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사건의 중대성에 비춰 러시아를 상대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야욕을 거두고 사태 해결에 적극 나서라는 국제사회의 압박이 거세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옛 소련권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꾀하며 첫 단계로 옛 소련의 핵심인 우크라이나 크림 반도를 편입했고 이어 우크라이나 정부에 맞서는 동부 분리주의 반군을 공공연히 지지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등이 러시아 정부 인사와 기업인들에게 여러 차례 제재를 가하며 고삐를 죄었지만 푸틴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17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를 통과하던 민간 여객기가 미사일에 격추돼 수백명의 민간인이 희생되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미국 포린폴리시는 이날 여객기를 누가 격추했는지와 관계없이 이번 사건이 우크라이나 사태의 '게임 체인저'로 작용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뉴욕타임스도 사설에서 "우크라이나 사태가 너무 멀리 왔고 너무 위험해졌다"면서 "이것을 멈출 수 있는 사람은 바로 푸틴"이라고 지적했다.
만약 우크라이나 반군 세력이 러시아에서 공급한 미사일로 여객기를 격추한 것으로 확인된다면 국제사회에서 푸틴의 입지는 급격히 좁아질 수밖에 없다.
미국은 당당하게 제재 강도를 높일 것이고 그동안 러시아와 무역관계를 고려해 소극적 태도를 유지하던 유럽 국가들도 공세로 전환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이번 피격으로 154명의 최대 사망자가 나온 네덜란드를 포함해 프랑스, 벨기에, 호주 등의 대응이 주목 대상이다.
모스크바 카네기센터 전문가는 "반군이 러시아제 미사일을 쐈다는 증거가 있다면 서구 뿐 아니라 전 세계가 태도를 바꿔 푸틴을 압박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983년 소련 전투기가 대한항공 여객기를 격추했을 때도 당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학살, 테러 공격"이라고 비난한 바 있다.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에 반기를 들고 나선 푸틴이 그간의 행보를 접고 수세적인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도래하는 셈이다.
푸틴은 옛 소련 전성기 회복을 꾀하며 최근 전통 우방인 남미를 포함해 중국, 인도 등을 향해 적극적인 구애의 손길을 보내왔다.
그 일환으로 중국, 인도,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브릭스(BRICS) 국가들과 자체 개발은행인 '신개발은행'(NDB) 설립도 추진 중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일로 인해 푸틴이 바로 물러서지는 않을 것이며 오히려 사태가 더 확대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유라시아 그룹 대표 이언 브레머는 "푸틴이 우크라이나 반군이 제거되도록 내버려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면서 "오히려 우크라이나가 반군에 대한 군사 작전을 강화하면 이를 계기로 러시아가 개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