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가 자랑하던 홍명보 감독과 역대 어느 대표팀보다 뛰어난 재능을 갖춘 선수들이 모여 '축구의 나라' 브라질에서 열리는 월드컵에 도전했지만 결과는 예상과 크게 달랐다. 1998년 프랑스 대회 이후 16년 만의 월드컵 조별리그 무승에 그쳤다.
기대에 크게 못 미치는 성적에 홍명보 감독은 대한축구협회의 유임 결정에도 결국 사퇴했다. 브라질월드컵은 새로운 출발선에 선 한국 축구에 어떠한 교훈을 남겼을까.
◈계획성있는 대표팀 운영이 필요하다
요아힘 뢰브 독일 축구대표팀 감독은 브라질월드컵 우승이 확정된 뒤 "이 우승을 위해 10년을 준비했다"는 의미심장한 소감을 밝혔다.
실제로 독일은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준우승했지만 유럽축구선수권대회에서는 2000년 조별리그 최하위에 이어 2004년에도 무승의 부진한 성적으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이후 독일은 위르겐 클린스만 현 미국 축구대표팀 감독을 선임했고, 클린스만은 뢰브 감독을 수석코치로 임명했다.
2006년 클린스만 감독이 대표팀을 떠나자 독일은 수석코치였던 뢰브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기며 대표팀 운영의 연속성을 이어갔다. 이후 뢰브 감독은 계속해서 독일 대표팀을 이끌며 브라질월드컵에서 통산 네 번째 월드컵 우승까지 이끌었다.
반면 한국은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 사상 첫 원정 16강을 이끈 허정무 전 감독 이후 4년간 조광래, 최강희, 홍명보까지 총 3명의 감독이 차례로 지휘봉을 물려받았다. 결국 1년의 짧은 준비 후 월드컵 본선 무대에 나선 '홍명보호'는 부진한 성적으로 축구팬의 큰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브라질월드컵이 던진 화두, 유연한 전술 운용
스페인의 남아공월드컵 우승 이후 세계 축구의 흐름은 짧은 패스를 중심으로 하는 4-2-3-1 전술이었다. 대세를 따라 홍명보 감독 역시 이 전술에 맞춰 대표팀을 운영했다. 하지만 문제는 경직된 대표팀 운영이었다.
홍명보 감독은 대표팀 부임 후 줄곧 4-2-3-1 전술을 활용하며 전술적 변화를 시도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선수들은 고정된 전술의 범위 안에서 경기하는 것에 집중했다. 이 때문에 예상하지 못한 경기 중 상황, 상대의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졌다. 예상과 다른 선수 구성으로 경기에 임한 알제리에 허무하게 무너진 경기가 좋은 예다.
반대로 루이 판할 감독의 지도 아래 최종 엔트리 23명을 모두 활용하며 브라질월드컵 3위에 오른 네덜란드는 한국 축구가 배워야 할 모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네덜란드와 한국의 직접 비교는 무리지만 감독의 다양한 전술적 준비와 선수의 소화능력은 한국 축구의 미래를 위해서도 분명 필요하다.
당장 내년 1월 호주에서 열릴 아시안컵이 아닌 4년 뒤 러시아 월드컵과 8년 뒤 카타르 월드컵을 목표로 장기적인 안목에서 세계 무대의 중심으로 뛰어들 수 있는 분명한 무기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이번 대회를 통해 한국 축구는 세계적 수준과의 현격한 차이를 실감했다. 하지만 이번 대회의 주축 선수들이 20대 초중반의 어린 선수들이라는 점에서 한국 축구의 미래에 대한 섣부른 실망은 이르다.
이들이 브라질월드컵의 부진을 도약점으로 삼아 4년 뒤 러시아월드컵까지 세계 축구의 양대 산맥인 유럽에서 성장을 거듭한다면 분명 한국 축구의 재도약은 먼 미래의 꿈같은 이야기는 아니다.
더욱이 대한축구협회는 공식 출범한 유망주 육성 프로그램인 '골든 에이지 프로그램'을 통해 대표선수 선발의 확고한 기반을 만들겠다는 강한 의지를 선보였다. 당장 눈앞의 성적이 아닌 한국 축구의 전체적인 수준 향상이 '골든 에이지 프로그램'의 목표다.
이 모든 작업을 성공적인 결과로 이끌기 위한 확실한 리더도 필요하다. 우선 대한축구협회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대표팀을 성장시킬 감독을 뽑는다는 원칙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