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이는 게임 스트레스 축구로 뻥뻥 날리죠”

[노컷이 만난 사람] 프로게이머 이유라

프로게이머 이유라가 12일 오후 인천 굴포천역의 한 카페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사진=이명진 기자 mjlee@nocutnews.co.kr

26살 이유라의 삶은 변화무쌍했다. 중학교까지 축구선수로 살았고 대학 졸업 후 국내 유명 항공사에서 객실 승무원(스튜어디스)으로 일하기도 했다. 프로게이머의 삶은 지난 2013년 1월부터 시작했다. 그해 ‘스타크래프트2 여성리그’(WSL) 4강에 진출했다. 최근에는 각종 e스포츠 방송 현장에서 리포터로도 활동하고 있다.

이 씨는 현재 e스포츠 분야에서 여신으로 꼽힌다. 말 그대로 미모의 프로게이머이자 방송인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이보다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 다름 아닌 남자선수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여자 프로게이머로 입지를 굳히겠다는 것이다. 외모가 아닌 실력으로 당당히 인정을 받겠다는 각오인 셈이다. “정식 리그에서 여자선수가 남자선수를 이긴 적이 없었는데 기회가 된다면 이기고 싶다”는 그의 말이 의미심장하게 들리는 이유다.

12일 인천 굴포천역 인근에서 그를 만났다. 가녀린 체구에 청순한 외모. 그야말로 걸그룹 못지않은 비주얼이다. 하지만 인터뷰가 시작되자 프로게이머의 진지한 모습이 묻어났다.
 
■ 세 번째 꿈 프로게이머
이유라는 지금까지 모두 세 가지 꿈을 거쳐 왔다. 첫 번째 꿈은 축구선수였다. 전교에서 달리기가 가장 빨랐던 그는 초등학교 시절 육상부를 거쳐 축구부에서 활동했다. 포지션은 왼쪽 날개였다. 좋아하는 빵을 먹기 위해 가입한 것이 축구와 처음 인연을 맺은 계기가 됐다.

“육상을 할 때는 하루에 한 번 주던 빵을 축구를 하니 하루 세 번 주더라고요. 당시 일주일 용돈이 1000원이었는데요. 빵을 많이 준다는 말에 축구부로 자리를 옮겼고 축구선수의 꿈을 가지게 됐어요. 초등학교 졸업앨범을 보면 장래희망에 축구선수라고 쓰여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에요.”

그의 축구부 활동은 중학교까지 이어졌다. 그러다 2학년 때 인근 고등학교 여자선수들과 연습 경기를 하면서 뜻하지 않게 발목 부상을 당했다. 재활치료를 하고 3개월 뒤 복귀하려고 했지만 예전처럼 실력이 나오지 않았다. 그의 첫 번째 꿈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유소년 대표까지 바라보면서 유망주로 촉망을 받았던 터라 아쉬움은 컸다. 그는 당시 상황을 회상하면서 “축구공을 보면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리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두 번째 꿈인 승무원은 고등학교 2학년 때 그의 어머니에게서 발견했다. 축구를 그만 두고 3년 여간 방황을 하던 그에게 어머니는 “승무원이 되는 것은 어떠냐”고 제의했다. 승무원은 어머니의 꿈이기도 했다. 시골에서 자란 그의 어머니는 여객기 안에서 사용하는 영어를 홀로 공부할 만큼 승무원에 대해 열정을 보여 왔다.

그는 어머니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 승무원이라는 꿈을 품고 달렸다. 하지만 축구공 대신 오랜만에 잡은 책은 녹록치 않았다. 이런 그에게 어머니는 빚을 내 과외를 시켜가면서 그를 뒷바라지 했다. 앞만 보고 공부를 한 끝에 대학수학능력시험 외국어영역에선 1등급도 받았다. 인하공전 항공운항과를 졸업한 이후에는 바라던 승무원이 됐다.


세 번째 꿈은 거짓말처럼 우연히 찾아왔다. 승무원으로 1년 반 일하는 동안 근무 도중 코피를 흘리는 등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잠시 쉬면서 승무원학원의 영어 강사로 일하고 있을 때였다. 그는 이 무렵 현재 소속팀인 프라임팀의 박외식 감독을 우연히 만났다. 프로게이머 출신인 자신을 상대로 연거푸 이기는 그를 보며 박 감독은 프로게이머로 스카우트 제의를 하게 됐고 6개월간 고민한 끝에 새로운 꿈을 갖게 됐다.

사실 세 번째 꿈을 갖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어머니의 반대는 가장 큰 난관이었다. 당시 그의 어머니는 “모녀 관계를 그만두자”며 완강히 반대했다. 요즘은 어떠냐고 물었더니 “적극적으로 밀어준다. 주변에 딸 자랑도 많이 한다”고 전했다.


■ e스포츠=일반 스포츠
그는 현재 프라임팀 소속 프로게이머로 활동하고 있다. 방송 리포터 일이 있을 때는 하루 6시간 가량, 경기를 앞둔 때는 하루 11시간 가량 게임 연습을 한다.

프로게이머의 매력이 무엇인지 묻자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시간가는 줄 모르고 할 수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평범한 직업을 가졌던 제게 프로게이머는 굉장히 매력 있는 일이 아닐 수 없어요. 적은 나이가 아니라서 한 살 더 먹기 전에 원하는 목표를 이루고자 열심히 하고 싶어요.”

이유라는 “e스포츠도 일반 스포츠처럼 노력한 만큼 결실을 거둔다”고 했다. 일반 스포츠처럼 성실하게 게임을 익힌 노력이 실전에 도움이 된다는 설명이다. 그는 또 “육체적인 운동만 아닐 뿐이지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이나 정신적으로 받는 스트레스는 똑같다”고 덧붙였다. e스포츠와 기존 스포츠 사이에 간극이 없음을 잘 드러내주는 대목이다.

그는 주말마다 팀원들과 축구경기를 하면서 체력을 키우고 있다. 선수와 코치를 포함해 10명씩 나눠 벌이는 친선경기다. 여기서 그는 공격의 핵심인 스트라이커로 활약하고 있다. “남자들과 함께 뛰는 축구경기가 힘들지 않냐”고 묻자 “7대 3으로 이긴 적도 있는데 3골을 넣었어요. 평균 1골씩은 넣는 것 같아요”라며 수줍은 미소로 답했다.

■ 몰수패? 무단이탈 아니다
이유라는 최근 심한 마음고생을 했다. ‘2014 스타크래프트2 여성리그 시즌1’ 승자 4강 경기에서 1, 2세트를 패한 뒤 3세트에 출전하지 않은 것이 화근이 됐다. 이를 두고 ‘프로게이머가 사상 처음으로 경기 도중 무단이탈해 몰수패(규칙 위반으로 경기를 계속할 수 없을 때 과실을 저지른 쪽이 패배로 처리되는 일)를 당했다’며 그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어찌된 일인지 물어보니 “무단이탈은 아니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아무런 말없이 나가지는 않았어요. 기권을 하겠다고 앞서 조연출께 말했어요. 집안에 안 좋은 일이 생기는 등 이번 대회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어요. 노트북에서 데스크톱으로 바뀐 경기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이유도 있고요.”

대회를 주최한 ESTV도 ‘이유라 선수가 무단이탈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내용은 사실과 맞지 않다. 2세트 종료 후 기권의사를 게임연출에게 직접 전달했다’고 당시 상황을 지난 3일 홈페이지(www.ESTV.kr)에서 전했다. 주최측은 그와 대화를 나눈 뒤 이번 경기에 대한 기권의사를 수용해 곧바로 패자 조 추첨을 했다. 이유라는 추첨 결과 B조로 배정을 받아 다음 경기에 참여했다.

그는 이번 일에 대해 “질타를 받은 것은 당연하다”며 “경솔하게 행동한 점을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심경을 밝혔다. 이어 앞으로의 각오를 물어보자 “프로리그(단체전)에서 남자선수를 이기는 게 올해 목표였다. 프로리그에 참여해 좋은 모습을 보이겠다”고 말했다. 축구선수에서 승무원으로 또 프로게이머로 이어진 스물여섯 그의 꿈은 아직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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