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싣는 순서 |
1. 휠체어 타고 시드니 산으로~ 바다로~ 2. 걷기 좋은 도시가 훌륭한 관광지 3. 축제 즐기는 시드니 장애인 4. 도시, 노인·장애인을 위해 돌계단 성벽을 허물다 5. 걷기 편한 도시는 관광산업도 성장 6. 베를린 관광버스 노인·장애인 태우고 go go 7. 오키나와, 관광지부터 호텔까지 바꿔야 산다 8. 노인·장애인 여행정보 ‘클릭한번으로’ 9. 항공기도 전철도 버스도 모두의 이동수단 |
지난 5월 14일, 관광객 20여명과 함께 무료로 진행된 ‘록스 투어’에 참가했다. 오전 10시 30분 시드니시청 광장을 출발해 오페라하우스에 도착할 때까지 2시간 30분 동안 시내 곳곳을 돌았다. 투어를 하면서 든 생각은 ‘시드니는 걷기 좋은 도시’라는 것. 투어 가이드 로스 씨는 “휠체어 장애인도 얼마든지 동참할 수 있는 코스”라고 했다.
햇볕 쨍쨍 내리쬐는 오후, 오페라하우스 앞을 산책하는 사람들 중에서 휠체어 장애인이 제법 눈에 띄었다. 제19회 시드니 비엔날레 전시관 중 하나인 뉴사우스웨일스 주립 미술관에서는 관람을 마친 주부가 경사로를 따라 유모차를 끌고 내려오는 모습도 보였다.
평소 수동 휠체어를 사용하는 폴 누나리(뉴사우스웨일스주 정부기관 이벤트 접근 담당 매니저) 씨는 “업무상 외근이 잦지만 휠체어로 다니는데 어려움이 없다”고 했다. 3살 짜리 아들을 둔 한국인 유학생 정진경 씨는 “유모차를 끌고 다녀도 거리가 위험하거나 불편하지 않다”고 했다.
횡단보도는 철저히 교통약자 위주다. 횡단보도를 건너려면 반드시 보행 신호등 지주에 설치된 보행신호버튼을 눌러야 된다. 버튼을 누르면 ‘뚜뚜뚜’ 소리가 나는데, 버튼 옆에 점자로 거리 이름과 건물 번호를 새겨놓았다. 모두 시각장애인의 통행권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다.
시드니시청에서 제작한 안내지도 ‘시드니 CBD’는 모든 사람이 시드니를 보다 편안하고 안전하게 즐길 수 있게 해준다. 장애인이 사용할 수 있는 주차공간, 공공화장실, 금융자동화기기(ATM), 대중교통 정류장 등의 위치가 일목요연하다. 비탈길이 많은 서큘러키 지역은 길의 경사도가 표시돼 있어 휠체어 접근 여부를 사전에 파악할 수 있다.
고풍스러운 멋을 풍기는 세인트 메리스 대성당은 건물 뒤편에 경사로로 된 출입구가 따로 있다. 또 건물 앞 광장에 설치된 경사로를 따라 내려가면 아늑한 휴식공간이 나온다. 큰 파라솔이 햇볕을 피할 수 있게 해주고, 너른 잔디밭이 심리적 안정을 도모한다.
사회적 약자에 친화적인 도시공간의 확대는 접근 가능한 관광의 활성화와 맞닿아 있다. 걷기 좋은 도시가 관광하기에도 편하기 때문이다.
이훈길 한양대학교 대학원(도시공학) 연구원은 저서 ‘도시를 걷다’에서 “도시는 여러 사람의 삶을 담기 보다는 건장한 성인 남성을 기준으로 계획하고 디자인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수용하고 소통을 이뤄낼 때 차별과 경계가 없는 공간이 완성된다”고 설명했다.
강병근 건국대 건축학과 교수(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만들기 연구소장)는 “걷기 편하고, 볼거리 많고, 쉴 곳 많은 도시는 그 자체로 훌륭한 관광자원”이라며 “일상공간의 장애물을 없애는 것이 접근 가능한 관광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인터뷰] 사이먼 다시 교수 "살기 좋은 도시가 관광하기 좋은 도시" |
다시 교수는 자신의 연구를 토대로 접근 가능한 관광 사이트 ‘시드니포올’(www.sydneyforall.com)을 만들었다. 장애인 관광객은 이곳에서 시드니 관광명소에 대한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장애유형 별로 각 장소의 접근 가능 여부가 꼼꼼하게 정리돼 있고, 사이트의 글자 크기와 색깔을 바꿀 수 있다. 연구비 12만 달러를 포함, 3년간 45만 달러의 제작비가 들었다. 그는 “다양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보다 쉽게 관광정보를 얻길 바랐다”며 “주정부에서 추가예산이 나오면 시드니 관광명소에 한정된 콘텐츠를 호주 전역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했다. ‘시드니포올’ 사이트는 2010년 춘천 세계레저총회에서 웹사이트 부문 혁신상을 받았다. 1981년 UN총회가 ‘세계 장애인의 날’을 선포하면서 호주 시민들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다. 이후 1992년 장애인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장애인 인권이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세계적으로 호주, 한국, 미국, 영국, 독일 등 5개국만이 장애인 차별금지법을 제정·시행하고 있다. 다시 교수는 “당시 건물에 장애인 편의시설을 갖추지 않은 것을 두고 건물주와 장애인 고객이 법정싸움을 벌였는데, 장애인 고객이 이겼다. 이 같은 판결은 장애인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운동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는 기폭제가 됐다”고 했다. 90년대 초반, 시드니가 2000년 올림픽과 패럴림픽을 유치하면서 이러한 분위기는 더욱 넓게 퍼졌다. 그는 “올림픽(패럴림픽)을 계기로 시드니에 있는 호텔의 접근 가능한 방이 두 배로 늘었고, 뉴사우스웨일스주에서 저상버스를 대거 도입했다. 단순히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늘었다는 사실보다 장애인 인권을 중요한 가치로 여겼다는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다시 교수의 2008년 연구에 의하면 시드니를 방문하는 관광객 중 장애인의 비중은 매년 8%에 이른다. 그는 “호주의 접근 가능한 관광산업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한다. “내가 재직 중인 대학에서 대규모 컨퍼런스를 열 계획이다. 교통편과 숙박시설을 입찰을 통해 결정해야 되는데, 장애인 접근성이 좋은 곳이 낙찰될 가능성이 크다. 그만큼 장애인의 구매력이 증가했다는 반증이다.” 그러면서 그는 휠체어 장애인인 동료 연구원(브루스 카메론)이 2010년 춘천 세계레저총회 참석차 한국을 방문했을 당시 겪은 일을 대신 전했다. “브루스가 비행기에서 내린 후 장애인 택시를 타려고 했지만 거부당했다. 알고 보니 한국 정부에서 발행한 복지카드를 소지한 한국 사람만 그 택시를 탈 수 있었다. 그 후 조직위에 요청해 교통편을 제공받았지만 한국 정부에서 휠체어를 사용하는 외국인 관광객에 대한 배려가 부족해 아쉬웠다.” 다시 교수는 “좋은 관광지는 단지 관광 차원이 아니라 통합적인 관점에서 봐야 한다”며 “교통, 숙박, 정보 시스템 등이 잘 갖춰져 있으면 살기 편하다. 살기 좋은 도시가 관광하기 좋은 도시”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