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투를 칠 줄 몰라도 영화 '타짜'를 재밌게 볼 수 있고, 태극권을 하지 못해도 무협 영화를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다. 물론 바둑을 아는 관객들의 눈에는 이 영화의 장단점이 보다 뚜렷하게 보일 것이다.
극중 인생을 바둑에 빗댄 은유적 표현들이 종종 등장하지만, 우리가 살면서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말들인 만큼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저게 바둑 용어였어?"라고 놀랄 관객들도 있을 것이다.
언론시사 당시 이 영화를 본 혹자는 "바둑에 관심이 생겼다"고도 했으니, 철저히 오락적인 측면에서 액션과 바둑을 조합한 이 영화의 노림수는 일단 성공한 셈이다.
프로 바둑기사 태석(정우성)은 형의 부탁으로 내기 바둑판에 나섰다가 사기 바둑꾼 살수(이범수)의 덫에 걸려 형을 잃은 것도 모자라 살인 누명까지 쓴 채 교도소에 들어간다.
몇 년 뒤 출소한 태석은 장님인데도 뛰어난 바둑 실력을 지닌 주님(안성기), 바둑 둘 때 머리보다는 입을 더 많이 쓰는 꽁수(김인권), 사기 바둑꾼으로 산 과거를 숨긴 채 목수로 살아가는 허목수(안길강) 등 실력자들을 모은다.
그렇게 복수를 위해 팀을 꾸린 '큰돌', 그러니까 태석(太石)은 살수와 그 무리인 전직 프로바둑기사 배꼽(이시영), 승부조작 브로커 선수(최진혁) 등과의 한판 대결을 준비한다.
영화 신의 한 수는 모두 9개의 장으로 꾸며졌다. 바둑을 소재로 한 영화인 만큼 각 장의 제목도 '패착(지게 되는 나쁜 수)' '착수(바둑판에 돌을 놓다)' '포석(전투를 위해 진을 치다)' '행마(조화를 이뤄 세력을 펴다)' '단수(한 수만 더 두면 상대의 돌을 따낼 수 있는 상태)' '회도리치기(연단수로 몰아치는 공격)' '곤마(적에게 쫓겨 위태로운 돌)' '사활(삶과 죽음의 갈림길)' '계가(바둑을 다 두고 승패를 가리다)'까지 모두 바둑 용어에서 따왔다.
일상어로도 널리 쓰이는 이들 바둑 용어는 그 의미대로 태석이 복수를 결심하고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는 이야기 구조와도 효과적으로 맞물린다.
주인공 태수가 '딱밤'이든 뭐든 받은 만큼 돌려 주는 인물이라는 점도 그렇고, 그가 적들을 상대하는 서예학원, 냉동창고, 럭셔리 바 등의 장소와 그가 사용하는 무기들 역시 복수가 주는 카타르시스의 극대화라는 뚜렷한 목적을 품은 장치로 다가온다.
태수와 선수가 웃통을 벗어 젖히고 탄탄한 근육질 몸매를 뽐내며 사활을 건 결투를 벌이는 시퀀스나, 극 말미 검은 정장을 입은 무리(흑돌) 속에 홀로 흰색 정장을 입고 들어가는 태수(백돌)의 모습을 위시한 미장센 등은 치밀하게 계산된 오락물이라는 이 영화의 정체성을 오롯이 드러낸다.
올여름 성수기 극장가의 포문을 여는 첫 한국 영화로서 신의 한 수는 그렇게 액션에서 리얼리티보다는 스타일리쉬를 강조했고, 주요 소재로 쓰인 바둑 역시 단순명료한 이야기와 액션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감칠맛 나는 양념으로 활용한다.
오락물로서 이 영화의 또 다른 강점은 주인공인 태수 캐릭터에만 몰입하도록 강요하지 않은 만듦새다.
장기판에서 각각 쓸모가 다른 말들처럼 망가진 삶을 역전시키는 묘수(극중 주님의 대사), 곧 '신의 한 수'를 좇는 각각의 캐릭터는 제 역할을 충실히 이행함으로써 짜임새 있는 한판을 완성해내는 모습이다.
청소년 관람불가, 상영시간 118분, 3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