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중재한 러시아-우크라이나-EU 3자 협상이 최종 결렬되면서 러시아가 16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에 대한 가스공급을 선불제로 하는 조치를 취했다.
우크라이나가 선불제 수용 불가 원칙을 고수하고 있어 이번 조치가 러시아의 가스공급 중단 사태로 이어지고 뒤이어 우크라이나를 통해 러시아 가스를 공급받는 유럽이 피해를 보는 연쇄 '가스대란'이 우려되고 있다.
리아노보스티 통신 등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에 가스를 공급하는 러시아 국영가스회사 가스프롬은 이날 발표한 성명을 통해 "오늘 오전 10시(현지시간)부터 선불 공급제 시행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가 미리 지불한 대금에 해당하는 양만큼의 가스만 공급하겠다는 것으로 선지불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가스 공급을 중단하겠다는 의미다.
가스프롬은 "선불제 시행 결정이 (우크라이나 가스수입업체) '나프토가스 우크라이나'의 만성적인 가스대금 체불 때문에 내려졌다"며 "우크라이나의 체불 대금이 지난해 11~12월분 14억5천만 달러, 올해 4~5월분 30억 달러 등 44억5천만 달러가 넘는다"고 지적했다.
지난주 가스프롬은 16일 오전 10시까지 나프토가스가 체불 대금 가운데 일부인 19억5천만 달러를 입금하지 않으면 선불 공급제를 시행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가스프롬은 뒤이어 낸 성명에서 스톡홀름 중재재판소에 우크라이나 가스수입업체 '나프토가스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체불 대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가스프롬은 나프토가스가 2009년 체결한 장기가스공급 계약을 이행하지 않고 가스대금 체불액도 상당한 규모로 늘어나 소송을 제기했다고 설명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EU 3자 대표단은 이날 새벽까지 우크라이나의 가스대금 체불과 가스 공급가와 관련한 제9차 협상을 벌였으나 끝내 합의점을 찾는 데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는 앞서 러시아의 가스공급 중단사태에 대비해 상당한 양의 가스를 미리 저장고에 확보해 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각 부처와 지방정부, 국영 에너지 회사 등은 지난주 아르세니 야체뉵 총리의 지시로 에너지 절감 체제에 들어갔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가 장기간의 공급 중단 사태를 버텨내긴 어려울 것이란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 전망이다.
우크라이나를 관통하는 가스관을 통해 전체 가스 수요의 약 30%를 러시아로부터 수입하고 있는 EU도 간접 피해를 볼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가스 사정이 악화할 경우 우크라이나가 유럽으로 가는 가스를 빼내 쓰게 될 가능성이 크고 러시아가 이를 빌미로 유럽으로 가는 가스관도 잠가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아르카디 드보르코비치 러시아 부총리는 이날 알렉세이 밀레르 가스프롬 사장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관련 보고를 한 뒤 우크라이나와의 가스 분쟁에 대한 향후 조치가 결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러시아-우크라이나-EU가 3자협상을 재개해 극적 타협안을 도출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러시아는 크림 병합 등으로 갈등을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압박 수단으로 지난 4월부터 가스 공급가를 80% 이상 인상했다. 그전까지 1천큐빅미터(㎥)당 268달러였던 가스가격이 485로 급등했다.
이에 우크라이나는 가스 가격을 이전 수준으로 되돌리고 2009년 체결된 불합리한 장기 가스공급계약을 갱신해야 한다고 요구하면서 가스 대금 지급을 미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