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권 최대 실세인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퇴진 위기에 몰렸다.
그동안 여러 차례 낙마론에도 꿋꿋이 버티던 김 실장이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부적격 논란에 따른 자진 사퇴론이 여권의 방침으로 확인되면서 문창극 후보자와 함께 동반사퇴론에 직면했다.
청와대는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인사청문요청서를 박근혜 대통령의 귀국 후 결제하겠다는 방침을 19일 발표했다.
문창극 총리 후보자에게 그만 버티고 자진 사퇴하라는 메시지를 국민에게 공개한 것이다.
그러나 문창극 후보자는 18일 저녁 퇴근하면서 "대통령이 (중앙아시아 순방에서) 돌아올 때까지 차분히 앉아 제 일(청문회)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순순히 물러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여권에서는 이를 두고 문 후보자는 버티기로 일관하며 "김기춘 비서실장을 물었다"는 말까지 나왔다.
문 후보를 잘 안다는 한 언론인은 "문 후보자는 청와대가 자진 사퇴하라고 해도 순순히 물러설 사람이 아니다"며 "그는 고집이 아주 셀 뿐 아니라 자신의 역사관이나 가치관이 잘못됐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든 청문회에 서서 심판 받겠다는 의지가 강하다"고 말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문 후보자는 버티는 데 까지 버틸 것"이라고 말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난감하게 됐다.
오는 21일 귀국 이전에 순순히 그만두겠다고 선언하면 그를 한두 차례 위로하면 끝나겠지만 21일 이후에도 청문회에 나서겠다고 우길 경우 인사청문요청서를 국회에 제출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자진 사퇴를 강하게 압박할 수도 없어 문창극 후보자 문제로 진퇴양난에 빠질 우려도 있다.
한 야당 의원은 "청와대가 문창극이라는 사람을 국민을 놀래고자 깜짝 카드로 잘 못 쓰는 바람에 수렁에 빠지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 청와대, 문창극에 물렸다
문창극 후보자를 국가 개조의 적임자라며 국무총리 후보자로 내세운 최종 책임은 박근혜 대통령에게로 돌아가겠지만 대통령제하에서 대통령이 아닌 그 누군가 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 국면으로 몰렸다.
김기춘 비서실장이다. 김 실장도 문창극 후보자를 비롯해 전관예우 논란으로 스스로 물러난 안대희 후보자 등 고위 공직 후보자들의 잇단 인사 실패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책임론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한다.
이제는 물러갈 때라는 사실을 스스로 판단하고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여권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김기춘 사퇴론이 불거지는 정도가 아니라 김 실장이 세월호 참사 이후의 국정운영 난맥상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고서는 수습이라는 단어를 꺼낼 수조차 없을 정도로 얽히고설켰다.
대통령의 근심이 깊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창업보다는 수성이 어렵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을 것이다.
◈ 박, 이제는 김 실장 놔줄 수밖에…
두세 번의 사의 표명에도 주저앉힌 박 대통령으로선 절대적인 신임의 동아줄(?)을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그를 놓아주지 않고서는 대통령을 향해 직접 날아오는 화살을 피할 수가 없다.
야당은 말할 것도 없고 국민과 여당 의원들까지도 김기춘 실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상황을 계속 무시하거나 외면하다간 더 큰 화를 자초할지 모른다.
가깝게는 7.14 전당대회 출마자들의 항의를 받을 수 있고, 7.30재보선을 스스로 포기해야 할 것이다.
오는 26일 대법원의 확정 판결로 두 명의 국회의원(정두언 의원과 성완종 의원)이 의원직을 잃는 일이 일어날 경우(이미 대법원의 판결문은 다 쓰여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새누리당 의석은 146석으로 줄어든다.
한 의원의 변호사는 "확정 판결 기일이 26일로 잡힌 것을 보면 이미 결정을 내린 것 같다"며 "기각은 아닌 것 같고 결과가 안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은 부인이 지난 지방선거 때 돈을 받은 혐의로 유승우 의원(경기 이천)을 18일 출당 시켰으며, 불법 정치자금과 뇌물 수수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인천의 박상은 의원까지도 출당과 비슷한 엄중한 조치를 취해야 하는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박 의원은 국민적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해운비리 수사에 연루돼 있다.
최악의 경우 사실상 145의석으로 7.30재보궐 선거에 임해야 한다.
여당은 14군데(현재) 또는 16군데(26일 대법원 확정판결)에서 치러지는 재보궐 선거에서 혹독한 심판을 받을 개연성이 높다.
그 중심에 문창극 후보자의 인사 참사 파문과 김기춘 실장이 버티고 있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새누리당이 김기춘 실장을 경질하지 않고서는 재보궐 선거를 치를 수 없다"고 단언했다.
◈ 최악의 경우 여소야대되지 말란 법이 없다
지난 16일 페이스북을 통해 "(문창극 후보자) 문제와 관련해 시간을 끌어도 결과는 뻔하다"며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 한다"는 이재오 의원의 고언이 쓰디쓰겠으나 새겨야 하는 일종의 '약'일 수 있다.
여권의 친박 또는 청와대 핵심 비서관들은 후임자가 마땅하지 않다고 대통령에게 조언할지 모른다.
◈ 김기춘 실장이 떠나면 장막 뒤의 실세들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들의 조언은 김기춘 실장이라는 자신들의 방패막이가 사라지는 데 대한 두려움과 연결돼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김기춘 실장 뒤에서 국가 주요 자리의 인사와 정책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가 김 실장이 사라질 경우 언론에 그대로 노출될 위기에 놓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누구일까? 여의도 정치권, 특히 새누리당 주변에서는 누구인지 다 안다. '3인방'이니 '4인방'이니 하는 말들이 그냥 근거 없이 나오는 말이 아니다.
김 실장이 퇴진하면 장막 뒤에 숨은 실세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사면초가'로 몰리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의 선택과 결정이 더없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