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운환 씨는 1991년 호남 최대 폭력조직인 국제-PJ파의 두목 '고문급 간부'로 지목되어 4년을 옥살이했다. 그리고 다시 '이용호게이트'에 얽혀 3년형을 선고받고 무고죄와 경매방해죄로 1년 2개월을 더 사는 등 모두 8년의 세월을 교도소에서 보낸 뒤 2005년 11월 만기 출소했다.
그런 여 씨가 24년 전 대법원의 확정판결까지 받은 이 사건을 두고서 자신은 '무죄'라며 당시 자신을 수사했던 홍준표 검사는 '조작된 영웅'이라며 반격에 나섰다. 홍 검사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말이다.
당시 홍 검사는 국회의원과 집권여당의 당 대표를 거쳐 경남지사 보선에서 당선된 뒤 다시 재선이 유력한 현재 살아있는 권력이다. 그런 살아있는 권력을 향해 외침을 쏟아내는 이유는 뭘까.
특히 여 씨의 거침없는 외침은 지금 한창 선거를 치르고 있는 홍준표씨에게 "사법부의 판단은 오래전에 이미 끝났지만 양심과 진실에 대한 판단은 남았다"며 '공개토론'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내기에 이르렀다. "시간과 장소를 알려 달라"는 내용도 담았다.
며칠 전 보도국 기자의 책상에는 여 씨가 최근 펴낸 '조작된 영웅과 희대의 사기꾼'이라는 부제를 달고 '모래시계에 갇혀버린 시간'이라는 한 권의 책이 배달되었다.
저자는 자신이 겪은 두 개의 사건을 소개한다. 조작된 영웅 '모래시계 검사'와 국민의 정부 최대 스캔들 '이용호 게이트' 사건이 그것.
그러나 이미 세간의 관심사에서 잊혀진지 오래고 세월이 흘러 지금은 여 씨의 나이도 60을 넘겨 남은 생에 더욱 애착을 가질만한데 새삼 책까지 내며 두 번 다시 떠올리기도 싫은 굴욕과 고통의 시간을 다시 얘기하려는 것은 왜일까.
여 씨는 "이 사건이 있고 20년이 지난 2012년 중반 당시 이 사건으로 자살에 이른 광주지검 최인주 과장의 쓸쓸했던 뒷모습을 전해 듣고 세상을 향해 책을 내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그는 지금으로부터 120년 전 프랑스 참모 본부에서 근무하다 간첩혐의로 체포된 알프레드 드레퓌스 대위의 사연으로 시작하며 그동안 자신이 겪은 일과 유사한 연결고리를 찾고 있다.
"이미 오래전 사건이었지만 가슴속의 분노는 조금도 누그러지지 않았다. 자신이 경험하고 본 것들은 하룻밤의 넋두리로 마무리 할 수는 없는 너무나도 엄청나고 거대한 것들이었다"고 적었다.
24년 전 당시 광주지검을 출입하면서 사건의 전 과정을 취재하고 지켜보았던 기자에게는 그가 출간한 책의 내용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곧바로 그가 쓴 책을 읽어내려 가며 그가 홍 검사에게 얼마나 뼈에 사무치게 절규하고 있는지. 아니 이 사회에 외침을 전하고 싶어 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여 씨는 "공명심 강한 검사들과 신중하지 못한 언론, 시국분위기와 조직논리에 끌려 다니는 탓에 공정한 판결을 내리지 못하는 재판부, 그리고 권력에 눈이 먼 정치계가 합작하여 만들어낸 사건에 대한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에서 이 책을 펴냈다"고 밝혔다.
지금도 취재현장에서 기자를 하고 있지만 당시 홍 검사가 주는 관급 기사쓰기에 바빴던 기자로서의 오류는 무엇인가를 잠시 뒤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진실은 무엇인가. 기자가 사건의 사실 혹은 진실을 세상에 알리고 그것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건은 우리의 치부이자 이 사회의 현주소를 알 수 있는 일종의 바로미터다.
기자가 기사를 쓰고 사회적 물의나 세인의 주목은 사건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후 대중에게 알려지고 난 후의 반응이다. 최종적인 힘은 대중에게 있다.
그러나 무한한 은폐력을 지닌 사건이 대중의 눈과 귀, 힘에 전달되기까지는 누군가의 노력이 필요하다. 여기에 기자의 몫이 있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기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는가에 자문해 본다.
사실 여 씨는 수배령이 내려졌을 때 광주 지검장에게 보낸 탄원서에서 자신의 결벽을 증명 받기위해 거론한 4명의 검사와 청와대 비서관, 검찰 수사관을 거명해 결과적으로 이들은 배후세력으로 몰려 큰 곤욕을 치르거나 자살에 이르게 하는 우를 범했다.
당시 관련 사건을 취재했던 기자는 왜 여 씨가 자신과 친분관계를 가져왔던 검찰 관계자들을 결벽을 증명할 사람들이라고 내세웠을까. 그것이 오히려 자신을 옭아매는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가졌었다.
그는 검사들과의 친분에 대해 "상무대에서 방위로 군 생활을 할 때 법무관을 하던 이들과 인연을 맺어 군복무 후 사회생활로 연결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렇지만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통상 그렇듯 보험차원에서 권력주변 인물들과 너무 가깝게 지낸 여려 요소들이 겹치면서 덕을 볼 때도 있었겠지만 오히려 고위공직자를 비호세력으로 둔 거물로 취급받으며 대형 스캔들로 비화되지는 않았을까.
여 씨는 본문에서 "공명심에 사로잡혀 희생양을 조작하고 만들어내는 검사는 극소수에 불과하겠지만 이라는 단서를 달면서도 권력을 향한 욕망이 강하고 타인을 짓누르는 비 인격체들은 권력이 지닌 나쁜 속성에 편승하면서 힘을 키운다"고 적었다.
그는 "2014년 현재 국제-PJ파의 두목은 검거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두목이 누구인지도 아직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존재하지도 않는 두목의 '고문급 간부'라는 죄목으로 형을 살았다"고 했다.
그리고 "나의 이마에 새겨진 이 억울한 주홍글씨는 결국 다시 한 번 내 인생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말았다"고 말했다
여 씨는 이 책에서 깡패가 아님을 증명할 5명중 한명인 광주지검 최인주 과장이 비호세력으로 몰려 자살에 이르게 된 내용과 야쿠자 비디오테이프와 관련해 가수 남진이 법정에 출석해 증언한 내용을 담고 있다.
또 법정에서 검찰 측 증인으로 나서 "여운환은 현역깡패가 아니다"라고 증언했던 광주경찰서 강력반 김영암 반장에 대한 내용, "생선회 칼 배달사고는 단순 해프닝이었는데도 목숨이 달린 위협에도 굴하지 않은 정의로운 검사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주요한 테마로 활용했다"는 주장도 담고 있다.
여 씨는 특히 "모래시계라는 드라마의 실제 주인공이라는 대중적 인지도를 바탕으로 정치인으로 승승장구했던 한 인물에 대한 대중의 객관적 판단을 유도하고자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