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실장의 인사에 앞서 정부 안팎에서는 어떤 인물이 실장 자리에 앉느냐가 집권 2년 차인 박 대통령의 대북 정책 기조를 가르는 지표가 될 거라는 분석이 많았다.
연초부터 박 대통령이 통일대박론, 드레스덴 선언 등을 발표하며 국면 전환을 시도한 만큼 억지력에만 집중해 온 대북 정책에 변화가 있을 거라는 기대가 일기도 했다.
특히 일본이 최근 한미일 대북 공조체제와 경색된 남북 관계의 틈새를 파고들어 북한과 일본인납치자 재조사에 합의함에 따라, 우리 정부도 '선(先)비핵화'에 발목 잡힌 외교적 공간을 재구성 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던 차였다.
하지만 이날 김 장관 내정 발표는 박 대통령이 '더 많은 제재와 압박'이라는 카드를 계속 쥐고 있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줬다. 미국의 대북 기조에 한국이 보조를 이어가겠다는 것이다. 사실상 이름표만 바꾼 김관진 실장 체제의 '시즌 2'인 셈이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일본이 한미일 대북 공조 체제에서 이탈하는 등 상황 변화가 있지만, 북한이 4차 핵실험을 한다고 위협하고 드레스덴 선언 등에도 호응을 하지 않는 상황에서 기존 방침을 유지하겠다는 판단을 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김관진 실장 체제에서 계속 제기됐던 지적, 즉 외교안보실이 군사안보를 넘어서 동북아 전체 판을 읽고 정책을 짜는 외교안보의 콘트롤 타워로 기능할 수 있냐는 문제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동북아 지형에서 한국의 외교안보는 단순히 '대북 억제'만 가지고는 풀어가기 어려운 형국이다. 격돌하는 미중과 도발하는 일본 사이에서 북한과의 관계까지 단절된 한국은 외교 공간을 점점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군 출신이 안보실장에 간다고 해서 그만큼 대북억지력이 강해지는 게 아니라면, 갈수록 첨예해지는 동북아 외교 상황에서 장기 전략을 고민할 수 있는 인물이 사령탑을 맡아야 되지 않냐"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밖에도 국방부 장관에 내정된 한민구 전 합참의장이 안보실 내에서 운신의 폭이 있겠느냐는 우려도 나온다. 위계를 중시하는 군 문화를 고려하면, 국방부의 목소리는 김 내정자가 대표하고 한 내정자는 이를 보조하는 역할에 머무를 것이라는 지적이다.
외교안보에 정통한 여권의 한 인사는 "오늘 인사만 보면 결국 사람만 바뀐 셈인데, 후임 국정원장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박 대통령의 대북정책 기조가 어떤 것인지를 명확히 알 수 있을 것"이라며 "박 대통령은 대북강경 기조를 '원칙'이라고 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