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호'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14 국제축구연맹(FIFA) 브라질월드컵을 마치고 귀국했습니다. 1998년 프랑스 대회 이후 조별리그에서 승리하지 못한 것도 16년 만이라 팬들의 환대를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엿 폭탄'에 더욱 씁쓸한 귀국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실상 이번 월드컵 준비의 모든 것을 쏟아 부었던 러시아와 경기에서 무승부를 거둔 뒤 알제리, 벨기에에 내리 패한 '홍명보호'는 사상 첫 원정 8강이라는 공식적인 목표에 근접하지도 못한 채 H조 최하위라는 최악의 성적에 머물렀습니다.
지난 5월 '홍명보호'가 처음 소집하던 날부터 이들을 줄곧 지켜보면서 어쩌면 이번 월드컵에서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의문이 현실이 되는 순간 저 역시 큰 아쉬움을 느껴야 했습니다. 그동안 느꼈던 아쉬움을 이제야 털어놓는 것이 비겁해 보일 수는 있지만 저 말고도 분명 같은 느낌을 받았던 이들이 많았다는 것을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한 만큼 뒤늦게 공개해봅니다.
결과적으로 아쉬움이 컸던 것은 너무도 빨랐던 최종명단 발표입니다. 애초 5월 28일 튀니지와 평가전을 마치고 최종명단을 발표하기로 했던 홍명보 감독은 돌연 5월 8일에 브라질월드컵에 나설 23명을 공개했습니다. 30명의 예비명단을 소집해 그중 가장 경기력이 좋은 선수들을 최종명단으로 뽑는 그간의 방식에서 벗어난 과감한 선택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홍 감독의 선택은 패착이 되고 말았습니다. 선수들의 소집이 늦어진 데다 부상까지 겹치면서 미국 마이애미 전지훈련까지 국내에서 진행한 소집훈련은 사실상 무용지물이었습니다. 게다가 국내 출정식을 겸했던 튀니지전까지 패하면서 선수들은 무거운 마음으로 출국해야 했습니다.
두 번째는 미국 마이애미 전지훈련입니다. 대표팀은 조별리그 첫 상대인 러시아를 꺾기 위해 미국 마이애미에서 전지훈련을 했습니다. 러시아전이 열릴 브라질 쿠이아바가 덥고 습한 날씨라 이에 대비하기 위함이라는 충분한 이유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대표팀이 도착한 쿠이아바는 생각처럼 덥지 않았습니다. 남반구에 위치한 브라질의 6월은 겨울이라는 점을 간과한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습도는 높았지만 평균 20도 중반의 덥지 않은 날씨에 다소 놀랐습니다. 덥고 습한 미국 마이애미에서 컨디션 조절에 애를 먹었던 선수들의 모습이 더욱 애처롭게 느껴졌을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대표팀은 러시아를 상대로 행운이 따르는 선제골을 넣었고 목표로 했던 무승부를 거뒀습니다. 비록 최상의 결과는 아니었지만 이 무승부에 대표팀은 튀니지전과 가나전 패배의 기억을 씻고 활기찬 분위기 속에서 알제리전을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네 번째 아쉬움은 FIFA 세계랭킹에서 아프리카 최강(22위)을 자랑하는 알제리를 너무나 얕봤다는 점입니다. 모든 상황을 취재진에게 알릴 필요는 없지만 분명 취재진이 직간접적으로 전해 들은 대표팀은 러시아전 직후 알제리와 경기를 적극적으로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훈련장에서 만난 선수들은 알제리전을 대비한 상대국 분석을 시작했느냐는 물음에 고개만 가로저었습니다. 경기 전날에야 선수단이 알제리전을 대비한 비디오 분석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알제리를 최약체로 분류했던 만큼 상대를 얕보는 것이 아닌가라는 우려가 들었고, 결국 이 걱정은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 아쉬움은 홍명보 감독의 유연하지 못했던 선수 운용입니다. 대표팀 소집 후 국내 취재진은 홍명보 감독이 월드컵에서 활용할 4-2-3-1 전술의 베스트 11을 일찌감치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선수들과 대화에서도 주전과 비주전이 일찌감치 나뉘어 있다는 느낌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비주전이 유력한 일부 선수들은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팀을 위한 희생'을 강조했습니다. 그들이 말했던 희생은 그라운드가 아닌 그라운드 밖에서의 희생이었습니다. 주전 선수들이 더 나은 경기력을 선보일 수 있도록 자신을 희생하겠다는 것이 그들이 월드컵을 준비하는 자세였습니다.
비록 결과는 아쉽지만 브라질월드컵은 한국 축구에 좋은 약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의 '비정상적인 성공'에 도취했던 한국 축구가 세계랭킹 57위의 현실을 제대로 확인할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부진을 통해 적어도 눈앞의 상황에만 집중하는 태도를 버리고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을 준비하는 장기적인 안목을 바랄 기회가 만들어졌습니다. 꿈에서 깬 한국 축구가 다시 한 번 '아시아의 맹주'로 세계 무대에서 우뚝 서는 그 날을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