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성이 아니더라도 피를 나눈 형제들끼리의 재벌가 싸움은 툭 하면 불거졌다. 삼성은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의 상속재산을 놓고 동생인 이건희 회장과 형인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 간 소송으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현대 역시 고 정주영 회장의 후계를 둘러싼 이른바 ‘왕자의 난’으로 그룹이 세 개로 쪼개지는 사태를 겪었다. 두산그룹 역시 형제간 경영권 다툼이 벌어졌는데 후일 박용오 전 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도 이게 근본적 배경이 됐다. 금호그룹은 박삼구·박찬구 두 형제의 경영권 분쟁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롯데와 한진, 한화, 코오롱, 태광 등 다른 그룹들도 예외 없이 이런 아픔을 겪었다. 우리나라 40대 재벌 가운데 17곳에서 이런 혈족 간의 분쟁이 벌어졌다. 거의 절반이나 된다.
상속재산을 더 받아내기 위해, 경영권을 차지하기 위해 형제들끼리 서로 적이 되어 싸우는 이런 모습은 그렇지 않아도 호의적이지 않은 재벌들에 대한 적대감을 더하게 만든다. 평범한 서민의 입장에서는 괴리감과 허탈감만을 안겨준다. 누가 옳고 그르고를 따지기 전에 모두 다 추악하고 탐욕스런 모습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들은 대부분 2세, 3세 세습 경영 과정에서 문제가 불거졌다. 재산이나 기업 모두 스스로의 노력으로 일군 것도 아니다. 재벌그룹이 부의 대물림을 위해 주식의 편법 증여나 차명주식거래, 내부자거래, 재산의 우회상속 등 온갖 수법을 동원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에 대한 차가운 시선은 더할 수밖에 없다.
재벌들의 잦은 혈족 분쟁은 한국적인 기업 구조의 후진성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전문성이나 능력에 관계없이 재벌가 자녀라는 이유만으로 너나없이 계열사에서 한 자리씩 꿰어 차고 있는 게 우리 재벌그룹의 모습이다. 더욱이 세습을 통해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황제경영에 익숙해 있는 상황에서 경영권을 독차지하기 위해 모든 것을 걸 수밖에 없는 구조이고, 이것이 피도 눈물도 없는 형제들 간의 싸움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후진성을 바꾸지 않는 한 앞으로도 눈살 찌푸리게 하는 재계의 모습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재벌가문이 우리 사회에서 존경받지도, 제대로 인정받지도 못하고 있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 위상만큼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의 유명 기업인처럼 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도 드물고, 경영을 전문가에 맡기는 경우도 많지 않다. 동반자로서 기업의 한 축이 되어야 할 노조를 불온시 하는 경향도 여전하다. 이런 모습에서 특 하면 터지는 형제들 간의 싸움은 재벌기업에 대한 반감만 더 커지게 만들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