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피노 판결로 확인된 부끄러운 한국

[노컷 사설]

(사진=이미지비트 제공/자료사진)
한국인 아버지와 필리핀 출신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혼혈아를 일컫는 코피노(KOPINO)의 친자확인 소송 판결이 사회적 파장을 낳고 있다. 필리핀에서 사업을 하던 한국인 남성이 현지 여성을 사귀며 아들 둘을 뒀지만 한국으로 돌아가 10년 넘게 연락을 끊자 필리핀 여성이 한국에 들어와 수소문 끝에 어렵게 이 남성을 찾았고 소송을 제기해 두 아이가 이 남성의 친자식임을 인정받은 것이다. 소송 과정에서 이 남성은 유전자 검사를 거부하며 버티다 법원의 강제 검사명령을 받기도 했다. 이렇게 코피노 문제로 소송이 제기되고 자식으로 인정받는 판결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필리핀 현지에 버려진 코피노는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현재 3만 명 수준으로 알려졌다. 필리핀에 거주하는 한국인 사업가나 유학생들이 현지 여성과 동거하다 아이를 낳으면 책임지지 않고 연락을 끊어버리는 게 그동안의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최근 들어서는 상당수의 코피노가 한국 남성의 성매매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지난해 필리핀을 방문한 외국인 470만 명 가운데 한국인은 100만 명을 넘어 외국인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특히 지난 5년 사이에 한국인 방문객은 거의 2배로 증가했다고 한다. 이들의 상당수가 골프치고 성매매하는 한국 남성들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사회 안전망이 부실해 많은 필리핀 여성이 성매매에 몰리고 있는데다 가톨릭 국가인 필리핀에서는 낙태가 금기시 되고 있다. 여기에 한국 남성의 비뚤어진 성 의식이 코피노가 급증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한 국제기구 대표의 말을 인용해 한국은 미국이나 일본에게서 당한 성적 착취 문제를 오래 전부터 제기했는데, 이제 한국도 좀 잘 살게 되자 한국 남성들이 필리핀에 가서 똑같은 악행을 저질렀다고 보도했다. 코피노 문제가 국제사회의 비난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코피노 문제에 대해 손을 놓고 있었다. 더 이상 방치하지 말고 이번 판결을 계기로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 일본에서도 과거 자피노(JAPINO)라고 하는 필리핀 혼혈 문제로 몸살을 앓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20년 전부터 해결 방안을 마련해 해외 혼혈아에게 취업비자를 주는 문턱을 낮추고, 일본 국적을 가질 수 있는 길을 터주었다. 민간 부문에서도 이들을 돕기 위한 다양한 방안이 실행됐다.

필리핀에 버려진 코피노는 빈곤의 악순환을 겪고 있다.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코피노를 더 이상 개인의 문제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 필리핀과 국제사회에서 한국에 대한 반감을 키우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정부가 서둘러 제도적인 지원 방안을 마련하고, 민간에서도 인도적 차원의 지원에 나서야 한다. 물론 근본적으로는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 성을 상품화 하고 해외에서 성을 구매하는 것을 오락거리 쯤으로 여기는 우리의 비뚤어진 성 문화가 바뀌지 않는 한 언제 어디서나 똑같은 문제가 부각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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