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세계대전이 막 시작된 1939년 12월 13일 아침 6시.
하우드 제독이 이끄는 영국 전함 3대가 힘들여 찾던 독일 전함 '아드미랄 그라프 쉬페호'를 발견했다.
당시 영국 해군은 영국으로 향하는 호송선단을 파괴하는 U보트와 독일 전함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독일 전함들은 대서양 남북으로 나뉘어 잇따라 상선들을 침몰시키고 있었다.
영국 전함들도 동서남북으로 영역을 정해 독일 배들을 찾고 있었다.
남미쪽 함대에 속한 중순양함 에그시터와 경순양함 어킬리즈, 에이잭스가 노리는 목표물은 그라프 쉬페호였다.
그는 나찌당원이 아닌 순수한 군인이었다.
영국 수송선을 공격할 때도 미리 경고 방송을 통해 무슨 이유로 격침시키는지를 설명해 배에서 탈출하도록 조치했다.
구조한 선원들도 민간 포로로 취급해 인근 항구에서 즉시 풀어 주었다.
그런 인물이라도 영국 상선이 당한 피해를 생각하면 이 배를 침몰시켜야 했다.
◈ 그라프 쉬페호, 부상을 입고 퇴각하다
그 사이에 쉬페가 먼저 폭탄을 중순양함 에그시터호에 발사해 2번 포탑을 망가뜨렸다.
다른 영국 경순양함 2척도 일제히 쉬페에게 포격을 가했다.
격렬한 공방전 끝에 영국 순양함들도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지만 쉬페도 20여발의 명중탄을 맞아 37명이 전사했다.
세가 불리하다는 걸 깨달은 랑스도르프 함장은 배의 방향을 돌려 인근에 있는 중립국가 우루과이의 몬테비데오 항구로 피난을 갔다.
항구에 들어온 쉬페호는 부상자를 병원에 이송하고 배를 수리했다.
◈ 항구에서 쫒겨나게 된 쉬페호, 자침을 선택하다
우루과이 주재 독일 대사관이 필사적으로 로비를 벌여 72시간으로 연장했지만, 그 이상은 무리였다.
이 사이에 영국 해군은 비상을 걸어 가까이 있는 전함들을 불러모으고 있었다.
그러나 모이는데 시간이 걸리는데다 달려오는 전함의 전력이 시원치 않자 마타도어 작전을 벌인다.
BBC방송을 통해 "주변의 모든 해군력을 몬테비데오 항구 앞에 집결시킬 것을 명령했다"는 거짓 뉴스를 계속 방송했다.
고민에 빠진 랑스도르프 함장은 항복이나 격침을 피해 자침하기로 결심했다.
사흘의 시한이 지난 1939년 12월 17일 함장은 입항한 독일 상선 타코마호에 700여명의 승무원들을 태웠다.
그리고는 25만명의 우루과이 국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몬테비데오 앞바다로 나갔다.
20분 후 거대한 폭발과 함께 전함은 바닷속으로 침몰했다.
그는 한 장의 유서를 남겼다.
"그라프 쉬페를 침몰시킨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
조국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내 인생을 바칠 수 있어 행복하다"
◈ "드디어 비스마르크호를 발견했다~ 모두 출항하라"
독일 최대의 전함 비스마르크호가 그의 오른팔 프린스 오이겐호를 대동하고 폴란드의 항구 고펜하텐을 출발했다.
비스마르크호는 배수량 50,995t에 선체 길이 251m, 폭 36m의 크기에 구경 380mm의 주포 8문과 각종 대공포를 장착한 떠있는 요새였다.
두 함정은 노르웨이 베르겐에 머물다 북대서양으로 진출했다.
주어진 임무 역시 영국으로 향하는 상선들을 요격하고, 영국 전함들이 출동하면 맞붙어 싸워 U보트가 마음껏 활동하도록 공간을 만든다는 것이다.
영국 정찰기가 베르겐 상공에서 비스마르크호를 발견해 해군본부에 알렸다.
영국 전함 전부가 총출동했다.
5월 23일 새벽 전함 'HMS후드'와 '프린스 오브 웨일스', 구축함 6척으로 구성된 함대가 비스마르크호와 마주쳤다.
먼저 후드호가 직격탄을 잇따라 맞고 휘청거리다 엄청난 폭발과 함께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승무원 1,419명 가운데 단 3명만이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탈출할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비스마르크호도 2차례 타격을 받고 연료 탱크에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함장 뤼첸스 제독은 주어진 임무를 포기하고 프랑스로 뱃머리를 돌렸다.
◈ 망신당한 영국 해군, 이를 악물고 비스마르크호를 추적하다
복수를 위해 인근 함정은 물론 멀리 지중해에 있는 함대까지 북대서양으로 불렀다.
추적 5일만인 5월 26일 프랑스 해안에서 1,270km 떨어진 바다에서 비스마르크호가 '카타리나' 수상기에게 포착됐다.
각종 전함들이 쫒아가는 가운데 먼저 항공모함 아크로열호에서 뇌격기 '페어리 소드피시' 15대가 출격했다.
배는 항진속도도 떨어지고 점차 기울어져갔다.
곧이어 달려온 영국 전함들은 쓰러져가는 적함을 향해 무차별적인 폭격을 가했다.
어느 순간 비스마르크호의 모든 함포는 침묵하고, 함장은 전원 퇴함을 지시한다.
함의 나포를 막기 위해 모든 배수갑문에 폭탄을 설치해 자침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2,400명의 수병 가운데 115명만 구조되었다.
함장 이하 고급 장교단 모두 배와 함께 운명을 함께 했다.
한참 지나서 나타난 영국의 중순양함 도르시셔호의 승무원들은 묵묵히 독일 수병들을 한명씩 건져 올렸다.
우리 배를 침몰시킨 적국의 병사라도 바다에 빠진 사람은 구하는 것이 뱃사람의 의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