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톤' 조동인 "아빠 유언 대신한 영화…가슴에 가닿길"

[노컷인터뷰] 고 조세래 감독 아들…꿈과 현실 사이 방황하는 청춘 열연

배우 조동인 (노컷뉴스 이명진 기자)
바둑을 디딤돌로 인생의 정수를 찾는 영화 '스톤'에서 불확실한 삶의 굴레에 갇혀 방황하는 청년 민수를 연기한 배우 조동인(25). 그는 6월12일 개봉하는 이 영화를 데뷔작이자 유작으로 남기고 지난해 세상을 떠난 고(故) 조세래 감독의 아들이기도 하다.

인터뷰 내내 고인이 된 아버지를 "감독님"이라고 칭하던 그에게 '의식적으로 호칭에 신경을 쓰는 것이냐'고 묻자 "평소에는 '아빠'라고 부른다"며 긴장을 누그러뜨리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극중 재능 있는 아마추어 바둑기사 민수는 프로 바둑기사라는 꿈과 막무가내로 부딪혀 오는 현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청춘이다. 민수 역을 맡았던 조동인이 실제로 수준급의 바둑 실력을 지닌데다, 이제 본격적으로 필모그래피를 쌓기 시작한 신인이라는 점에서 둘은 닮은꼴이다.

'아버지께서 동인 씨를 모델로 민수 캐릭터를 만드신 거냐'는 물음에 그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신중하게 답변을 내놨다.
 
"감독님께서 쓰신 다른 시나리오에 저를 모델로 한 게 있지만, 스톤은 저를 염두에 두신 것 같지는 않아요. 오히려 본인의 삶이 많이 들어간 듯합니다. 민수는 감독님의 젊은 시절이고, 민수를 아끼는 조직의 보스 남해(김뢰하)는 나이든 감독님인 셈이죠. 감독님은 이 영화를 통해 포기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는 말을 하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저 같은 청년은 물론 선택의 기로에 선 모든 사람들에게 승부를 걸라는 말인 거죠."
 
조동인은 자신에게 바둑을 가르친 것도, 배우의 길로 인도한 것도 아버지라고 했다. 그리고 조세래 감독은 마치 유훈처럼 평생의 숙원이던 바둑 영화 스톤을 남기고 떠났다.
 
"감독님 인생에는 바둑과 영화, 그리고 가족이 크게 자리잡고 있었어요. 따뜻한 아버지셨죠. 친형이 대학 연극영화과에 재학 중인데 스톤의 제작사(샤인픽쳐스)을 맡고 있어요. 감독님께서 데뷔가 늦으시다보니 이렇게 가족의 참여도 가능했겠죠. 이 영화를 살리고 샤인픽쳐스를 키우는 게 저와 형의 과제이자 꿈이 됐죠."
 
- 열여덟 살에 극단 꼭두에서 연기를 시작했다던데.
 
"감독님과 어머님이 만나신 곳이 영화사 신씨네였다. 어머님이 그곳 사무를 보고 계셨는데, 감독님이 신인감독의 꿈을 안고 시나리오(조세래 감독은 1991년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로 춘사영화제 각본상을, 1992년 '하얀 전쟁'으로 대종상영화제 각색상을 연이어 수상했다)를 들고 찾아오면서 인연을 맺으셨다고 들었다. 제작을 맡은 형님도 그렇고 집안 분위기가 영화랑 떼려야 뗄 수 없게 됐다. 감독님께서 저에게 연기를 하라고 말씀하시지는 않았지만 이상하게 그쪽으로 몰아가셨던 듯하다. (웃음) 감독님도 연기를 하고 싶어하셨다. 스톤에도 민수와 대결하는 내기바둑꾼으로 잠깐 출연하셨다."
 
- 극단을 택한 이유는.
 
"학원에 들어갈 수도 있었지만, 감독님께서 어차피 연기할 거면 본고장으로 불리는 대학로에서 뭘 해도 해보라고 하시더라. 그렇게 고교 2학년 때 연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 들어갔을 때 걷는 법부터 배웠다. 그 영향으로 지금도 길에서 바르게 걷지 않는 사람들이 눈에 확 들어온다. 그 다음 배운 게 개 짓는 소리. 동물들 우는 소리가 올바른 발성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희곡을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다. 읽고 분석하고 캐릭터 하나를 잡아 인생을 투영하는 연습을 꾸준히 하게 된 계기였다."
 
- 연기에 대한 특별한 각오 같은 것이 있었나.
 
"연기자는 연기를 잘해야 하지 앟나. 감독님 표현을 빌리자면 '어디 가서 쪽팔리면 안 된다'. 고3 때도 연기 배우려고 학교를 등한시했다. 아침에 등교해 '선생님 저 왔습니다' 인사하고 결석은 면한 뒤 극단으로 가서 연습했다. 당시 우리 반에 예체능하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담임선생님이 저만 별말씀 없이 빼주셨다. 얼마 전에 선생님을 찾아뵈었는데 '절실해 보여서 그랬다'고 하시더라."
 
- '부러진 화살'(2011)로 스크린 데뷔를 했는데, 하얀 전쟁으로 정지영 감독과 인연을 맺은 아버지 덕이 컸나.
 
"극중 안성기 선배님의 아들로 출연했다. 정 감독님께서 '아들 오디션 보게 하자'고 하셨다. 열심히 준비해서 오디션을 봤는데, 정 감독님께서 '동인이가 하자'고 하시더라. 두 분이 잘 아시는 사이셨으니 덕을 본 셈이다."
 
- 영화 스톤에서 "바둑도 목숨 걸고 둡니다"라는 민수의 대사가 인상적이더라.
 
"프로 바둑기사 조치훈 사범님이 했던 말로 알고 있다. 집에 그 글귀가 새겨진 도자기가 있었다. 바둑 애호가이신 감독님은 항상 바둑과 인생을 연결시켜서 조언을 해 주셨다. 그러한 맥락에서 영화에도 들어간 것 같다."
 
- 본인도 민수처럼 승부사인가.
 
"감독님께서 승부사셨는데 그 기질을 물려받은 듯하다. 감독님은 당구를 치더라도 재미로 칠 때와 내기를 걸고 칠 때 분위기가 다르셨다. '승부'라는 말도 유난히 좋아하셨다. 그러한 성격을 저도 닮은 듯하다. 어릴 적 감독님께서 6개월 동안 바둑학원을 운영하셨는데, 학원들끼리 3대 3대결을 할 때 저는 항상 필승카드로 마지막에 출전했다. 당시 열 판을 두면 아홉 판은 이겼다. (웃음)"
 
배우 조동인 (노컷뉴스 이명진 기자)
- 영화에 프로 바둑기사 이세돌 9단에 대한 오마주가 담겨 있더라.
 
"개인적으로도 가장 좋아하는 프로 바둑기사다. 바둑 TV에서도 이세돌 사범님의 지난 경기를 제일 많이 내보내는데, 봐도 봐도 재밌다. 그분은 바둑을 평범하게 두지 않는다. 다 이긴 대국도 굳히기에 들어가지 않고 끝까지 싸우다 마무리짓는다. 어디로 튈지도 모르겠다. 이세돌 사범님께 왜 그렇게 두느냐고 물었는데 '가장 이득이라고 생각하는 걸 두다 보니 그렇게 되더라'고 하시더라. 진짜 승부사다."

- 또래를 연기한 만큼 민수에 대한 공감대도 컷을 듯하다.
 
"반 이상은 제 모습이었다. 일단 기질적인 면에서 그렇고, 신중한 면도 닮았다. 민수만큼이나 우울하지는 않지만 개인적으로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고 사색을 즐기는 편이다. 내향적인 성격이라고 해야 할까."
 
- 김기덕 감독의 신작 '일대일'에서는 분노에 찬 청년으로 분해 스톤에서와는 180도 다른 연기를 하던데.
 
"예전 한 영화 시사 현장에서 김기덕 감독님을 처음 뵈었는데, 감독님께서 '눈이 예쁘다'고 좋게 기억해 주셔서 일대일에 출연하게 됏다. 영화를 많이 안해 본 입장이어서 이런저런 캐릭터를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
 
- 실제 바둑 실력이 남다르다던데.
 
"급수가 후한 인터넷 바둑 3단이다. 열 판 두면 여섯 판 정도 이긴다. 기원에서는 5급으로 뒀다. 아홉 살때부터 감독님께, 그러니까 아버지에게 놀듯이 배웠다. 아버지는 아마 공인 5단이셨다. 형보다 제가 곧잘 두니까 많이 가르쳐 주셨다. 그때 '9점 깔고 이기면 1000원 주겠다'는 감독님 말에 정말 열심히 했는데 중학교 때 처음 그 돈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 바둑을 배워 둔 것이 사는 데도 도움이 되는지.
 
"분명히 그렇다. 바둑을 둘 때면 실수를 줄이려고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 이러한 습관이 든 덕에 살면서 실수할 확률이 줄어드는 것 같다. 일례로 여자친구(지금은 솔로란다)와 다툼을 벌일 때 욱할 것도 한 번 더 생각하게 되더라. (웃음)"
 
- 힘들 때 생각나는 바둑과 연관된 말이 있나.
 
"거창한 건 아니지만 문득 감독님이 하셨던 말 중에 기억나는 게 있다. '바둑을 두다 보면 이기는 날도 있고 지는 날도 있으니, 지는 날에는 이길 마음에 계속 두지 말라'는 말이다. 지는 날에는 계속 패하게 돼 있으니 최대한 덜 지는 게 현명한 행동이라는 의미로 이해하고 있다."
 
-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바둑과 영화는 일상이었겠다.
 
"어릴 적 영화에 얽힌 기억은 크게 없다. (국내 첫 바둑영화 '명인'을 준비하던 조 감독은 여러 이유로 제작이 무산되면서 영화계를 떠났고 바둑 소설 '역수'와 그 개정판 '승부'를 쓰며 바둑에 대한 애정을 이어갔다.) 그때 감독님은 소설을 쓰시면서 바둑을 계속 두셨다. 당시에는 작가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스물두 살 때 스톤의 시나리오 초고를 봤고, 감독님께서 '네가 할 수도 있으니 준비하고 있으라'고 하시더라. 배우로서 인지도가 없는 상태여서 군대갈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설득당했다. (웃음)"
 
- 생활고도 겪었을 텐데, 아버지가 싫었던 적은 없는지.
 
"제가 중학교 때 감독님께서 고깃집을 하시다가 잘 안 돼 엄마랑 많이 싸우셨다. (웃음) 아빠가 싫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친구분들과 약속이 겹치더라도 항상 가족을 우선시하던 분이셨다. 저 역시 친구들이랑 노는 것보다 가족들이랑 있는 게 더 재밌다. 주변 친구들이 아버지와의 사이를 알면 신기해 했는데, 저는 친구들이 신기해 하는 게 신기했다. 감독님이 항상 집에 계셔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웃음) 가족을 무척 사랑하시던 분이다."
 
- 2011년 스톤을 찍으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감독님께서 '참 행복하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 그 모습이 선하다. 아빠랑 형이랑 저랑 작은 차를 타고 한 달 반 동안 촬영장을 오갔는데, 촬영 마치고 집에 가면서 '오늘은 무슨 안주에다 한잔할까'가 항상 화젯거리였다. 너무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 영화를 마친 뒤 건강이 안 좋아지신 건가.
 
"촬영 현장에서 슈퍼맨 같던 분에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암이라는 게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건데, 너무 남일처럼 쉽게 생각했던 것 같다. 유언도 못 남기고 가셨다. 그 영향인지 택시를 타면 아버지뻘 되시는 기사분들에게 '꼭 건강검진 하시라'고 말한다. 아빠 돌아가신 뒤 생긴 버릇이다."
 
- 어떤 배우를 꿈꾸나.
 
"열심히 사는 배우. 감독님이 하시던 말씀이다.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어떻게 사는 게 배우로서 열심히 사는 길인지 찾아가고 있다. 영화 스톤은 아빠에게 평생의 숙원과도 같은 영화다. 그 안에 담긴 삶에 관한 메시지가 관객들에게 가닿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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