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 감독은 10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축구대표팀 감독 자진 사퇴를 선언했다. 브라질월드컵 성적 부진에도 대한축구협회가 유임을 발표한 지 정확히 일주일 만이다.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내려놓는 자리에서 홍명보 감독은 자신의 실패를 인정했다. 하지만 실패의 분명한 원인도 함께 지목했다. 홍 감독은 브라질월드컵 부진의 원인을 자신이 월드컵 예선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본선에 직행한 점을 꼽았다.
"월드컵 실패 원인을 찾아보니 머리 속에 드는 하나의 생각이 내가 예선전을 거치지 않은 감독이라는 점"이라고 밝힌 홍 감독은 "예선을 거쳤다면 선수들의 능력과 장단점을 더 잘 알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아는 선수로 팀의 골격을 만드는 게 가장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면서 "2012년 올림픽을 다녀온 감독이기 때문에 올림픽에 다녀온 선수들을 객관적으로 놓고 평가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K리그 선수들까지 모두를 평가했을 때 그들이 낫다고 생각했다"고 선수 선발의 기준을 공개했다.
사실 홍명보 감독은 브라질월드컵 최종명단을 선발한 뒤 자신이 편애하는 선수로만 최종명단을 구성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홍 감독도 국가대표팀을 떠나는 자리에서 이를 어느 정도 시인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홍 감독이 대표팀을 구성하기까지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조광래 전 감독과 최강희 전 감독이 차례로 예선을 이끌었고, 홍 감독에게는 본선 진출이 확정된 대표팀이 맡겨졌다. 애초부터 대표팀 운영의 연속성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홍 감독의 부임으로 대표팀 코칭스태프 구성도 바뀌었다. 대표팀 후보군에 오른 선수들의 경기력 파악도 한계가 있었다. 이 때문에 홍 감독은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선수들이 대표팀 선발의 기준이 될 수밖에 없었다. 성공적인 월드컵 준비를 위해 1년의 시간은 너무 짧았다.
결과적으로 홍 감독의 선택은 실패로 끝났다. 비록 2002년 4강 신화의 중심에 있던 한국 축구의 영웅 한 명은 실패자라는 낙인이 찍힌 채 쓸쓸하게 무대를 떠나게 됐다. 하지만 한국 축구는 이 경험을 통해 차기 대회를 더욱 세심하게 준비할 계기를 마련했다. 적어도 차기 감독에게는 당장 눈 앞에 있는 아시안컵에 급급하기보다는 거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