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이후 일선 소방관들이 국가직 전환을 요구하며 1인 시위에 나선 가운데 지역 소방본부 간부가 직원들을 모아 놓고 "야당이 정국 혼란을 부추기고 있으며 공무원은 원래 여당 편"이라는 발언을 해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잘리지 않으려면 시위에 참여하지 마라. CBS노컷뉴스는 좌익 매체다"라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사태가 일파만파 커지자 해당 지역 소방본부는 감찰에 착수했다.
충북소방본부(본부장 이강일) 산하 일선 소방서 소속 A 소방관은 지난 10일 서울 광화문 앞 1인 시위에 참가했다.
'소방 인력과 장비가 각 지방자치단체 예산에 따라 차이가 나면서, 국민 안전 또한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문제의식이 그를 1인 시위에 나서게 했다.
하지만 참석 직후 A 소방관은 간부 이 모 팀장으로부터 전화로 심한 욕설과 모욕적인 말을 들었다.
"왜 보고도 하지 않고 시위에 참가하느냐? 너희는 모두 중징계에 해당한다"는 폭언이 이어졌다.
이후 근무 교대 시간에 이 팀장은 직원들을 모두 불러 모은 뒤 귀를 의심할 만한 말을 쏟아냈다.
이 팀장은 "공무원은 원래 여당과 정부 편이다. 야당의 반대에 편승하지 마라. 야당 의원, 이런 애들이 정국을 혼란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이 팀장은 "야당 혹은 과격 진보 좌익 매체인 CBS노컷뉴스 등에 이용당할 수 있다"며 특정 언론을 일방적으로 매도했다.
이 팀장이 CBS노컷뉴스를 겨냥한 것은 지난달 29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방송 내용 때문으로 보인다.
당일 방송에는 현직 소방관이 익명으로 출연해 소방 장비를 소방관들이 사비로 구매하고, 폐차가 마땅한 소방차가 화재 현장에 출동하는 등의 실태를 폭로했다.
방송 내용이 기사화하면서 열악하기 짝이 없는 소방관 근무 환경과 소방 예산 지원에 대한 비판 여론이 비등했다.
이를 빌미로 이 팀장은 특정 언론에 '좌익' 딱지를 붙이고,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하면서 소속 직원을 상대로는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 행사마저 제한한 셈이다.
현행 지방공무원법 57조와 대통령령인 지방공무원 복무규정 9조는 특정 정당이나 정치단체를 지지 또는 반대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팀장은 "1인 시위에 참여할 경우 신변이 위험하다"는 협박도 자행했다.
이 팀장은 "소방방재청장이 '시위 참가자에게 징계를 내리라'고 지시했는데, 반발이 심하니까 지시를 번복했다"며 "이런 문제가 있으니까 (1인 시위를) 신중하게 생각하라"고 말했다.
이어 이 팀장은 "하여튼 (소방서를) 정년퇴직 때까지 다니려면 신중하게 생각해라. 조직을 위한 충정도 이해하지만, 자기 앞날도 생각하라"고 권유(?)했다.
이 팀장의 훈계조 발언을 들은 소속 직원들은 "소방 조직을 위한 시위 참가를 좌익으로 몰고 간 것은 명백한 명예훼손"이라며 크게 반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팀장의 부적절한 발언을 <국민TV>가 보도하자 충북소방본부와 해당 소방서는 제보자 색출에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해당 소방서는 제보자를 특정해 "언론 보도가 문제가 될 수 있으니 빨리 전화해서 보도된 내용을 인터넷에서 내리도록 조치하라"고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무원법 위반과 특정 언론에 대한 명예훼손에 대해 반성하기는커녕 문제가 커지자 이를 덮으려 한 것이다.
CBS노컷뉴스가 취재에 들어가자 이 팀장은 취재진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조회 시간에 사견으로 얘기했을 뿐 누가 시켜서 한 것은 아니"라며 "윗사람들한테는 해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팀장의 부적절 발언 배경에 충북소방본부 혹은 소방방재청 차원의 조직적 개입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구심은 커지고 있다.
이에 대해 우성현 소방방재청 대변인은 "지역 소방관이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발언이기 때문에 지역본부에서 경위를 파악하는 걸로 알고 있다"며 "방재청이 시위 참가자를 자르라고 얘기한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충북소방본부 이강일 본부장은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직원이 큰 실수를 했다. 발언을 전해 듣고 너무 황당했다. 해당 간부가 그냥 직원들한테 아는 체한 것 같다"고 해명했다.
이 본부장은 "본부에서 조직적으로 CBS를 좌익 매체로 몰고 간 것은 아니"라며 "경찰 조사도 달게 받겠다"고 덧붙였다.
충북소방본부는 이 팀장의 부적절 발언이 나온 경위에 대해 대대적인 감찰에 착수했다.
하지만 충북소방본부가 다른 지역과 달리 유독 정부 입장을 대변하거나 시위 참가를 적극 만류한 정황은 곳곳에서 포착된다.
1인 시위를 기획한 소방발전협의회 고진영 회장(군산소방서 소방장)은 "충북소방본부는 행정계장이 일괄적으로 메일을 발송해 1인 시위 자제를 촉구하기도 했다"며 "다른 지역보다 유독 (참여 자제 압력이) 심했다"고 말했다.
소방발전협의회는 이 팀장의 발언이 개인적인지 아니면 조직적인지 확인에 나서는 한편 충북소방본부와 해당 간부를 명예훼손과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할 수 있는지 법률 검토에 착수했다.
◈ 일선 소방관들 '부글부글'
국민 안전과 소방 조직의 미래를 걱정하는 소방관들을 공개적인 장소에서 야당에 편승하고 좌익 언론에 놀아나는 집단으로 매도한 발언에 대해 일선 소방관들은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1인 시위에 참석했다는 한 소방관은 충북소방본부 게시판에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공무원이 '정부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하고, 특정 언론을 종북 좌파로 몰고 있다"며 "1인 시위를 야당과 종북 좌파 소행으로 매도하는 처사는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 소방관은 "헌법에도 표현의 자유가 보장돼 있는데 시대착오적인 종북 좌파가 배후에 있는 것처럼 매도했다"고 울분을 나타냈다.
다른 소방관 역시 "온갖 압력을 행사해 시위를 못 하게 하는 간부 역시 상급자로부터 그런 지시를 받았을 것으로 추측된다"며 "내부 감찰을 통해 부당한 지시가 있었는지를 명백하게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