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현장에서는 이날 전체 탑승자 298명 가운데 198명의 시신이 수거됐으나 반군이 통제하는 시설로 옮겨져 증거 인멸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우크라이나 반군은 국제사회의 비난에 따라 정부가 휴전에 합의하면 사고조사단의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밝혔으나 현장조사는 여전히 원활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추락 사고 현장에서는 방치되던 시신이 다수 수습돼 신원 확인 작업이 활기를 띨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다.
이 지역 반군 지도자 알렉산드르 보로다이는 이와 관련 "희생자 시신은 현장에서 15㎞ 떨어진 토레즈 마을의 냉동 객차 시설에 보관 중이며 국제조사단의 전문가가 도착하는 대로 인계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이미 회수한 사고기의 블랙박스도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 넘길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리아노보스티 통신은 이에 대해 시신을 실은 열차 5량이 토레즈 역에서 서북쪽의 도네츠크 방향으로 출발했다고 전한 반면 로이터 통신은 열차가 동남쪽으로 출발했다고 엇갈린 보도를 했다.
BBC는 현장에는 말레이시아 합동조사단 131명과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조사단원 30명이 도착했지만, 현장 조사는 본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영국 정부는 항공사고전문가 6명으로 구성된 조사팀이 이날 현장에 도착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비상사태부는 지금까지 약 200명의 대원들을 투입해 추락 지점 인근 32㎢ 지역을 수색했으며 수색반경을 2㎞ 더 늘렸다고 밝혔다.
현장에서 수습된 시신이 조사단의 손을 떠나 옮겨지면서 반군이 피해자 유품과 증거들을 빼돌리거나 없애려 한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친정부 성향의 콘스탄틴 바토츠키 도네츠크 주 자치의회 의장은 "반군이 희생자의 유류품을 훔치고 현장에서 불리한 증거를 훼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마르크 뤼테 네덜란드 총리는 우크라이나 반군이 시신과 유품을 빼돌렸다는 의혹과 관련 "정말 역겹고 수사를 방해하는 심각한 행위"라고 비난했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가 이번 여객기 격추에 사용된 부크 지대공 미사일을 우크라이나 반군에 넘겨준 정황이 드러나 러시아에 대한 책임론이 고조됐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반군에 부크 지대공 미사일 시스템 여러 대와 탱크 등 군사장비를 지원했을 가능성이 크며 피격 후 러시아로 다시 옮겨진 것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반군에 중화기 등을 여전히 공급하고 있으며 반군 테러리스트들이 여객기 격추 증거를 숨기고 있다고 비난했다.
서방국들은 여객기 격추가 러시아의 지원을 받은 반군 소행임을 일제히 비난하면서 러시아에 대한 공세를 강화했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CNN 인터뷰에서 "증거들이 매우 분명하게 반군의 소행임을 가리키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과 독일, 프랑스 정상은 이날 전화 회의를 하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향해 국제조사단의 사고현장 접근 보장과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을 위한 즉각적인 조치를 촉구했다.
정상들은 러시아가 오는 22일 EU 외무장관회의 이전까지 필요한 조치를 내놓지 않으면 강력한 제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캐머런 총리는 "잔학행위의 책임자 색출과 처벌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며 "EU와 러시아, 우크라이나의 장기적인 관계 설정의 방향은 전적으로 러시아의 자세에 달렸다"고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각각 193명과 28명의 희생자가 나온 네덜란드와 호주 전역에서는 애도의 물결이 이어졌다.
네덜란드 주교회 회장인 빔 에이크 추기경은 추모 미사에서 "(희생자) 친지들이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도록 기도해달라"고 주문했다.
호주 시드니의 세인트 메리 대성당 미사에서 피터 커멘솔리 주교는 "이번 항공기 격추 사건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인간의 악행에서 빚어진 결과"라고 개탄했다.
미사에 참석한 토니 애벗 호주 총리는 "내 딸들도 몇 달 전 유럽에서 귀국하면서 MH17편을 이용했다"면서 "희생자들은 우리의 친구이자 이웃이며 자녀일 수도 있었다"고 밝혔다.
멜버른에선 이날 개막한 국제 에이즈콘퍼런스에 참석하려다 목숨을 잃은 에이즈 전문가들을 추모하는 특별 미사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