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당량 맞추기 급급한 규제개혁…곳곳서 균열

규제 숫자 줄이기로 변질된 규제개혁…본연 목표와 괴리


“돈 한 푼 안 들이고 투자를 늘리는 방법은 규제개혁 뿐이다.” 올 초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혁신 3개년계획에서 규제개혁을 강조했다. 내수를 살리려면 투자가 일어나야하고, 돈 안 들이고 투자를 일으키려면 규제완화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규제는 암덩어리’라는 박 대통령의 발언이 잇따랐고, 정부는 국무총리를 중심으로 대대적인 규제개혁 작업에 들어갔다. 목표는 올해 안에 경제규제의 10%를 감축하는 것.

26일 현재, 전체 등록규제는 1만5,305건. 국무조정실은 여기서 감축대상인 경제규제를 1만54건 정도로 보고 있다. 10% 감축목표에 따라 정부 부처들은 모두 1천여건의 규제를 없애야하는 과제가 떨어졌다.

각 부처들은 쥐어짜내다시피 감축계획을 내놨고, 지난달 말 모두 1,028건의 규제를 줄이겠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국무조정실은 이 가운데 886건만 인정해주기로 했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이날 담화에서 박 대통령은 강력한 규제개혁 의지를 밝혔다. (사진=청와대 제공)

◈ "더 줄여라" 압박에...부글부글


법령의 조문만 살짝 바꾸거나, 부분적인 규제완화 등 규제감축으로 볼 수 없는 내용이 142건이나 나왔다는 것이다. 규제 10% 감축이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동연 국무조정실장은 지난 10일, “10% 목표 달성을 위해 추가로 부처에서 더 감축 대상을 내도록 하는 조치를 할 계획”이라며, 압박 수위를 한층 더 높였다.

그러나 이처럼 숫자 채우기 위주로 흘러가는 규제개혁에 대해 정부 부처 내에서 동의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안전이나 환경, 경제민주화 등에 관련된 부처들은 불편한 속내를 감추지 않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19일 공정거래분야의 규제개선 방안을 발표하면서, 질적인 규제개혁을 강조했다. 규제의 건수를 줄이기 보다는 시장상황이 변하면서 의미가 없어진 규제를 정비하고 개선하는 작업이 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공정위의 한 고위 관계자는 “규제의 일부를 개선한 것은 규제감축에 포함되지 않는데, 그렇게 해서는 한계가 있다는 설명을 국무조정실에 여러 번 드렸다”며 일률적인 규제 10% 감축에는 한계가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정부가 개설한 규제정보포털. 규제건수가 매일 표시되며, 규제개혁과 관련한 각종 정보를 열람할 수 있다.

윤성규 환경부 장관도 최근 “환경을 희생하는 규제는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환경부의 규제개혁은 ‘규제의 과학화’에 초점을 두고 있다. 기술발전으로 뒤떨어진 규제들을 정비하고 개선하는데 집중한다는 뜻이다. 단순한 숫자 줄이기와는 거리를 두겠다는 입장이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규제완화의 적절성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해양수산부도 총리실과 안전관련 규제의 개수를 놓고 이견을 보이고 있다. 해수부에서는 안전규제로 보는 것도 총리실에서는 경제규제라며 감축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대로는 꼭 필요한 규제도 없애야 할 판이라며 불만도 커지고 있다.

◈ "규제완화는 구식...새로운 방안 찾아야"

이처럼 일률적으로 감축 개수를 정해놓고 숫자 줄이기로 변질된 규제개혁 작업에 곳곳에서 균열이 생기고 있다. 게다가 이를 주도적으로 이끌어야 할 국무총리 임명이 늦어지면서 균열은 점점 커지고 깊어지는 모양새다.

이런 가운데 규제완화로 대통령이 강조한 대로 투자와 내수 활성화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조원희 국민대 교수(경제학)는 “규제완화는 전통적인 경제정책”이라며 “지금의 경제 문제는 과거에 규제완화 등 전통적 경제정책을 시행한 결과물인데, 이 문제를 다시 규제완화로 풀려고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규제 감축의 양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실효성 있는 질적인 개혁이 필요하고, 더 나아가 내수 부진 등의 경제 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접근이 수반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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