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후보는 여당의 텃밭인 부산을 지켰고 유 후보는 인천을 탈환했다. 새누리당 17명의 광역단체장 후보 가운데 가장 친박색(色) 짙은 두 사람이 살아남은 것이다.
이들은 악조건 속에서도 고군분투 했다. 서 후보는 무소속 오거돈 후보가 일으키는 야풍에 계속 흔들렸다. 당 내부에서도 여권의 본진인 부산을 야권에 내줄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이 고조됐다. 당 선거대책위원회가 여러차례 부산을 찾으며 공을 들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공동선대위원장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눈물을 닦아 달라"며 읍소전략으로 선거 운동 마지막 날까지 부산 표심 잡기에 총력을 기울였다.
결국 부산은 서 후보를 시장으로 택했다. 거센 야풍 속에서도 박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줘야한다는 부산 시민들의 뜻이 표로 연결된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의 서강대 1년 후배인 서 후보는 그야말로 친박 중의 친박으로 분류된다. 2002년 보궐선거에 출마해 국회 입성한 뒤 내리 4선에 성공했다. 당 정책위의장과 최고위원, 사무총장 등을 두루 역임하며 박 대통령을 보필했다.
박 대통령과 이런 특수한 관계에 있다보니 서 후보의 '박근혜 마케팅'은 다른 어느 후보보다 '진정성' 측면에서 눈에 띄는 효과를 발휘했다. 결국 서 후보는 보수 결집에 성공하며 자신의 안방에서 거세게 일었던 오 후보의 야풍을 잠재울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인천은 부산보다 더 힘겨운 싸움을 펼쳐야 했다. 세월호 참사 직전까지 안전행정부 장관직을 맡았던 유 후보에게 세월호 변수라는 거대 '악재'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 책임론에 더해 송영길 새정치민주연합 후보가 현역이라는 점도 유 후보의 '인천상륙작전'을 어렵게 했다.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 인천시민은 유 후보의 손을 들어줬다. 선거 막판까지 송 후보를 앞서지 못한 유 후보의 당선은 믿기 어려운 결과로 인식됐다.
작은 이변으로 귀결된 인천시장 선거의 배후에 역시 박 대통령이 있었다. 박 대통령이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후보였을 때 비서실장을 맡았던 유 후보도 핵심 친박으로 분류된다. 유 후보는 박 대통령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대통령취임준비위 부위원장을 맡았으며, 이후 새 정부의 살림살이를 도맡아 할 초대 안전행정부 장관에 임명됐다.
그의 행적만 봐도 박 대통령이 유 후보에게 높은 신뢰를 보내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인천시민들은 유 후보에게 "친박 인사가 시장이 되면 13조원에 이르는 인천시의 부채를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적잖게 내비쳤고, 이런 기대감은 결국 표로 이어져 유 후보의 당선에 원동력이 된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 핵심당직자는 "친박 핵심 인사들이 신승을 거두긴 했지만 부산을 지켰고 인천을 빼앗아오는 나름의 성과를 거뒀다"며 "두 곳 모두 빼앗겼으면 친박 주류에 대한 저항이 컸겠지만 이같은 결과를 받아든 상황에서 친박 주류 헤게모니는 유지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세월호 참사라는 악조건 속에서 친박 핵심 인사 두 명의 광역단체장 당선은 축 처진 친박계 주류들의 어깨를 들썩이게 할 것으로 예상된다. 두 사람을 공천했던 구 친박계 지도부도 당 내에서 다시금 입지를 다질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게 될 것으로 보이며, 비주류 사이에서 고조되던 박 대통령을 향한 비판도 어느 정도 수그러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친박계의 입지 확보는 서청원 공동선대위원장의 당권 행보에도 적잖은 도움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싹쓸이 패배가 예상됐던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 3곳에서 2곳을 따낸 공이 크기 때문이다.
당권 경쟁자인 김무성 공동선대위원장도 자신의 지역구가 있는 부산에서 선거 운동에 힘을 쏟긴 했지만, 서병수 후보의 당선은 그의 노력보다 '박근혜 마케팅'이 더 주효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당 내부에서는 차기 당권을 놓고 김 위원장으로의 쏠림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소문도 나돌고 있어 두 당권 주자의 치열한 신경전이 불가피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