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양대 노조(KBS노동조합·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사전 예고한 대로 길 사장의 해임 제청안이 가결됨에 따라 파업을 철화하고 6일 오전 5시부터 정상업무에 복귀했다.
길환영 사장의 해임 제청안 가결은 의미하는 바가 적지 않다. 우선 KBS 노조가 복수노조로 분리된 후 처음으로 공동파업을 벌여 성과를 냈다는 점이다. 그동안 양대노조가 현안문제에 대해 다른 목소리를 냈지만 길환영 사장 퇴진에는 힘을 합쳤다. 그만큼 공영방송 KBS의 위기를 절감했다는 얘기다.
또 보도본부 소속 부장급 간부 전원이 보직을 사퇴하면서 제작거부에 동참한 것도 일대 사건이다. KBS가 이른바 '청영방송'이 아닌 진정한 '공영방송'으로 거듭나기 위한 내부 싸움을 시작했다는 건 시청자나 국민들에게 주는 메시지가 클 수밖에 없다. 그동안 기득권에 안주하던 KBS 구성원들이 들고 일어섰다는 건 새로운 변화의 조짐이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제작거부에 돌입했던 KBS 기자협회는 공영성 확보방안과 보도제작시스템 제도 개선에 적극 나선다는 방침이다.
KBS 기자협회 이승준 대변인은 "KBS 기자협회가 '세월호 관련 보도를 반성하는 미디어 프로그램과 9시 뉴스 제작 방송', '사장과 보도본부장의 퇴진을 요구' 'KBS 뉴스의
정치적 독립성 확보를 위한 제도적 방안 마련' 등 3가지 요구 사항을 결의 했는데 두 가지는 해결됐지만 제도개선방안이 남았다"면서 "앞으로 제도개선에 주력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KBS 기자협회는 연휴가 끝나는 오는 9일 총회를 열어 이미 마련된 제도개선방안에 대해 공론화 과정을 거칠 예정이며 회사측에 T/F 구성을 제안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지만 KBS가 진정한 공영방송으로 거듭나기 위해 갈 길은 아직 멀기만 하다.
가장 당면한 문제는 새 사장에 누가 선임 될 것이냐 하는 문제다.
KBS 사장은 방송법 규정에 따라 대통령이 임명한다. 따라서 일단 앞으로의 일정은 KBS 이사회가 임명권자인 박근혜 대통령에게 길 사장 해임을 제청하게 된다. 길 사장 해임 제청안은 여권추천 이사 3명이 해임에 동의한 만큼 받아들여질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이 해임 제청안을 받아들이면 KBS 이사회는 사장 공모절차에 들어가 차기 사장 선임절차를 진행할 것이다. 차기 사장은 늦어도 8월 29일 이전에 선임될 전망이다. 개정 방송법에 따라 8월 29일 이후에 선출되는 KBS 사장은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하는 만큼 그 이전에 사장 선임 절차가 마무리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새로운 사장에 이른바 '제2의 길환영'이 임명될 가능성을 배제 할 수 없다. 대통령이 낙점한 인물을 여권추천 이사가 다수인 이사회에서 반대할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캠프출신이거나 정부 친화적인 인물을 임명할 경우 KBS 사태는 새로운 국면을 맞을 수도 있다.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최진봉 교수는 "정부는 이번 KBS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차기 사장을 캠프 출신이거나 정권친화적인 인물 이른바 '제2의 길환영'을 내려보낼 경우 방송을 장악하려는 의도로 비판 받을 것이고 KBS 구성원들 뿐아니라 국민적인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사장 선임제도의 개선이 관건이다.
현재 KBS 사장 선임은 11명으로 구성된 이사진이 사장 공모절차를 거쳐 임명을 제청하면 대통령이 임명하는 구조다. 정부.여당 추천 이사가 7명이고 야권 추천이사가 4명이어서 '친여권' '친정부' 인사가 사장이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그래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KBS는 사장 임명을 둘러싸고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공영방송의 주인은 국민이지만 정권을 잡은 쪽에서 가장 먼저 장악하려는 곳이 공영방송 KBS인 것이다.
뉴스타파 대표를 맡고 있는 지낸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김용진 교수는 "어떤 정권이 들어서거나 어떤 사장이 임명되더라도 공영방송의 역할이 달라져서는 안된다"면서 "사장 선임제도를 바꾸는 것이 시급하다"라고 지적했다.
사장 선임구조 개선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다. 공영방송을 감당하겠다는 KBS 구성원들의 의지와 자질이다.
김용진 교수는 "영국의 BBC도 정권이 개입할 여지가 적지 않지만 보수당 정권이 들어서건 노동당 정권이 들어서건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면서 "KBS 조직 스스로 공영방송을 감당할 기풍을 만들어가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KBS의 한 관계자는 "KBS 구성원들이 이렇게 한 목소리로 공영방송 쟁취를 외친 적이 없다"면서 "길환영 사장의 퇴진은 진정한 공영방송을 위한 첫걸음일 따름"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