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포매니악'이 들춰낸 설익은 여성관 강요 시대

볼륨1·2 총 4시간 동안 펼쳐지는 질펀한 섹스담…"많이 하는 게 나쁜 거야?"

길거리에서 담배를 입에 문 여성을 바라보는 그대의 눈길은 어떤가. 그대가 남자라면 '여자가 어디서' 혹은 '당돌하네'라는 생각에 얼굴을 찌푸리거나 피식 웃는 경우가 대다수일 듯 싶다. 반대로 그대가 같은 여자이더라도, 부정적 시선은 현저히 줄겠지만 '안 보이는 데서 피워도 되잖아'라며 좋지 않게 여길 이들이 꽤 있을지 모를 일이다.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는 머릿속 인식과는 달리, 현실에서 막상 이를 대입시켜야 할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우리의 자세는 사뭇 달라지기 일쑤다. 흡연과 같은 사소한 것에서조차 '남자는 되고, 여자는 안 되는' 행위가 나뉜 사회에서는 계급·인종 차별이 필연적으로 따라붙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이리라.
 
이러한 차별의 대가로 누가, 어떻게 권력을 얻어내는지를 추적하는 일은 삶의 노예에서 주인으로 거듭나려 애쓰는 모든 개인에게는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덴마크 출신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문제작 '님포매니악(Nymphomaniac)'은 사회 시스템의 강요로 자행돼 온 차별의 민낯을 오롯이 드러낸다는 점에서 그 과제의 중요성을 깨닫도록 돕는 흥미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각각 두 시간 분량의 볼륨1과 볼륨2로 나뉘어 개봉한 님포매니악은 정신을 잃고 길거리에 쓰러져 있던 여자 색정광 조(샤를로뜨 갱스부르)가 자기를 도와 준 해박한 남자 샐리그먼(스텔란 스카스가드)에게 지난 섹스 경험을 들려 주는 형식을 띠고 있다.
 
두 살 때 자기 성기가 특별히 예민하다는 것을 알게 된 젊은 조(스테이시 마틴)에게는 그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어린 시절 엄격한 엄마의 눈을 피해 욕실 문을 잠그고 성기를 자극하는 '개구리 놀이'를 즐기고, 소풍을 간 어느 날 신의 계시처럼 전설적인 여자 색정광들을 만나는 신비한 경험을 했던 그녀다.
 
그러한 조도 근대 산업화를 기점으로 널리 퍼진 가부장제가 요구하는 여성의 역할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극중 조가 시대의 주류 여성상에 편입되도록 유도하면서도 다시 튕겨져 나가도록 만드는 인물을 제롬(샤이아 라보프)이라는 한 남성으로 축약해 보여 준다는 점은 흥미로운 설정이다.
 
영화 '님포매니악'의 한 장면
젊은 조는 우연히 알게 된 제롬을 찾아가 그에게 "처녀성을 바치고 싶다"고 말한다. 본능적으로 끌리는 이성과의 환상적인 섹스를 기대했던 조는 피보나치 수열인 '3+5'로 표현된 무미건조한 섹스에 실망하고, 근대 이후 일부일처제를 강화하는 근거가 된 '낭만적 사랑'을 거부한 채 수많은 남자와 섹스를 하며 자기 존재를 확인한다.
 
학교를 졸업하고 집으로부터 독립해 사회 생활을 시작한 조는 첫 직장에서 제롬과 재회하는데, 여타 남자들에게서 느끼는 것과는 다른 감정으로 자신이 그를 원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조는 이 일을 기점으로 상대와의 교감을 전제로 한 섹스가 더욱 값지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훌쩍 떠나 버린 제롬과의 인연은 다시 어긋난다.
 
이어 조는 각기 다른 세 가지 선율이 조화를 이뤄 하나의 음악을 이루는 바흐의 다성음악에 비유된 세 남자와의 인상적인 섹스담을 들려 주는데, 이때 제롬이 주요 선율로 그려지면서 둘 사이 인연의 끈은 다시 펼쳐진다. 제롬과 다시 만난 조는 성감대를 잃어 버리고 좌절하지만, 둘은 함께 살고 아들도 낳으며 이 시대의 '일반적인' 가족 공동체를 꾸린다.
 
너무 일반적이었던 것일까, 돈을 벌기 위해 바깥에 나가 며칠 만에 집에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제롬은 조에게 소위 모성애를 강조하며 육아에 대한 책임을 떠넘긴다. 그러한 강요 앞에서 조는 가족을 버리고 잃어 버린 자신의 성감대를 찾아 집을 나선다. 이후 조와 제롬은 다시 한 번 만나지만 그 재회의 대가는 너무도 처참했다.
 
이 영화의 처음과 끝은 스크린이 암전된 상태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똑똑 떨어지는 물소리, 끽끽 대는 쇳소리 뒤에 이어지는, 카메라가 음침한 도시의 뒷골목을 상하좌우로 훑는 장면을 보면서 여성의 은밀한 곳을 상상했을 관객은 다소 충격적인 마지막 장면을 접하면서 번쩍 정신이 들 것이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이 엔딩 시퀀스를 통해 마치 "당신이 여자를 단순히 욕망의 대상으로 봐 온 남자라면 반성 좀 하고, 여자라면 자기 삶의 주인이 돼"라고 살며시 속삭이는 듯하다.
 
영화 '님포매니악'의 한 장면
극 중반 여성의 성기 사진이 90도 돌아가 깜빡이는 눈이 되는 장면, "내가 남들과 다른 점은 노을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바랐다는 것뿐"이라고 말하던 조가 산 정상에 올라 간절한 듯 태양을 향해 모든 가지를 뻗고 있는 영혼의 나무와 만나는 시퀀스 등은 그녀가 자기 존재에 솔직하고자 애써 온 한 인간이라는 점을 대변한다.
 
사실 조의 섹스는 극중 낚시, 바흐의 음악, 종교 등과 연결되는 것처럼 몹시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극중 섹스를 도려낸 자리에 글이나 춤, 노래를 삽입하면 이 영화는 비범한 열정을 지닌 한 예술가의 일대기가 된다.

복잡하게 갈 필요도 없다. 조에게 여자가 아닌 남자라는 성역할을 대입하면 그의 섹스담은 존 주앙, 카사노마에 버금가는 전설적인 무용담쯤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남들보다 섹스를 많이 하고 좋아한다는 이유로 조의 삶이 이목을 끄는 현실은 이 시대가 여전히 남성 위주로 돌아가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현재 우리 사회의 남성과 여성의 성역할이 완전히 바뀐 세상을 흥미롭게 그린 게르드 브란튼베르그의 소설 '이갈리아의 딸들'을 떠올린 것은 우연이 아니다.
 
참고로 이 영화는 1차 등급심의에서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아 상영이 불투명했으나 문제가 된 장면들에 뿌옇게 블러 처리를 해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얻어냈다. 문제는 블러 처리된 장면들이 여자의 성기와 오럴 섹스(구강성교) 장면 위주인데, 상대적으로 남자의 성기가 나오는 장면들은 관대한 심의 기준이 적용된 모습이다.

이는 마치 "여자가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니기 때문에 성폭행이 증가한다"는 식의 주객이 전도된 비뚤어진 입장과 닮은꼴이어서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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