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분 동안 잘해도 단 한번의 실수로 인해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스포츠가 축구다.
전 세계 축구 팬들이 기억하는 '로베르토 바지오의 악몽'이 있다.
바지오는 1994년 미국월드컵에서 이탈리아를 결승 무대에 올려놓은 일등공신이었다. 조별리그에서는 침묵했지만 토너먼트에 들어 폭발적인 득점 행진을 벌이며 대회 최고의 스타로 발돋움했다.
그러나 바지오는 브라질과의 대회 결승전 승부차기에서 결정적인 실축을 범했고 우승트로피는 이탈리아가 아닌 브라질의 몫이 됐다. 세계적인 축구 스타 바지오의 '흑역사'이자 지금도 그의 이름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이야기가 바로 1994년 결승전이다.
이처럼 승부차기는 잔혹한 게임이다. '축구판 러시안 룰렛'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실력은 기본, 멘탈 싸움에서 키커와 골키퍼의 승패가 갈린다. 아무리 세계적인 스타라고 해도 승부차기에서 항상 웃을 수만은 없다.
'아트사커의 창시자' 프랑스의 미셀 플라티니, 아르헨티나의 디에고 마라도나 등 세계적인 스타들도 월드컵과 같은 큰 무대에서 승부차기를 실축한 경험을 갖고있다.
킥 능력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잉글랜드의 스티븐 제라드와 프랭크 램파드 역시 마찬가지다. 2006년 독일월드컵 포르투갈과의 8강전에서 그 누구도 두 선수가 연거푸 실축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10일(한국시간)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열린 2014 브라질월드컵 아르헨티나와 네덜란드의 준결승전은 120분 동안 0-0으로 승패를 가리지 못한 채 승부차기에 돌입했다.
이미 한 차례 승부차기에서 웃었던 네덜란드다. 루이스 반 할 감독은 코스타리카와의 8강전에서 연장전 종료 직전에 골키퍼를 바꾸는 강수를 뒀고 투입된 팀 크룰이 두 차례 선방을 펼치면서 네덜란드를 4강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웃지 못했다. 이번에는 중용을 받은 주전 골키퍼 야스퍼 실리센이 4차례 슈팅을 1개도 막지 못한 바람에 아르헨티나가 4-2로 승리했다. 네덜란드에서는 첫 번째 키커 론 블라르가 그리고 간판 미드필더 베슬리 스네이더가 실축했다.
믿었던 스네이더의 실축은 네덜란드에게 뼈아팠다.
반면, 아르헨티나의 간판 스타 메시는 '승부차기의 악몽'을 피해갔다. 블라르가 실축한 가운데 아르헨티나의 첫 번째 키커로 나선 메시는 부담감을 이겨내고 침착한 슈팅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보통 강심장이 아니면 해내기 어려운 과제였다.
아르헨티나의 골키퍼 세르히오 로메로는 두 차례 선방으로 승리의 주역이 됐다. 1990년 개최국 이탈리아와의 8강전에서 두 차례 선방을 펼쳐 아르헨티나를 승리로 이끌었던 전설적인 골키퍼 고이고체아를 다시 보는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