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군은 의원들과 정부 인사를 억류하면서 무력으로 중앙권력의 대체를 시도하려 했다는 점에서 사실상의 쿠데타를 감행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반군 단체의 성격도 지닌 국민군은 퇴역 장성 칼리파 하프타르가 만들고 이끄는 집단으로 카다피 축출 이후 전국에서 무장세력이 난립하는 상황에서 "이슬람 테러세력으로부터 리비아를 구하겠다"며 혼돈 정국 전면에 등장했다.
AP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국민군은 지난 1980년대 후반 창설됐다. 차드 주재 리비아군 사령관이던 하프타르가 1987년 리비아-차드 전쟁의 포로 신분에서 풀려난 직후다.
당시 차드 내 병력을 인정하지 않던 카다피는 포로로 잡힌 하프타르의 존재 역시 부인했다. 1969년 카다피를 도와 국왕 아드리스 1세를 몰아냈던 하프타르는 이를 계기로 카다피에게 완전히 등을 돌려버렸다.
그는 이후 미국으로 망명해 카다피 축축 등을 목표로 내세운 채 국민군 조직 확대에 나선다. 이어 20여년을 기다린 끝에 2011년 3월 카다피 반군의 '넘버 3' 지상군 사령관(중장)으로 리비아에 복귀해 카다피 축출에 크게 기여한 뒤 은퇴했다.
현역 은퇴와 함께 사라지는 줄 알았던 하프타르가 정국에 재등장한 것은 지난 2월이다. 인터넷에 동영상을 올리고 '리비아를 테러세력으로부터 구출하겠다'는 선언과 함께 이슬람계가 장악한 의회의 해산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리비아 정부와 의회는 당장 이를 '쿠데타 선언'이라고 비난하며 경계했지만 그는 아랑곳 않고 실력행사에 들어갔다. 이달 17일 벵가지의 이슬람 무장단체 기지에 대한 공격이 대표적이다. 국민군의 이 공습으로 최소 78명이 사망했다.
국민군은 이 여세를 몰아 다음날 최고 정치 기구인 제헌의회(GNC)까지 타깃삼아 결국 의사당 공격에 나선 것이다.
이런 군사 작전을 도모할 역량을 갖춘 국민군은 공군과 특수부대가 따로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큰 것으로 파악되지만 그동안 조직 실체의 전모가 자세히 드러나지 않았다. AFP 통신은 "정부군과 일부 무장단체, 치안 불안에 시달리던 부족들이 국민군을 지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각에선 하프타르가 미국의 지원을 받는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가 미국 망명 당시 중앙정보국(CIA) 본부 근처에 장기간 머물렀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1990년대 한 아랍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도움으로 카다피를 제거하기 위해 군사력을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고 AP 통신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