 뽑아냈다. 2사 만루에서 상대 필승 카드 한현희를 상대로 중전 안타를 때려내 주자 2명을 불러들였다. 6-4로 다시 리드를 가져온 한방이었다.
도루 3위(34개)의 빠른 주자 서건창이 득점권에 나설 경우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한화는 이후 대타 이성열에게 1점 홈런을 내줘 결과적으로 정범모의 도루 저지는 동점을 막아낸 셈이 됐다.
정범모는 9회말 좌중간 평범한 뜬공이 상대 어설픈 수비에 의해 2루타로 둔갑하는 행운도 따랐다. 앞서 단타와 2루타, 홈런까지 날린 정범보는 3루타를 기대했지만 아쉽게 2루에 멈춰야 했다.
아웃이 되는 줄 알고 별 기대없이 뛰던 정범모는 뒤늦게 속도를 높였지만 3루까지는 무리였다. 3루타까지 추가했다면 사이클링 히트 대기록까지 달성할 뻔했다.
9-5, 리드를 벌린 값진 한방이었다. 특히 이날 4타수 포함, 최근 3경기 19타수 무안타의 부진에 시달렸던 피에였기에 더 의미가 있었다.
한화는 9회말 넥센의 추격을 힘겹게 뿌리치며 가까스로 3연패에서 벗어났다. 8위 SK에 3경기 차로 다가서 탈꼴찌 희망을 이었다. 경기 후 정범모는 "사이클링 히트 아쉽지만 개인 최다 기록을 세우고 팀이 이겨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피에도 "슬럼프가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고, 앞으로도 지금처럼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했다.
2위 넥센은 연승이 4경기에서 멈췄다. KIA를 대파한 3위 NC와 승차가 1경기로 좁혀졌다. 박병호는 9회말 시즌 33호 솔로포로 2위 강정호와 격차를 4개로 벌리는 데 만족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