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미군 "부산땅 오염시킨 건 맞지만, 정화는 못해"

발암물질 범벅 부산DRMO 정화, 한미 환경회담에서 정치회담으로 이관

오염 상태가 심각한 것으로 확인됐던 미군기지 ‘부산 DRMO(폐기물처리장)’를 결국 우리 돈으로 정화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새정치민주연합 장하나 의원이 21일 환경부와 외교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부산 DRMO’ 건이 지난해 12월 ‘SOFA(한미 주둔군지위협정) 환경분과위원회’에서 오염 치유에 대한 책임과 범위를 합의하지 못한 채 ‘SOFA 특별합동위원회’로 이관됐다

환경분과위는 환경부 토양지하수과장이, 특별합동위는 외교부 북미국 심의관이 위원장을 맡고 있다. 환경부에서 외교부로 협상 테이블이 넘어가면서, 일각에서는 과거의 ‘밀실 합의’·‘굴욕 외교’가 또다시 반복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 미군, “오염된 건 맞지만, 정화는 못 하겠다”

부산시 진구 당감동에 있는 부산 DRMO는 총 면적 3만 4,925㎡(약 1만 평)로, 미군부대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을 처리하는 곳이다. 미군에게 반환받으면 철도시설공단이 KTX차량기지로 사용할 예정이다.

해당 미군 기지는 발암물질로 범벅됐을 정도로 심각하게 오염된 것으로 이미 확인된 바 있다. (노컷뉴스 2013년 8월 7일 보도 'MB 이어 朴정부도 미군기지 환경주권 포기')

부산 DRMO(폐기물처리장). (다음 지도 캡쳐)
지난 2010년 12월부터 2011년 4월까지 실시된 위해성평가를 위한 현장조사 결과 전체 면적의 10% 가까이가 발암 위해도(CR. Cancer Risk) 10^-4(10의 마이너스 4승, 1만 명 중 1명이 암에 걸릴 가능성) 기준을 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환경부는 미군 측에 국내법 수준의 정화를 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지만, 미군 측은 위해성평가 결과에는 동의해도, 환경부가 제시한 정화 책임과 범위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았다.

특히 미군이 늘 주장하는 KISE(공지의 급박하고 실질적인 위험, Known, Imminent and Substantial Endangerment) 조건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정화 책임을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2011년 5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약 2년간 총 5차례 환경분과위를 진행했으나 이견은 좁혀지지 않았다. 결국 부산 DRMO는 '미군기지 반환 관련 공동환경평가절차(JEAP)'에 따라 환경부와 미군 양측의 의견을 첨부하여 특별합동위원회로 이관됐다.

협상의 키가 환경부에서 외교부로 넘어간 것이다. 이 사실은 이관된 지 5개월이 지난 후에야 드러났다.

◈ 다시 떠오르는 08년 굴욕의 추억

일각에서는 외교부가 협상 테이블에 나서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다. 환경부가 2년간 회의를 이어오며 미군에게 양보하지 않았던 환경 문제가 뒷전으로 밀린 채, 외교·안보 논리로 기지 반환 절차가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세계적인 폭로전문사이트 위키리크스의 '비밀문건'을 통해 알려진 특별합동위원회의 과거 행적은 이런 우려를 뒷받침한다.

(자료 사진)
위키리크스 비밀문건에 따르면, MB정부 초기인 08년 5월 주한미군 기지(부산 하야리아 기지 등) 반환 개선 논의를 위한 특별합동위원회가 열렸다.

문서는 “기지 반환을 두고 논란이 심했던 작년(07년) 협상과는 대조를 이루었다”며, “(여전히 골 깊고 실질적인 견해차가 상존했지만) 외교통상부 지도부 아래에 건설적인 한국정부의 어조와 한풀 꺾인 요구는 긍정적이며 원활한 협상 과정의 토대를 놓을 수 있는 상황이 전개됐다”고 당시 회의 분위기를 묘사하고 있다.

또 “당시 특별합동위원장이었던 외교부의 장호진 북미국 심의관이 환경부의 10가지 요구사항을 4가지로 삭감했다”고 지적하면서, “환경 문제보다는 향후 반환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기록돼 있다.

위키리크스 문건에 대해 외교부 북미국 정의혜 과장은 “미국의 입장에서 묘사된 글일 뿐”이라고 일축한 뒤, “특별합동위원회라고 해서 외교부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 환경부와 협의를 통해 하나의 입장을 정해서 (미 측과) 협상할 것이다”고 외교부 입장을 밝혔다.

◈ “환경주권 양보, 밀실 협의 안 돼”

그럼에도 시민단체는 이번 특별합동위원회에서도 환경 문제에 대한 논의가 대폭 축소되고, 미군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퍼주기 식’ 기지 반환 절차가 이루어질까 우려하고 있다.

녹색연합 신수연 간사는 “과거 전례로 보아 외교부·국방부 공직자들이 한미 외교 관계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한국 정부의 도움이 되는 협상보다는 미국이 제시한 협상안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데 급급한 태도를 보였다”며 “반환미군기지 환경정화 문제는 우리 국민의 환경권과 관련되는 것으로, 우리의 당연한 권리이자 요구사항이다”고 했다.

장하나 의원도 “환경부가 국내법 수준의 정화를 요구했으나 미군이 이를 거부해 협상이 결렬된 사실을, 5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 국민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며, “국민의 환경주권, 생존권 그리고 안전과 관련된 것은 절대 정치적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지금이라도 이 사실을 인지한 만큼 국회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당초 미군으로부터 반환받기로 했던 80개 미군기지 가운데 지금까지 반환받은 기지는 49개 기지이다. 이중 국내 환경오염기준을 초과한 기지는 25개소, 현재까지 미군 측이 정화비용을 부담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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