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고법, 한일청구권협상문서 48건 비공개 판결…1심 뒤집어

"공개시 北과 청구권 협상 및 韓과의 독도 협상서 日에 불리"

1951∼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교섭과 관련한 일본 측 문서공개 소송에서 일본 항소심 재판부가 공개 대상 문서의 범위를 대폭 줄였다.


도쿄 고법 민사 제8부는 25일 한일 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문서공개거부처분 취소청구소송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독도관련 한일 교섭, 한일 청구권 협상, 일본 내 한국문화재 등과 관련한 48건의 문서에 대해 1심 재판부의 공개 명령을 취소했다.

재판부는 한일 청구권 협상관련 문서의 경우 공개되면 북한과의 청구권 협상에서 북한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고, 독도관련 문서도 한일 협상에서 일본에 불리할 수 있다는 등의 일본 외무성 주장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이로써 이번 소송에서 공개되는 문서의 범위는 2012년 10월에 나온 1심 판결보다 줄어들게 됐다. 그에 따라 양국 간에 남아있는 강제징용 및 군 위안부 피해 배상 문제 등의 해결을 위해 한일 국교정상화 협상의 전모를 밝히려는 한일 시민들의 노력은 또 한차례 벽을 만났다.

이번 소송은 2005년 한국 정부가 한일기본조약 한국 측 문서를 전면 공개한 뒤 2006년부터 잇달아 제기된 일본 내 정보공개 소송 가운데 3차에 해당한다. 일본 정부는 3차에 걸친 소송 과정에서 적지 않은 문서를 공개했지만 독도 문제 등과 관련한 민감한 내용은 여태 공개를 거부해왔다.

재작년 1심 재판부는 "비공개 문서가 작성된 지 30년 이상 지났으면 비공개 근거를 추측할 수 있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입증해야 한다"며 원고 측이 공개를 요구한 문서에 대해 약 70%가량 공개를 명령했다. 원고의 손을 들어준 셈이었다.

그러나 1심 재판부의 공개 명령에 일본 외무성이 불복한 문서를 중심으로 공개 여부를 심리한 이번 2심 재판부는 외무성의 비공개 주장을 대폭 수용함으로써 사실상 일본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원고 측 법정 대리인인 히가시자와 야스시(東澤靖) 변호사는 판결 후 기자회견에서 "1심 재판부는 작성된 지 30년이 지난 정부 문서는 상당한 사정이 없는 한 공개해야 한다는 판단을 했지만 이번 항소심 재판부는 이를 언급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체로 이번 소송에서 성과를 거둔 부분이 있지만 이번에 1심 판결이 뒤집힌 부분도 있다"며 "상고 여부는 판결문을 상세히 검토한 뒤 판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소송을 주도한 일본시민단체 '한일회담 문서의 전면공개를 요구하는 모임'의 오타 오사무(太田修) 도시샤(同志社)대 교수는 "이번 재판은 시민의 알 권리에 대한 것으로, 본질적으로 공문서가 국가나 관료의 전유물이냐, 시민의 것이냐의 다툼이었다"며 "1심에서 공개하라고 명령한 문서를 상당부분 비공개하도록 했다는 점에서 이번 판결은 부당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또 이번 소송을 지원해온 최봉태 변호사는 "지난달 일본 정부가 고노(河野)담화(1993년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하고 사죄한 고노 요헤이 당시 관방장관의 담화) 검증 결과를 공개하면서 한일간 외교교섭 내용을 공개했는데, 신뢰관계를 해치기 때문에 공개하지 말았어야 할 문서를 공개할 때는 재판부의 판결 없이도 공개했다"고 꼬집었다.

원고의 일원으로 참여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86) 할머니는 "일본 정부는 재판에 관계없이 문서를 공개하라"며 "피해자들이 살아 있을 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일본에도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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