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법상 선박 사고의 원인 분석은 해양안전심판원이 맡게 돼있고, 특히 해경은 관여할 수 없도록 규정돼있기 때문이다.
검찰과 해경은 세월호 침몰 이튿날부터 지금까지 여러 차례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급격한 '변침(變針, 선박이 진행하는 방향을 트는 것)'을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지난달 17일 해경 여객선 침몰사고 수사본부는 세월호 대리 선장 이준석(60) 씨 등을 밤샘 조사한 끝에 "무리한 변침이 사고의 원인인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당시 이 씨가 사고 당일인 지난달 16일 오후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는 동안 유치장이 아닌 목포 해경 직원의 아파트에서 머물렀던 사실이 드러나 '짜맞추기식 기획 수사 아니냐'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지난달 18일과 지난 15일, 두 차례의 중간수사 결과 발표에서 "변침이 사고 원인"이라는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
합수부 발표에 따르면 사고 당일 세월호의 화물적재량은 기준인 1077t의 두 배에 이르는 2142t으로 과적한 대신, 선체 복원에 필요한 평형수는 기준보다 1083t 줄여 복원력이 떨어진 상태였다.
이 와중에 3등항해사의 소변침(5도 변침) 지시를 받은 조타수가 대변침(15도)한 과실이 세월호 사고의 '방아쇠'가 됐다는 얘기다.
이처럼 검찰과 해경이 초반부터 '변침'을 사고 원인으로 유력 지목하면서 좌초나 충돌, 내부 폭발 등 다른 가능성은 모두 힘을 잃기 시작했다.
이 법에 따르면 해양에서 발생한 사고 중 "선박의 구조·설비 또는 운용과 관련하여 사람이 사망 또는 실종되거나 부상을 입은 사고"와 "선박의 운용과 관련하여 해양오염 피해가 발생한 사고"는 해양안전심판원을 두어 심판하도록 되어있다.
실제로 1993년 10월 전북 무안군 위도 앞바다에서 일어나 승선인원 362명 중 292명이 숨졌던 '서해훼리호 전복사고'나, 2007년 태안 만리포해수욕장 인근에서 벌어진 '허베이스피리트 유조선 기름 유출 사고'에서도 심판원이 사고 원인을 조사했다.
따라서 심판원이 세월호가 침몰한 지난달 16일 곧바로 특별조사부를 구성해 조사를 시작했기 때문에 해경이 참여한 합수부의 사고 원인 조사는 엄밀히 말하면 위법인 셈이다.
해양안전심판원 한 관계자는 "심판원이 16일부터 구성해 조사를 시작한 게 맞다"며 "합수부에서는 법을 위반했는지 따져서 처벌하는 게 목적이기 때문에 특정 사항만 보지만, 심판원은 정확한 근본적 원인까지 본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합수부 측은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형법 등에 따라 피의자 신분인 선원을 조사하면서 자연스레 사고 경위를 파악하고, 그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할 뿐이라는 것이다.
합수부 관계자는 "심판원은 심판원이고 우리는 수사기관이므로 원인을 밝힐 수 있다"며 "검찰에서 하는 수사를 갖고 수난구호법 구절에 얽매여서 할 수 없다고는 판단되지 않는다"고 잘라말했다.
이어 "수난구호법보다 중요한 법률이 적용되고 있는데 수사기관에서 할 수 없다고 해석하는 게 더 어색하다"며 "법률의 해석 문제인만큼 나중에 법적 판단을 받을 일"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법으로 명확하게 주체가 규정돼있는데도 합수부가 마치 확정된 진실인양 사고 원인을 발표하는 건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또다른 해양안전심판원 관계자는 "해경도 사실 전문가 집단은 아니라는 게 드러나지 않았느냐"며 "결과를 안 내놓으면 무능하다는 소리를 들으니까 언론보도 때문에 합수부에서 일단은 뭐라도 내놔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 관계자는 특히 "실질적으로 소송에 들어가면 해양심판원이 내놓는 재결서가 제일 우선시된다"며 "물론 합수부도 나름대로 전문가 자문을 받았겠지만, 구체적으로 전문성을 가진 원인분석은 아직 안 나왔다고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해경은 세월호 침몰 직후 구조 작업에서 부실·늑장 대응을 보인 데다, 사고해운사인 청해진해운이나 민간 구난업체 '언딘'과의 유착설까지 돌면서 "사고 당사자가 사고 경위를 조사한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일각에서는 검경의 잇따른 발표가 세월호 침몰 사고의 정확한 원인 분석에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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