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협회는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초라한 성적을 거둔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을 유임했다. 허정무 협회 부회장은 3일 오전 축구회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월드컵 성적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겠다"면서도 "홍명보 감독 개인의 사퇴가 해결책은 아니다"며 재신임을 결정했다.
확실히 축구협회의 이번 유임 결정은 그동안의 행보를 보면 의아한 일이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 때는 차범근 감독을 대회 도중 경질했다. 차범근호는 첫 월드컵 16강 진출이라는 기대를 품고 출전했으나 멕시코와 조별리그 1차전에서 1-3 역전패, 네덜란드와 2차전에서 0-5 대패를 당했다.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협회는 차 감독을 즉각 경질했다. 한국 축구사뿐 아니라 세계 축구사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월드컵 기간 중 징계였다. 벨기에와 3차전은 대표팀은 감독 없이 경기를 치러 1-1로 비겨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켰다.
협회의 서릿발 같은 칼날의 가장 가까운 예는 조광래 전 대표팀 감독이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이후 지휘봉을 잡은 조 감독은 2011년 아시안컵 3위, 그해 8월 일본 원정 0-3 패배, 월드컵 예선 부진 등을 이유로 1년 5개월 만에 잘렸다. 역시 당시 협회 논리는 '성적 부진'이었다.
또 "월드컵 준비 기간을 충분히 보장하지 못한 협회의 책임도 있다"면서 비난을 함께 짊어지려는 자세까지 보였다. 일관성을 잃은 태도가 '홍명보 지키기' '홍명보 감싸기'라는 지적이 나올 법한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홍 감독에게 준비 기간이 부족했으니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월드컵 최악 부진과 관련해 감독도, 협회 등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유야무야 넘기려 한다는 점이다.
축구협회는 "월드컵에 대한 처음 준비 과정부터 끝났을 때까지 세밀하게 분석하고 있다. 분석 후 책임질 사람은 책임지겠다"고 했다. 성적 부진에 대한 분석도 없이 우선 '홍명보 유임'이라는 카드부터 내놓은 것이다. 축구 팬들의 분노는 성적 때문이 아니라 감독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지는 협회의 태도에 더 커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