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위협과 강압, 자기주장을 밀어붙이기 위한 무력시위에 나서는 국가에 단호히 반대한다."(척 헤이글 미국 국방장관)
"온 것이 있는데 보내는 것이 없으면 예의가 아니다(來而不往非禮也·래이불왕비례야)."(왕관중(王冠中) 중국 인민해방군 부총참모장)
1일 싱가포르 샹그릴라 호텔에서 3일간의 회의를 마친 제13회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는 중국과 일본·미국 간 최근 대립 구도를 극명하게 보여줬다.
영국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가 주최하는 이 연례회의는 아시아 태평양 각국 국방장관이나 군 관계자뿐 아니라 민간 안보 전문가까지 참여하는 대화체로 역내 안보 협력과 신뢰 구축을 목표로 2002년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 회의에서는 동·남중국해에서 영유권 주장을 노골화하며 적극적 움직임을 보이는 중국, 아베 등장 후 강력한 우경화 행보 속에 중국을 견제하려는 일본, 일본에 동조하는 미국의 갈등 양상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왔다.
호주의 ABC 뉴스는 "이례적으로 강한 발언을 목격했다"고 전할 정도였다.
포문은 일본이 먼저 열었다.
아베 총리는 지난달 30일 역대 일본 총리 중 처음으로 이번 회의에서 기조연설을 하면서 "세계가 지금 바라는 것은 우리의 바다와 하늘이 규칙, 법, 확립된 분쟁해결 절차의 지배를 받는 장이 되는 것"이라며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설정과 해양진출 정책을 간접적으로 비판했다.
오노데라 이쓰노리(小野寺五典) 일본 방위상은 나아가 척 헤이글 미국 국방장관, 데이비드 존스턴 호주 국방장관과 회담하고 "힘에 의한 일방적인 현상 변경에 강하게 반대한다"며 "긴장을 확대하는 활동을 자제하고 국제법에 따라 주장을 명확하게 펼 것을 요구한다"고 중국을 압박했다.
중국은 즉각 반발했다.
중국 대표단을 이끄는 왕관중(王冠中) 중국 인민해방군 부총참모장은 그림자에 모래를 뱉어 사람을 숨지게 할 수 있는 전설 속의 괴물을 빗대어 "아베 선생의 강연 내용은 '함사사영'(含沙射影·모래를 머금어 그림자에 발사한다) 식으로 중국을 비난했다"고 날을 세웠다.
중국 측은 "(일본이) 국제법이라는 말을 자주 쓰지만, (국제법이 마치) 일본의 법률처럼 들린다"고도 비판했다.
그러자 미국이 일본에 힘을 실어 줬다.
헤이글 장관은 31일 "최근 수개월간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자기주장을 내세우며 안정을 위협하고 일방적인 행동을 해왔다"고 중국을 몰아붙였다.
센카쿠 열도가 미·일 안보조약의 적용대상이고 미국은 일본의 집단 자위권 추진을 지지한다는 입장도 재확인했다.
중국의 왕 부총참모장은 이에 대해 "헤이글 장관의 발언이야말로 패권주의 색채로 가득 차 있다"고 맞받았다.
또 "우리는 이들(미국, 일본)의 합창을 통해 누가 주동적으로 사건과 분쟁, 충돌을 일으키는지 분명히 알게 됐다"며 자국을 겨냥한 미·일의 공동 행보를 질타했다.
외교안보전문 온라인매체 '더 디플로맷'은 이번 회의에 나타난 이 같은 긴장 관계는 단순히 영유권 분쟁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고 분석했다.
증대된 경제·군사력을 바탕으로 지도력을 원하는 중국에 아시아·태평양 지역이 어떻게 대응하느냐 하는 문제가 이 같은 갈등 양상의 바탕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 지역의 안보를 둘러싼 일본과 중국의 비전은 서로를 압박할 것으로 이 매체는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