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경찰의 수사를 축소·은폐한 혐의로 기소된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에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무죄가 선고됐다.
1심 재판부는 "대선 직전인 2012년 12월 16일 밤 11시 경, 서울 수서 경찰서가 수사결과를 발표한 것에 대해 좀 아쉬움이 남는다"면서도 김용판 전 청장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권은희 당시 수서 경찰서 수사과장과 나머지 경찰관계자들(서울경찰청 수사과장 등 17명)의 진술이 엇갈리는데 나머지 경찰 관계자들의 진술은 다수고 권은희 과장은 한 명이며 또 권은희 과장의 이야기가 사실관계가 맞지 않는다고 무죄를 선고한 이유를 설명했다.
대통령 선거 투표가 임박한 시점에 왜 그러한 수사결과를 발표했는지 의심스럽지만, 경찰관 다수가 김용판 청장의 수사 외압이 없었다고 만장일치로 진술하기 때문에 "수사 외압이 있었다"는 단지 한명의 경찰관 얘기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정말 아쉬움을 남기는 판결이었다.
◈ 항소심 재판부 "(수사발표가) 박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했지만, '선거운동' 아니다"
그로부터 4개월 만에 내려진 김용판 전 청장의 공직선거법위반 혐의에 대한 항소심 판결은 1심 판결보다 더 절망적이다.
항소심 재판부의 무죄 판결에 대한 핵심 이유는 "수사 결과 발표가 박근혜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많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행위가 선거운동에 해당하려면 그 행위가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친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즉, 김용판 당시 서울경찰청장의 지시로 이뤄진 12월 16일밤의 수사 결과 발표가 직후에 실시된 선거에서 박근혜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김 전 청장이)그렇게 한 행위가 '선거운동'이 아니기 때문에 무죄라는 설명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공무원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와 '선거운동'을 명확하게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거에 영향을 미쳤다고 모두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공무원이 선거운동을 한 혐의를 입증하려면 "목적성, 능동성, 계획성이 필요한데, 목적성은 주관적 요소(속마음)라서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에, 행위의 '능동성'이나 '계획성'의 요소라는 상대적으로 객관화될 수 있는 요소를 통해 행위자의 의도를 파악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선거운동의 범위를 '어디까지 볼 것이냐'가 핵심인데 재판부 설명은 '선거운동 범위'를 무한정 넓게 해석해서는 안 되고 '선거운동'이라는 개념은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김용판 전 청장의 경우, 중간수사결과 발표가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하지만 그것만으로 '선거운동을 했다'라고 규정할 수 없고 특정후보에 대한 당선 또는 낙선의 목적의사가 객관적으로 인정돼야 한다는 논리다.
재판부는 이에따라 경찰이 발표한 수사결과 발표는 '국정원 직원에 대한 수사 발표'이지, '박근혜 후보가 국정원과 공모해 선거에 개입했다'는 혐의사실이 아니므로 '선거운동'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항소심 재판부에서 김용판 피고인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는 이렇게 허무하게 기각됐다.
지방경찰청장이라는 '고위 공직자'가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는 했지만 그것을 "선거운동으로 볼 수 없다"는 항소심 재판부의 법 논리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오히려 1심 재판부의 "아쉬움이 남는다"는 법 논리를 뺨 치고도 남을 판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