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중일호, 2006년 '도하 참사' 데자뷰라고요?

'8년 전과는 다를 겁니다' 9월 인천아시안게임에서 야구 대표팀을 이끌 류중일 삼성 감독.(자료사진)
인천아시안게임 야구 대표팀 최종 명단에 대한 논란이 여전히 뜨겁습니다. '최강의 멤버가 아니다' '병역 미필자, 혹은 군 필자들을 위한 배려다' 등 뜨거운 감자가 여러 개가 됐습니다.

사실 누가 뽑혀도 논란은 사라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정된 자리에 워낙 기량이 엇비슷한 선수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우산장수와 부채장수를 둔 어머니처럼 이 선수를 뽑자니 저 선수가 걸리고, 그 반대의 경우가 벌어지는 상황입니다.

여기에 병역 혜택이라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민감한 부분이 걸려 있는 까닭에 새털같은 자극에도 벌떼처럼 팬심이 일어나는 모양새입니다. 운동 선수에게 생명과도 같은 전성기를 확보하려는 미필자와 이미 군 복무를 마쳐 소중한 재산인 몸을 간수하려는 예비군들. 여기에 이들의 운명과 궤를 같이 하는 10개 구단들의 이해 관계까지 복잡하게 얽힌 겁니다.

리그 최고의 2루수와 3루수가 빠지고 의외의 투수가 합류한 최종 명단. 이 과정을 보면서 8년 전 카타르 도하아시안게임을 떠올린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겁니다. 저 또한 당시 현장에서 야구 대표팀의 충격적인 패배를 직접 목격했기에 2006년 이른바 '도하의 참사' 기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도하 AG, 대만-일본에 연패 '동메달 수모'

당시 대표팀은 금메달에 대해 상당히 낙관적이었습니다. 경쟁팀이라 할 만한 일본은 사회인 야구 선수들로 대표팀을 꾸렸고, 대만은 그래도 아직 한 수 아래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게 웬걸? 대표팀은 사실상의 결승전이라던 대만과 첫 경기에서 2-4 패배를 안았습니다. 당시 롯데 전국구 에이스로 통하던 손민한(NC)을 내고도 당한 일격이었습니다. 이어 사회인 야구 선수로 구성된 일본에도 7-10 패배를 당했습니다. 그해 MVP와 신인왕을 석권한 류현진(현 LA 다저스)과 오승환(현 한신)이 홈런까지 맞았습니다.

열사의 땅 도하에 설치된 간이식 기자석과 관중석에서 충격에 빠졌던 한국 취재진과 관계자들의 표정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김재박 대표팀 감독은 "패장이 무슨 긴 말을 하겠느냐"며 고개를 떨궜고, 하일성 당시 선수단장 및 한국야구위원회(KBO) 사무총장은 "낮아진 마운드 높이와 공인구에 적응하지 못했다"며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결국 금메달을 목표로 야심차게 나섰던 대표팀은 3위로 씁쓸하게 귀국해야 했습니다. 김 감독은 공항에서 취재진을 보고 몸을 피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까지 벌어졌습니다.

▲도하 때도 '미필자 중심' 선수 선발 논란

2006년에도 야구 대표팀은 최강 전력이 아니었습니다. 그해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맹활약했던 해외파들이 모두 빠졌습니다. 당시 일본 요미우리에서 뛰던 이승엽(삼성)과 박찬호(은퇴)를 비롯해 서재응, 최희섭(KIA) 등 메이저리거들이 각 리그 시즌 중이었던 만큼 출전을 고사했습니다.

순수 국내파로 구성된 대표팀은 설상가상, 당시 대표팀 붙박이 4번 김동주(두산)도 없었습니다. WBC 경기 중 부상을 입은 김동주는 그 여파로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지 못하는 불운을 겪었습니다. 당초 아시안게임에 나서려 했던 김동주는 끝내 불참 의사를 내비쳤습니다.

여기에 당시 클리블랜드에서 활약하던 추신수(텍사스)가 제외돼 논란이 커졌습니다. 병역 미필자가 대거 주축을 이룬 대표팀에 해외파라는 이유로 빠진 상황이었습니다.(이후 추신수는 4년 뒤 광저우 대회에서 금메달에 힘을 보태게 됩니다.)

당시 김재박 감독은 선수 선발 과정의 잡음에 대해 큰 문제가 없다는 뜻을 내비쳤습니다. 김동주에 대해서는 "본인이 나가지 않겠다면 굳이 쓸 필요가 없다"면서 "나가려고 하는 좋은 선수들이 널렸다"고 말했고, 추신수에 대해서는 "기량이 검증되지 않았고 국내 선수와 차이가 없다"며 "기왕이면 병역 혜택은 국내 선수에게 주는 게 낫다"고 밝혔습니다.


김 감독은 대만전 패배로 사실상 금메달이 좌절된 뒤 "국제 경험이 풍부한 선수들의 공백이 컸다"고 선수 선발의 문제점을 시인했습니다. 당시 대만은 LA 다저스와 요미우리에서 뛰던 궈홍즈와 장첸밍 등 해외파들을 총망라했습니다.

▲'도하는 없다?' 인천 AG, 8년 전과는 다르다

2006년 도하의 2014년 인천. 야구 대표팀의 상황은 비슷한 부분이 많습니다. 해외파가 모두 빠진 순수 국내파라는 점, 병역 미필자가 절반 넘게 차지하고 있다는 점, 그런 부분에서 최강 전력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이번 대회 24명 명단 중 미필자는 13명입니다. 22명이 나섰던 도하 대회에서는 무려 14명이나 됐습니다. 금메달을 따냈던 광저우 대회는 24명 중 11명이었습니다.

'팀 코리아의 이름으로' 배려 엔트리라는 논란 속에 야구 대표팀은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야구 국가대표팀 출정식 모습.(자료사진)
물론 미필자의 숫자가 우승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선수들의 절박함이 플러스 알파의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광저우 대회 때 우승 원동력은 추신수를 비롯한 미필자들이 펼친 필사의 의지 때문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광저우 멤버로 병역 혜택을 입은 KIA 에이스 양현종은 올 시즌 초반 "아시안게임에 나선다면 최선을 다할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차우찬 형, 강윤구 등 미필자들의 마음이 더 간절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대표팀을 이끌 간판들이 부족하다는 점이 조금은 걸립니다. 마운드에서는 봉중근(LG), 임창용(삼성) 등 국제대회 경험이 풍부한 투수들이 있으나 야수진을 이끌 베테랑이 잘 눈에 띄지 않습니다. 현실적으로 합류가 어렵다고 하지만 이름값에서 상대를 압도할 해외파들이 없다는 것도 2% 아쉬운 부분입니다.

다만 한국 야구는 2006년의 뼈아픈 경험이 있습니다. 또 지난해 WBC에서도 본선에 오르지 못한 아쉬움을 안고 있습니다. WBC의 성공으로 다소 자만에 빠졌던 도하 대회와는 분명히 다른 부분입니다.

원정이 아닌 안방에서 열리는 대회라는 점도 빠질 수 없습니다. 역시 가장 강력한 경쟁팀인 대만이 2006년만큼의 전력을 갖추고 못할 것이라는 점도 다릅니다. 병역 혜택이 사라진 아시안게임에 대만 프로팀은 선수 차출 반대 결정을 내렸다는 소식입니다.

최종 명단을 놓고 비슷한 논란이 벌어진 2006년 도하 대표팀과 2014년 인천 대표팀. 결과만큼은 확연하게 달라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P.S-참고로 2006년 도하 대회 대표팀과 2014년 대표팀 명단을 올려봅니다.(★는 당시 군 미필자입니다.)

▲도하아시안게임 대표팀 명단

투수(9명) - ★오승환(삼성) ★류현진(한화) 손민한(롯데) ★장원삼(현대) ★신철인(현대) 이혜천(두산) ★윤석민(KIA) ★정민혁(연세대) ★우규민(LG)

포수(2명) - ★강민호(롯데) 조인성(LG)

내야수(6명) - ★이대호(롯데) ★박기혁(롯데) ★조동찬(삼성) 박진만(삼성) ★정근우(SK) 장성호(KIA)

외야수(5명) - 이병규(LG) 박재홍(SK) 이진영(SK) ★이용규(KIA) ★이택근(현대)

▲인천아시안게임 대표팀 명단

투수(11명) = 안지만 ★차우찬 임창용(이상 삼성), ★유원상 봉중근(이상 LG), ★한현희(넥센), 김광현(SK), ★이재학(NC), 양현종(KIA), ★이태양(한화), ★홍성무(동의대)

포수(2명) = 강민호(롯데), 이재원(SK)

내야수(6명) = ★김상수(삼성), ★오재원(두산), 박병호 ★김민성 강정호(이상 넥센), ★황재균(롯데)

외야수(5명) = 김현수 민병헌(이상 두산), ★손아섭(롯데), ★나성범(NC), ★나지완(K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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