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연구자들과 지역 시민이 모여 결성한 '간토대지진시 조선인 학살의 국가책임을 묻는 모임(이하 모임)'은 일본 정부가 나서서 일본군과 경찰이 관여한 사건을 포함한 조선인 학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해 공표할 것, 조선인·중국인·일본인 희생자에 대한 실태조사를 실시해 공표할 것, 조사결과를 게시하고 영구보존할 것 등을 요구하는 청원서를 이날 중·참 양원 의장 앞으로 제출했다고 밝혔다.
모임 측은 이 같은 청원에 동조하는 시민 5천344명의 서명을 함께 양원 의장에게 제출했다. 이 과정에서 제1야당인 민주당 소속 아리타 요시후(有田芳生) 참의원과 시이 가즈오(志位和夫) 일본공산당 위원장(중의원) 등 중·참의원의 야당 및 무소속 의원 30명이 청원의 취지에 동참하며 '소개의원'으로 참여했다고 모임 측이 밝혔다.
소개의원은 국회에 청원을 제출할 때 의원의 소개를 거치도록 하는 일본 국회법에 따라 민간의 청원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의원을 말한다.
모임의 사무국장인 도쿄 센슈(專修)대학 다나카 마사다카(田中正敬) 교수는 21일 참의원 의원회관에서 열린 보고회에서 "간토대지진 당시의 조선인 학살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상징하는 사건"임에도 "조선인 희생자의 이름은 물론 몇 명이 죽었는지도 분명치 않다"고 지적했다.
다나카 교수는 이어 "국가가 계엄을 발동해 조선인 학살로 연결된 유언비어를 유포한 사실과, 국가가 직간접적으로 조선인 학살에 관여한 것은 명백하고, 국가가 학살에 관여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진상을) 은폐한 것은 분명하다"며 "정부는 학살에 관여한 것을 인정하는 한편 유족에 사죄하고 유족의 요구에 부응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라"고 촉구했다.
그는 또 "정부가 충분한 조사를 하지 않고 은폐하는 가운데 그동안 지역사회 주민들의 증언으로 진상을 규명해왔지만 정부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있다"며 일본 정부의 성의있는 조치를 재차 촉구했다.
91년 전 간토대지진 때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등의 유언비어가 확산하면서 6천 명 이상의 조선인들이 일본 군인과 경찰, 민간인 자경단 등에 의해 학살된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일본 정부의 진상은폐 등으로 정확한 희생자 숫자는 물론 유골의 행방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러던 중 지난해 6월 주일한국대사관 이전 과정에서 조선인 사망자 중 일부인 290명의 신상명세, 피살 일시, 장소, 상황, 학살 방식 등이 기록된 피해자 명부가 발견되면서 진상 규명의 계기가 마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