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이리 될 것을…' 더 큰 참극 부른 '축구협 무리수'

'전, 현 월드컵 감독의 슬픈 결말'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왼쪽)이 10일 축구회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사퇴 의사를 밝힌 가운데 허정무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이 역시 사퇴의 뜻을 내비치기 위해 회견장에 들어서고 있다.(사진=박종민 기자)
씁쓸한 사퇴였다. 결국 이렇게 될 것을 10여 일 동안 버티면서 그동안 쌓여온 이미지만 더 깎였다. 대한축구협회의 무능한 행정은 또 다시 질타를 받게 됐다.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은 10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1990년 선수 때부터 감독까지 24년 동안 국가대표팀 생활을 해왔는데 오늘로서 이 자리를 떠나겠다"고 밝혔다. 대표팀 사령탑 사퇴의 변이었다.

지난해 7월 동아시안컵을 통해 처음 지휘봉을 잡은 지 1년 만이다. 홍 감독은 A매치에서 총 19경기 5승4무10패의 성적을 냈다.


'2014 브라질 월드컵' 성적이 결정적이었다. 사상 첫 원정 8강을 노렸지만 1무2패로 조별리그도 통과하지 못했다. 특히 1승 제물로 여겼던 알제리에 2-4 충격패를 안았고, 1.5군에 선수 1명이 퇴장당한 벨기에를 상대로는 0-1 패배를 당했다.

여기에 대회 전부터 '의리' 논란을 빚었다. 홍 감독은 대표팀 선발에서 2009년 U-20 월드컵,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2012년 런던올림픽 등 자신이 맡았던 대표팀 선수들을 중용했다. 이른바 '엔트으리' 논란이었다.

특히 소속팀에서 출전이 거의 없던 공격수 박주영을 발탁해 문제가 커졌다. 여기에 독일 분데스리가 대표 왼쪽 풀백 박주호(마인츠) 대신 잉글랜드 2부리그 윤석영(QPR)을 뽑기도 했다. 김진수(호펜하임)의 부상으로 박주호는 우여곡절 끝에 합류하긴 했다.

하지만 월드컵에서 다시 의리 논란이 불거졌다. 경기력에 의문 부호가 달린 박주영과 골키퍼 정성룡(수원)을 중용해 용병술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이후 장신의 김신욱과 김승규(이상 울산)이 출전해 선전하면서 홍 감독이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점이 부각됐다.

▲월드컵 직후 홍명보 감독 사퇴했더라면…

당초 홍 감독은 월드컵 직후 사퇴 의사를 두 번이나 협회에 내비쳤다. 그러나 협회는 내년 1월 아시안컵까지 대표팀을 맡아달라며 정몽규 회장까지 나서 만류했다. 지난 3일 기자회견에서 허정무 부회장은 "홍 감독이 그동안 쌓아온 업적 때문에라도 기회를 줘야 한다"고 유임의 뜻을 드러냈다.

하지만 홍 감독은 여전히 거센 비난 여론에 결심을 굳혔다. 벨기에와 월드컵 최종전 이후 현지에서 대표팀이 음주가무 뒤풀이를 했다는 정황이 포착됐고, 홍 감독이 월드컵 직전 훈련 기간 토지를 구입했다는 한 매체의 보도도 잇따랐다.

선수단이 참담한 결과에 대한 반성은커녕 즐겼다는 데 대한 질타가 쏟아졌고, 홍 감독은 대표팀 사령탑이라는 자리를 빌어 CF로 번 거액을 땅 투자에 썼다는 비난에 직면했다. 모두 월드컵에 총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국민적 분노의 표출이었다.

더 큰 문제는 축구협회다. 그동안 성적에 따라 사령탑 교체를 수시로 했던 협회가 이번만큼은 홍 감독을 옹호하고 나선 데 대해 비판을 받았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도중 차범근 현 SBS 해설위원을 경질했고, 2011년 말 조광래 감독을 절차없이 잘랐던 협회였다.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협회가 홍 감독을 유임한 행정은 애시당초 무리수였다. 월드컵 성적에 대한 책임을 감독은 물론 협회 인사 아무도 지지 않았다. 누군가는 메야 할 총대를 홍 감독이 뒤늦게 짊어진 것이다.

만약 홍 감독이 처음 물러날 뜻을 밝혔을 때 옷을 벗었다면 월드컵 이후 일련의 사건에 대한 비난은 지금만큼 크지 않았을 터. 결과적으로 협회의 무리수가 문제를 더 키운 꼴만 됐다.

여기에 허정무 부회장까지 사퇴하게 됐다. 애초 1명만 총대를 메면 어느 정도 사태는 수습될 수 있었으나 두루뭉술 넘어가려다 더 큰 참극을 맞게 된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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