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는 어디를 가든 후회하지 않는다. 발길 닿는 곳이 볼거리요 마음 가는 곳이 휴식처다. 멈추면 그곳이 곧 여행의 종착지요 쉼터다. 볼거리 즐길거리 먹을거리가 즐비한 오감만족지대다. 예로부터 돌, 여자, 바람이 많아서 삼다도요 거지, 도둑, 대문이 없어서 삼무도다. 하지만 이건 옛이야기에 불과한 아련한 기억 너머로 사라지고 있다. 지금의 제주는 온통 화려한 불빛과 온갖 현대식 상업놀이문화의 총체다. 돌밭으로 이루어진 화산섬인 제주. 그 척박한 자연환경으로 인해 이름 붙여진 삼다도. 그 황무지 같은 터전에서 살아 내야했던 삶의 무게가 참으로 고단했을 터이다. 이타심이 아닌 이기로는 살아갈 수 없는 곳. 그곳이 제주다. 화산섬이니만큼 땅에서 먹을거리를 찾기 위해서는 수많은 돌밭을 고르고 일궜을 것이다. 바람 많은 바다로 둘러 싸였으니 고기잡이 나간 남자들은 태풍의 길목인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목숨을 잃었으랴. 돌과 바람과 여자가 많았다는 건 그만큼 삶의 고달픔을 대변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삼무도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제주. 나눔과 베품이 있으니 거지가 없고 거지가 없으니 도둑이 없고 도둑이 없으니 대문이 필요 없는 믿음의 삶터였다. 이것이 오늘의 화려함 뒤에 감춰진 제주의 속살이요 참 모습이다. 돌밭을 고르고 도둑이 없고 대문이 없었던 그 시절, 그 삶이 오롯이 배어있는 곳이 제주의 성읍민속마을이다. 제주의 전통과 선조들의 삶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그 곳으로 떠나보자.
■ 성읍마을 구경하는 집
남제주군 표선읍 성읍리에 자리한 성읍민속마을은 제주공항에서 승용차로 40분 안팎의 거리에 있다. 서귀포로 난 동회선일주도로(12번 국도), 60번 군도로, 16번 국도를 따라 달리다 보면 마을을 들어서기 3㎞께 전방에 성읍마을 구경하는 집이 있다. 한적한 도로변에 위치한 이곳은 성읍마을의 전통적인 초가집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제주도의 초가는 나무로 뼈대를 만든 후 주위 벽을 굵은 돌로 쌓아 두르고 제주도 전역에서 자생하는 연한 갈대처럼 생긴 띠풀(또는 '새'라고도 함)로 지붕을 덮은 것이다. 벽은 흙을 발라 붙여 돌담을 단단히 하고 지붕은 띠로 덮은 후 굵은 밧줄로 바둑판처럼 얽었다. 태풍과 바람이 많은 기후조건에서 피해를 막기 위한 지혜의 산물이다. 살림이 어렵거나 식구가 단촐한 경우에는 안거리(안채) 한 곳에 살았으며, 좀 여유가 있으면 안거리 맞은편에 밖거리(바깥채)를 마주보게 지었다. 며느리를 맞이하면 아들 내외에게 안거리를 물려주고 부모는 밖거리로 나가 따로 살거나 아들 내외를 밖거리에 기거하게 했다. 마당 깊숙이 안쪽에는 통시가 있다. 통시는 돌로 낮게 울타리를 둘러 만든 돼지우리의 한쪽에 돌을 몇 단 쌓고 그 위에 다시 두 개의 넓은 돌을 올려쪼그리고 앉아 일을 볼 수 있게 만든 제주도 재래식 화장실이다. 대개 주위엔 낮은 돌담뿐 지붕이 없는 개방구조인데 이곳에서 사람이 일을 보면 넓은 돌 밑으로는 돼지가 드나들며 똥을 먹는다. 이렇게 자란 제주 똥돼지는 비계가 얇고 고기 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지역에 따라 '돗통'이라 부르기도 한다. 지금은 진짜 똥을 먹여 키우는 돼지는 없고 토종돼지를 사용한다. 실제로 구경하는 집에도 옛 통시의 모습과 더불어 제주토종흑돼지를 구경할 수 있다.
■ 성읍마을 지킴이 정의읍성
구경하는 집을 나와 3㎞쯤 달리면 성읍마을 남문에 닿는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높고 길게 쌓아올린 성곽을 만나게 된다. 정의읍성 남문으로 불리는 이곳은 우리나라 읍성 가운데서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된 성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복원된 정의읍성의 성곽의 크기는 동서로 160m, 남북으로 140m에 이른다. 성읍마을을 둘러싼 정의읍성은 세종 5년(1432) 1월 9일부터 1월 13일까지 나흘만에 축조되었다고 한다. 당시 성의 규모는 둘레 2520척(1척 30.333cm), 높이 13척이었다고 하니 성을 쌓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었을지 짐작할 만하다. 이후 성곽의 규모는 둘레 2986척, 높이 24척으로 확대되었다. 그러나 현재는 성벽 일부와 남·서문만이 복원되어 있을 뿐이다. 정의읍성을 쌓을 당시 성읍리는 진사리라고도 불렸으며 따라서 정의읍성도 진사성이라 불렸다. 정의읍성 각 성문 앞에는 돌하르방이 있는데 복원된 남문과 서문 앞에 각각 4기의 돌하르방이 서 있고 동문 자리에도 4기의 돌하르방이 있다. 성읍마을에서는 예로부터 돌하르방을 '벅수머리' 또는 '무성목'으로 불러왔으며 모두 원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의 돌하루방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제주도의 일반적인 돌하르방들과는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성문을 지키는 지킴이 역할로서 나름대로 엄숙한 표정을 표현했음이리라.
■ 올래와 띠풀 초가의 고향
남문 성곽위에 올라서면 넓게 펼쳐진 마을이 굽어보인다. 마을 뒤쪽에는 324m의 영주산이 자리 잡고 근처에는 천미천이 흐른다. 마을에는 목초지와 억새밭이 넓게 펼쳐져 있다. 해발 100m에서 300m 사이에 분포된 구릉 평야지역에 자리한 중산간마을의 전형적인 특색을 간직한 채 500여 가구가 옹기종기 어깨를 맞대고 있다. 제주의 독특한 자연환경에 적응하며 살아온 제주사람들의 소박함이 엿보인다. 띠풀로 이은 어깨가 닿을 듯한 지붕, 회색빛 용암돌로 얼기설기 쌓아 올린 듯한 나지막한 돌담, 미로처럼 집으로 집으로 이어지는 골목길에서 정겨운 이웃의 향기가 피어오르는 듯하다. 고개만 내밀면 인사를 건네고 한 발짝 골목을 나서면 이웃집의 모습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집으로 들어서는 입구 양편으로 좁고 길게 돌담을 쌓아 골목처럼 만든 올래. 올래 입구 양쪽에는 정주목이나 정주석(출입구 양쪽에 세워 정낭을 끼워놓는 나무나 돌)을 세우고 세 개의 '정낭'(출입구를 가로지르는 긴 막대기)을 걸쳐놓아 주인의 외출 유무를 알렸다. 정낭이 모두 걸쳐져 있으면 아무도 없다는 표시이고 둘이 걸쳐져 있으면 가까운 곳에 나갔다는 알림이며 하나만 있으면 이웃에 갔다는 뜻이다. 걸쳐져 있는 정낭의 갯수로 집주인의 유무를 확인하고 방목하던 말이나 다른 가축들이 집에 들어오는 것을 막는 역할도 겸했다. 전형적인 옛 제주의 마을은 모나고 빼어남이 없는 제주의 오름과도 같다. 유형·무형의 여러 문화재와 옛 생활의 자취를 간직하고 있어 1984년 중요민속자료 제188호로 지정됐다.
■ 집집마다 사연도 갖가지
남문으로 들어서서 만나는 첫 집은 고평오 가옥(중요민속자료 제69호)이다. 예전에 관원의 숙소로 사용됐으며 안거리와 밖거리 그리고 모거리와 대문간이 갖추어진 제주 중산간마을의 전형적인 살림집이다. 고평오 가옥 앞길에서 마을 안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원님만 마셨다는 우물인 원님물의 자취가 남아 있다. 원님물 맞은편에 대장간으로 쓰였던 고상은 가옥(중요민속자료 제72호)이 자리하고 있다. 대문간도 없고 올래도 없고 우영(텃밭)도 없이 달랑 안거리와 모거리만 있는 단조로운 형태의 집이다. 고상은 가옥에서 몇 걸음 지나면 객주였던 조일훈 가옥(중요민속자료 제68호)이 나온다. 대문간 옆 창고에는 연자매와 함께 돈을 은행처럼 맡아두었던 큰 궤를 비롯하여 당시 살림살이를 알려주는 민속품이 많았다 한다. 서문 안쪽 정의향교 옆에 자리한 이영숙 가옥(중요민속자료 제70호)은 여인숙이었으며, 지금도 여관집으로 통한다. 가옥대문간도 없이 안거리가 자그마한 헛간채와 마주한 단촐한 형태이다. 예전에는 뒤뜰 우영이 넓고 나무들이 조화를 이루었다고 하나 지금은 관광객을 맞는 시설이 들어서 옛모습을 많이 잃어버렸다. 이영숙 가옥과는 뚝 떨어져 있는 한봉일 가옥(중요민속자료 제71호)은 집 주위에는 넓게 돌담을 두르고 담 안쪽 군데군데에 낮은 돌담을 두른 우영을 뒀다. 이 다섯 채의 집 외에도 김순생·김동근·강찬순·강태승·현경생 가옥들이 차례로 제주민속자료 제82호부터 제86호로 지정돼 있다. 제주도에서 한 울타리에 건물이 한 채 두 채 늘어간다는 것은 그만큼 대를 이어갈 후손이 늘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 천년 고목과 500년의 읍성
조선시대 제주도는 제주목, 대정현, 정의현 세 지역으로 나뉘어 통치하였다. 1423년 지금의 성읍민속마을에 현청이 들어선 이래 한말까지 약 500년 동안 정의현 소재지 구실을 했으며 마을에는 성곽을 비롯하여 동헌으로 쓴 일관헌과 향교에 딸린 명륜당과 대성전이 남아 있다. 일관헌(日觀軒)은 정의 현감이 집무하던 청사로 현재의 군청과 같은 건물이다. 정의향교는 일관헌 뒤편 서문 안쪽에 있다. 제주의 향교는 15세기 초 제주목·대정현·정의현에 각기 하나씩 세워져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대부분의 향교가 남향으로 지어지는 것과 달리 정의향교는 동향인데 대성전과 명륜당이 좌우로 나란히 배치된 것이 특징이다. 정문인 명륜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대성전이 있고 왼편으로 송덕비들이 담장을 따라 즐비하게 서 있다. 일관헌 맞은편에는 천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높이 32미터, 둘레는 4.5미터 느티나무와 수령 600년의 높이 30미터 둘레 4미터인 팽나무가 있다. 두 나무는 1964년 천연기념물 제161호로 지정됐으며 주변에도 수십 그루의 거목이 자리하고 있어 느티나무·팽나무군으로 불린다. 성읍마을에서는 이 느티나무에 싹이 트는 것으로 한 해 농사 결과를 점쳤다고 한다. 동쪽에서 먼저 잎이 피면 정의고을 동쪽 지방의 농사가 잘되고, 서쪽의 잎이 먼저 피면 서쪽 지방의 농사가 잘되었다는 얘기가 전해오고 있다. 그렁저렁 쌓아 위태로워 보이는 담장이 집집마다 경계를 하고 있지만 가슴 높이를 넘지 않는다. 돌과 돌 사이의 숭숭난 구멍이 바람길이 되어 허물어지지 않는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가 고스란히 배여 있다. 마을내에는 민박집과 말고기·토종흑돼지와 고사리 등을 이용한 전통 음식점도 즐비하다. 갈옷·오미자·말뼈 등 특산물과 함께 기념품 가게도 쏠쏠치 않게 만날 수 있다.
남문을 들어서면 문화관광해설사의 집이 있다. 성읍마을에서만 10년 동안 문화를 알려온 강기숙 해설사(69)는 만나자마자 한숨부터 내쉰다. 요즘이 관광객이 가장 많을 때이지만 세월호의 여파로 발길이 뚝 끊겼다고 한다. 그나마 찾는 관광객의 80~90%는 중국인들이란다. 입장료 부담이 없고 전통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 성읍마을의 가장 큰 고객인 수학여행단이 끊기면서부터란다.
느낌 있는 둘러볼만한 곳
■ 휴애리자연생활공원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에 위치한 자연생활체험공원으로 편안한 휴식과 제주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휴애리자연생활공원(대표 양진선)은 '가장 제주스러운 공원'을 표방하며 7년의 준비기간과 8년간의 공사를 통해 2007년 5월 개장했다. 용천폭포, 3D영상관, 잔디광장, 돌탑 쌓기 체험장, 전동차 체험장, 승마 체험장, 매화동산, 흑돼지 쇼장, 타조사육장, 감귤 따기 체험장, 산토끼 놀이동산, 흑염소 사육장, 화산송이 맨발 체험장, 동백 올레길, 자연석 조경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6만 5000여㎡ 부지에 갖가지 조형물과 제주 전통 초가집, 동심으로 떠나는 흑돼지·토끼·다람쥐 등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있다. 계절별 체험으로 매화올레축제, 송이(화산 분출물 중 한가지) 맨발걷기, 감귤 따기 등 여러 프로그램으로 나뉘어 운영되고 있다. 특히 요즘엔 흑돼지 미끄럼타기가 어린이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 이중섭미술관
1956년 서울 적십자병원에서 연고자 없는 시신으로 발견된 불운한 시대의 천재화가 이중섭. 서귀포시 이중섭거리를 조금 벗어난 얕으막한 언덕위에 그의 기념관이 자리하고 있다. 1·4후퇴 때 원산을 떠난 이중섭과 그 가족은 잠시 부산에 머문 후 제주 서귀포에 도착한다. 제주 서귀포는 이중섭에게 중요한 시공간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전시관 오른편 아래쪽에는 6.25전쟁당시 잠시 살았었던 초가집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그가 기거했던 방은 1평 남짓하며 이 방에서 가족들과 1년 정도를 살았다고 한다. 궁핍한 생활과 달리 이중섭은 서귀포의 아름다운 풍광과 넉넉한 인심을 소재로 서귀포의 환상 등 많은 작품을 남겼다. 짧지만 운치 있는 산책길도 조성되어 있다. 미술관으로 오르는 길에 있는 200년이 넘는 수령의 팽나무는 작가의 '섶섬이 보이는 풍경'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재료 구하기가 어려워 담배갑 은박지에 그린 '게와 가족' 그림 등 수십점이 전시되어 있다. 화가의 예술과 삶을 살펴볼 수 있는 작품과 연표 등이 전시되어 있는 상설전시장과 미술관 소장품을 중심으로 기획전이 열리고 있다. 이중섭의 작품을 소재로 제작한 명함집 등 기념품도 팔고 있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일이며 입장료는 어른 1000원, 어린이 300원이다. 감상을 끝내고 미술관 옆쪽으로 나오면 이중섭거리가 나온다. 이곳에는 예술가의 거리답게 독특한 카페와 공방들이 줄지어 있다.
■ 천지연폭포
천지연폭포를 만나러 가는 길은 신록의 향기로 가득하다. 천연기념물 제163호로 지정된 담팔수 자생지 이외에도 가시딸기, 송엽란 등의 희귀식물과 함께 계곡 양쪽에 구실잣밤나무, 산유자나무, 동백나무 등의 난대성 식물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어 천연기념물 제379호로 지정·보호되고 있다. 알싸하고 향긋한 숲 터널은 걷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열리고 머릿속이 상쾌해진다. 산책로를 따라 1㎞쯤 들어가면 폭포의 웅장한 울림이 들린다. 기암절벽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와 물보라는 땀에 젖은 더위를 단숨에 날린다. 폭 12m, 높이 22m에서 떨어져 수심 20m의 호를 이루는 천지연의 맑고 깊은 물은 천연기념물 제27호로 지정되었으며, 무태장어(천연기념물 제258호)의 서식지로도 유명하다. 야간조명시설이 돼있어 11~4월에는 밤 10시까지 5~10월까지는 밤 11시까지 관람이 가능해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도 인기가 높다. 해마다 서귀포칠십리축제가 이곳을 중심으로 화려하게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