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이 헬스장, 목욕탕도 운영…상업화 불씨될라

부대사업 대폭 확대, 자법인 설립 허용

자료사진 (사진 = 이미지비트 제공)
장례식장, 매점 등으로 한정돼 있던 의료법인의 부대사업이 수영장, 목욕탕, 숙박업, 여행업 등으로 확대된다. 또한 의료법인 병원은 일정 요건을 갖추면 산하에 자법인을 설립, 각종 영리 사업에 뛰어들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병원이 본래의 의료 목적을 벗어나 상업화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 논란이 예상된다.

◈ 숙박, 체육시설, 목욕, 여행, 서점 규제 풀려... 화장품 건강기능식품은 제외

의료상업화로 논란이 많았던 의료기관의 부대사업 및 자법인 설립 방안이 10일 베일을 벗었다.

지난해 12월 정부의 4차 투자활성화대책 일환으로 의료법인의 자법인 설립 및 부대사업 확대 방안이 발표된지 반 년 만에 구체적인 시행안이 나온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의료법인이 수행가능한 부대사업 범위를 확대하기 위해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마련하고 오는 11일부터 22일까지 입법예고한다고 10일 밝혔다.

개정안에 따르면 의료법인 병원은 외국인 환자 유치를 위해 병원과 호텔을 결합한 '메디텔' 형태의 숙박업과 여행업, 국제회의업 등을 운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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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수영장, 헬스장 같은 체육시설과 목욕장업, 서점 등도 사업에 뛰어들 수 있게 된다. 00병원 수영장, 00병원 헬스장, 00병원 스파 등의 운영이 가능하다는 얘기이다.

이밖에 환자의 신체 특성별로 맞춤형 제작, 수리가 필요한 장애인 보장구 (의수, 의족, 전동휠체어) 등의 제작 및 판매도 의료법인이 직접 할 수 있다.

병원에 '건물임대'가 허용되면서 각종 편의시설도 들어서게 된다. 은행을 비롯해 각종 음식점, 커피숍, 의류 등 생활용품 판매점, 화장품 가게 등이 임대해 병원에 입주할 수 있다. 임대사업 허용범위가 넓어 사실상 병원 건물 안에 종합 쇼핑몰이 형성되는 것이 가능하다.

다만, 화장품의 제조와 건강기능식품의 제조 및 판매는 불허됐다. 복지부 곽순헌 의료기관정책과장은 "화장품이나 건강기능식품은 환자들에게 진료와 연계한 강매 위험 등이 제기돼 부대사업 허용 범위에서 빠졌다"고 설명했다.

◈ 자법인 설치 가능, 방지책 만들었지만 상업화 우려는 여전


그간 장례식장, 매점 등에만 허용됐던 부대사업 규제가 대폭 풀리면서 병원들은 각종 수익사업에 뛰어들 것으로 보인다.

사업 방식은 크게 두가지이다. 의료법인이 부대사업을 직접 운영할 수도 있고, 밑에 자법인을 설립해 간접적으로 운영할 수도 있다.

특히 자법인 설립은 영리병원으로 가는 전초단계로 해석돼, 의료계와 시민사회단체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지만 결국 허용되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혔다.

정부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 '성실공익법인' 요건을 충족한 의료기관은 자법인 설립이 가능하도록 했다. 의료법인이 자법인의 의결권이 있는 발행주식총수의 30% 이상을 보유하면서 최다 출자자여야 한다.

851개의 의료법인 중 상당수가 포함될 것으로 예상되며 벌써부터 2~3곳의 의료기관이 자법인 설립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자법인의 오남용을 막기 위한 조치들도 마련됐다. 의료법인은 순자산의 최대 30%까지만 자법인에 투자하도록 제한했으고, 사익추구 수단으로 남용되지 않도록 의료법인과 자법인간 부당내부거래나 이사 겸직을 금지하도록 했다.

또한 자법인의 사업범위는 일정 범위의 부대사업에 한정되며, 본업인 의료업 수행에 지장을 주지 않는 등 사업 목적이 타당해야 한다고 못박았다.

하지만 여러 부작용 방지 장치를 마련했음에도 불구하고 의료기관이 의료 본업보다 다른 영리 사업에 수익을 내도록 길을 터줬다는 점에서는 비판이 일고 있다.

권덕철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병원의 수익창출을 위한 목적도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역으로 환자의 부담이 증가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어차피 (환자나 가족들이) 다른 곳에서도 지출할 비용이다"고 말했다.

◈ 수박 겉핥기식 의견수렴, 환자 목소리는 철저히 배제돼

의료계나 환자단체 등에 충분한 의견수렴을 하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복지부는 5,6월 사이에 의약계 간담회와 개별단체 방문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했다고 밝혔지만 병원협회를 제외하고는 의사협회, 치과의사협회, 약사협회, 한의사협회, 간호사협회 등은 반대 또는 유보 입장으로 알려졌다.

논의 과정에서 환자단체나 시민사회단체의 의견은 구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복지부는 안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공청회나 설명회를 한 차례도 열지 않았다.

복지부 관계자는 "시민사회단체의 지적 사항은 그동안 충분히 나왔기 때문에 그쪽 의견은 따로 구하지 않았다"면서도 "원천적으로 반대하는 입장도 여전히 있지만, 건강기능식품을 제외하는 등 많은 부분을 수렴했다"고 밝혔다.

향후 의료 산업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될 이번 조치가 법 개정 사안이 아니라 시행규칙 개정안에 불과해 국회를 거치지 않는다는 점도 여전히 논란거리이다.

복지부는 의료법인의 부대사업 확대 및 자법인 설치가 의료법 개정 사안인지, 법 산하 시행규칙 개정으로 가능한지 전문가 단체에 의뢰했다.

그 결과 5개 전문가 단체 중 2곳에서는 의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유권해석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복지부 관계자는 "자체 의뢰한 결과 시행규칙 개정으로 가능하다는 의견이 3곳,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2곳 있었다"며 "찬반 의견들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이다"고 설명했다.

의료계와 시민사회단체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던 병원의 부대사업 확대와 자법인 설립이 가시화되면서 의료상업화 논쟁이 다시 불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성명을 통해 "종합 쇼핑몰을 허용하고 그 안에 병원이 들어가는 이러한 형태는 환자, 보호자에게 상품을 판매해 이윤을 챙기는 병원 영리화와 기업화를 부추긴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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