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와 새마을호 승무원 관리를 맡고 있는 코레일관광개발에서 고위 간부의 성희롱 논란이 불거졌지만, 사측이 "헛소문"이라고 일축해 노조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코레일관광개발 부산지사 소속 KTX 여승무원 A 씨는 지난해 가을부터 스마트폰 메신저를 보기가 두렵다.
지사장 윤 모 씨가 메신저를 통해 "퇴근 후 남들 모르게 단둘이 만나 파티에 가자"고 거듭 강요했기 때문이다.
A 씨는 거절 의사를 분명하게 밝혔지만, 윤 지사장은 "근무 일정까지 조정해주겠다"며 만남을 종용하는가 하면 "특정 옷차림을 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이처럼 "윤 지사장에게 성희롱을 당했다"며 노조에 찾아와 호소한 여승무원만 10여 명으로 "2년 넘게 고통을 겪었다"는 여승무원도 있었다.
이들은 "윤 지사장이 회식 자리에서 여승무원에게 '상금을 주겠다'며 야한 춤을 추라고 강요하거나, 함께 춤을 추자며 껴안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피곤한 여승무원에게 잠을 깨는 요령을 알려준다며 남성 성기를 거론하거나, 승무원 치마 속을 훔쳐봤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심지어 공식 CS 교육 시간에도 승무원은 친절해야 한다며 여성의 특정 신체 부위를 거론하는 등 성적 불쾌감을 일으킬 발언을 수차례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06년 무려 280여 명이 정리해고의 시련을 겪었고, 지금도 코레일에 간접 고용된 채 열악한 노동환경에 신음하는 여승무원들이 이제는 사내에서 고위 간부의 성희롱에 시달리는 지경까지 이른 것이다.
하지만 여승무원들은 자신이 속한 지사 수장인데다 직원의 근무평정과 연봉을 결정하다시피 하는 지사장을 상대로 성희롱을 문제 삼기는 쉽지 않았다.
코레일관광개발 노동조합 김영규 지부장은 "올해 초 노조가 설립되자 그동안 참아온 여승무원들이 한꺼번에 피해 사실을 토로한 것"이라며 "지금도 계속 피해 사례를 수집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피해자는 대부분 20대 초·중반의 여승무원으로 고위 간부인 지사장에게 거절 의사조차 제대로 밝히기 쉽지 않았던 형편"이라며 "가뜩이나 열악한 노동환경에 시달리는 승무원을 보듬어야 할 상급자가 직위와 권력을 남용해 성희롱을 일삼았다"며 울분을 터뜨렸다.
이에 따라 노조가 지난달 코레일관광개발 사장에게 진상조사를 요구하면서 사내 감사가 이뤄졌다.
하지만 사측은 윤 지사장을 지난 1일 강원도 화천 지사로 발령내면서도 성희롱 논란은 '증거 없는 헛소문'이라고 일축하며 징계를 내리지 않았다.
관광개발 측은 "신고자 등을 대상으로 확인한 결과 메신저 등을 통해 일부 승무원 사이에 떠돌던 헛소문으로 결론 내렸다"며 "신고자에게 15일의 기한을 주고 증거를 제출하라고 요청했지만, 아무런 증거도 제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공개석상에서 성희롱 발언이 있었다는 주장에 관해서는 "당시 동영상 등 관련 기록이 없어 확인할 수 없다"며 "확인되지도 않은 성희롱 논란으로 징계를 내릴 이유가 없으며 윤 지사장 인사 발령은 성희롱 논란과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윤 지사장 역시 사내 감사에서 "발언이 왜곡된 채 유언비어가 퍼졌다"며 성희롱 사실이 없다고 진술했고, 서울 용산경찰서에 노조 관계자 등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노조는 "피해자가 직접 피해 사실을 밝히기 어려운 성범죄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봐주기 감사'"라고 강조했다.
김영규 지부장은 "사측에 문제를 제기하자 '지난 2월 이미 성희롱 문제가 불거져 윤 지사장을 부산으로 발령냈는데 또 일이 벌어졌다'고 귀띔을 받았다"며 "승무원 사이에 공공연한 비밀로 불거진 사안인데도 사측은 윤 지사장 감싸기로 일관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어 김 지부장은 "사측이 윤 지사장을 '여승무원이 없는 화천 지사로 발령해 추가 성희롱을 막겠다'고 알려와 재차 공식 징계를 요구했다"며 "성희롱 사실이 없는데도 주요 지점에서 지사장을 지내던 고위 간부를 화천으로 발령낼 이유가 있겠느냐"고 반박했다.
이에 따라 노조는 본사 격인 코레일 최연혜 사장에게 "오는 25일까지 면담에 나서라"고 요구하고 있어 논란이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