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운동 동지에서 여야 기초단체장 남녀 후보로 경쟁

군사정권 시절 민주화운동을 하며 동거동락했던 386세대 총학생회장 출신들이 6·4 지방선거에서 맞붙어 눈길을 끌고 있다.

서울 양천구청장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경합하고 있는 새누리당 오경훈(50) 후보와 새정치민주연합 김수영(49) 후보 이야기다.

두 후보는 1986년 각각 서울대와 이화여대 총학생회장을 맡으며 함께 민주화투쟁을 했던 운동권 출신이다.

한 목소리로 독재정권 타도를 외쳤던 젊은 대학생이 이제는 여야로 나뉘어 양천구청장 자리를 놓고 정면 승부를 벌이게 된 것이다.

◈오경훈 후보 “김 후보와 함께 경찰 검문 피해 다닌 사이”


오경훈 후보
지난 27일 오전 양천구 목4동 시장. 오 후보가 시장 상인들, 주민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었다.

때마침 지원사격을 나온 새누리당 이인제 공동선대위원장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 주십시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무조건 기호 1번입니다”라고 거들었다.

오 후보는 즉시 명함을 꺼내며 “안녕하십니까 구청장 후보입니다” 라고 주민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 후보는 “세월호 참사 이후 선거운동을 거의 중단하다 보니 지역 주민들을 만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서울대 총학생회장 시절 김 후보와의 인연을 묻자 오 후보는 “당시 나라가 워낙 심각한 상황이다 보니 김 후보와 경찰 검문 피해 다닌 적도 있다” 며 “부조리한 사회를 어떻게 바꿀지 밤새 토론했던 기억도 난다”고 소개했다.

이어 오 후보는 “막역한 사이다 보니 선거전 하다 마주치면 서로 안부를 묻기도 한다”며 “30년 가까운 친구 관계이니 그 어떤 선거보다도 깨끗한 선거전을 펼쳐 질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오 후보는 지난 2000년 한나라당 양천을 지구당 위원장을 시작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2003년에는 양천을 보궐선거에 당선돼 국회의원을 지냈다.

◈김수영 후보 “오 후보는 민주화운동 동지, 상대 후보로 만나게 될 줄 몰라”

같은 날 오후가 되자 이번에는 양천구 목3동 시장에 새정치민주연합 김수영 후보가 한명숙 전 총리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한 전 총리를 알아본 젊은 주부들이 사진 촬영을 위해 몰려들자 김 후보는 명함을 건네며 “엄마의 힘으로 양천구를 책임지겠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김 후보가 유세를 위해 시장에 위치한 약국을 방문하자 한 약사는 음료수를 건네며 “비록 동작구에 거주 중이지만 저는 무조건 2번이다. 다른 약사들 역시 심정은 똑같을 것이다”고 김 후보를 응원했다.

이어 그는 “새누리당은 워낙 자본가 위주의 정책을 쓰지 않느냐”며 “새정치민주연합이 거대 자본의 동네 침투를 막을 수 있는 희망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 때 함께 민주화운동을 함께 했지만 이제는 서로 다른 정당 후보로 만나게 된 오 후보를 김 후보는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김 후보는 “노동운동과 시민단체 활동을 했던 나와 달리 완전히 다른 노선을 택한 오 후보와 한동안 만날 기회가 없었다”고 운을 땠다.

이어 “86년도 당시 둘 다 수배 상태일 때 총학생회장끼리 연대를 했었다”며 “젊은 시절 같이 민주화운동을 했던 동지다 보니 아무래도 애정이 남아 있다”고 회상했다.

덧붙여 “이렇게 상대 후보로 만나 함께 경쟁을 하게 될 줄 몰랐다”며 “오 후보 측이 정책선거를 하자고 제안을 했으니 네거티브 없는 선의의 경쟁을 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혔다.

김 후보는 이제학 전 구청장의 부인이다. 이 전 구청장은 지난 2010년 선거 때 당시 추재엽 한나라당 후보가 보안사에 근무하며 고문을 했다는 폭로를 한 것이 문제가 돼 당선무효형을 받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지난해 4월 ‘보안사에서 고문에 가담했음을 인정했다’고 판결했고, 추 후보는 구청장에서 물러났다. 김 후보로서는 명예회복을 위한 선거이기도 한 셈이다.

◈양천구 주민들 ‘정당 투표 VS 인물 투표’

김수영 후보
두 구청장 후보를 바라 보는 주민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인물보다는 정당을 보고 투표하겠다는 주민이 있는가 하면 젊은 층에서는 세월호참사가 투표에 영향을 줄 것 같다는 반응도 감지됐다.

목동 3단지에 거주한다고 밝힌 한모씨(77 여)는 “무조건 2번이다. 나는 공약보다 당을 보고 뽑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30대 주부 안모씨는 “지금 워낙 세월호 사건으로 후유증이 크다 보니 아무래도 그에 대한 연장선으로 일단 정당을 보고 선택할 것 같다”는 뜻을 밝혔다.

목3시장 상인 박모씨(46 남)는 “세월호참사와 무관하게 무조건 김수영 후보를 찍을 것이다. 일단 정당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당 보다는 인물을 보고 결정하겠다는 유권자도 있었다. 이모씨(64 여)는 “서울시장은 정몽준을 안 찍을 것이지만 구청장은 오경훈 후보를 찍을 것이다”며 “오 후보가 국회의원 할 때 잘 했던 것으로 기억해 이미지가 좋기 때문이다”고 했다.

목4동 시장에서 상점을 운영 중인 한 상인은 “누구를 뽑을지 결정하지 않았지만 책자를 보고 당을 떠나서 사람이나 인품을 보고 뽑을 생각이다. 과거의 이력과 성실성을 보고 뽑을 생각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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