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발생 한달 동안많은 추모객들이 합동분향소를 찾아 안타까운 죽음에 대해 애도의 눈물을 흘렸다.
전국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는 2백만 명에 가까운 추모객이 찾았고 안산 합동분향소에만 52만여 명의 시민들이 찾아 추모했다.
사고 한 달을 맞은 안산 합동 분향소는 사고 초기에 비해서는 한산한 모습이지만 아직도 전국적으로 많은 시민들이 찾아오고 있다.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아내와 함께 강원도 동해시에서 왔다는 조규성씨(57세)는 "아직도 우리나라에는 비리가 많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됐다"며, "이 부패의 고리를 끊지 못한다면, 나라가 제대로 유지되지 못할 것 같다"며 우려했다.
양대홍 사무장 가족, "승무원 가족이라 죄송했습니다"
한편, 사고 당일 '아이들을 구하러 가야한다며 통장에 있는 돈으로 자녀들의 등록금을 내라'는 마지막 말을 남겼던 세월호 선원 양대홍 사무장. 양 사무장은 사고 한 달 만에 결국 싸늘한 주검으로 가족들 품으로 돌아왔다. 그의 큰 아들은 고등학교 3학년, 작은 아들은 중학교 2학년이다.
양 사무장이 일부 승객들을 구출했다는 증언이 알려지면서 의사자로 지정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사고 초반만해도 가족들은 죄인처럼 숨죽여 지내야했다고 한다. 승무원의 가족이기 때문이었다. 고인의 작은 형 양석환씨(49세)는 사고 소식을 듣고 진도로 내려갔지만, 승무원의 가족이기에 드러내놓고 슬퍼할 수도, 체육관에도 들어갈 수도 없었다며 사고 초반 힘들었던 마음을 털어놨다.
늘 약자를 먼저 살폈던 고 양대홍 사무장은 가족들에겐 자상한 남편이자 아버지, 팔순이 넘은 어머니에게는 가장 효심 깊은 막내아들이었다. 큰 형님 양대환씨(57세)는 동생의 죽음을 당분간 어머니에게 말씀드리지 못할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한편, 인천시 서구청은 세월호가 침몰하는 위급한 상황에서 "아이들을 구해야 한다"며 배와 운명을 함께 한 양대홍 사무장에 대해 의사자 선정 절차에 들어갈 계획이다.
세월호 참사 발생 한달. 희생자의 유가족들과 실종자 가족들의 눈물은 아직도 마르지 않고 있다. 그들의 눈가에서 눈물이 마를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줘야 할 역할은 살아있는 자들의 몫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