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장과 기관사, 항해사 등의 당시 행적을 추적해본다.
4월 16일 오전 8시 32분. 세월호가 맹골수도를 지날 당시 선장은 조타실에 없었고, 한 번도 이곳을 항해해본 적이 없는 3등 항해사 박 씨가 배 키를 잡고 있었다.
박 씨는 특히 조타수 조모 씨에게 변침(배의 방향을 바꾸는 것)을 일임한다.
오전 8시 48분. 조타수 조 씨는 오른쪽으로 변침을 시도하다 원하는 대로 되지 않자 당황했고, 조타기를 멋대로 큰 각도로 돌려버렸다. 5도만 돌아가야 할 조타기는 15도나 돌아갔다. 배는 왼쪽으로 기울었고 화물들이 한쪽으로 쏠린다.
이때부터 배의 복원력이 상실된다.
8시 49분 배는 점점 더 왼쪽으로 기울면서 엔진은 정지된다.
8시 52분. 세월호는 조류의 영향으로 타원형을 그리다 해상에 멈춘다.
8시 55분. 침실에 있던 이준석 선장과 1등 항해사 강모 씨, 기관장 박모 씨, 2등 항해사 김모 씨 등이 조타실에 모인다.
8시 55분. 2등 항해사 강 씨는 제주해상교통관제센터(VTS)에 "본선이 위험합니다. 지금 배가 넘어갑니다"라며 구조를 요청한다.
오전 9시. 조타실에 머물던 선원들은 제주 VTS로부터 "인명들 구명조끼를 착용하시고 퇴선할지 모르니 준비 해달라"는 교신을 들었다. 그러나 승객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이 때 선장은 기관사 박 씨에게 "기관실로 내려가보라"는 지시를 했고, 박씨는 5층 조타실에서 3층 복도까지 계단으로 내려갔다. 그때까지도 배 안의 계단을 통해 오르내리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9시 6분. 기관사는 조타실로 올라와 30분까지 구조선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바로 옆 복도에서 조리사 김모 씨가 머리에 피를 흘리며 신음하고 있었는데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김 씨와 조리원 이모 씨는 한 달이 지난 16일 오전 현재까지 실종 상태다.
9시 21분과 23분. 진도 VTS는 "둘라에이스호가 부근에 대기중이니 승객들이 탈출하면 구조하겠다"고 세월호에 알린다.
진도 VTS는 세월호 선장 등에게 계속 "구명동의를 입히도록 하라"는 등 탈출에 대비한 지시를 한다.
9시 25분 "선장이 판단해 탈출시키라"는 교신을 내리지만 선장과 항해사 등은 자신들의 탈출 준비만을 한다.
이때 매니저 박지영 씨는 3층에서 무전기로 "어떤 조치를 해야하느냐"고 수 차례 물었지만 선장과 항해사는 응답하지 않았고 승객들의 탈출을 위한 슈터(미끄럼 장비)와 구명뗏목을 투하하지도 않았다.
9시 26분과 27분. "경비정 10분 내 도착. 1분 후 헬기 도착"이라는 교신이 왔지만 선장과 항해사 등은 승객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오전 9시 34분. 세월호의 침수한계선이 이미 물속에 잠겼다.
이때부터 선장 등 선원들은 배를 버리고 탈출을 시도한다.
오전 9시 39분. 기관실 선원들은 자신들만 아는 통로를 통해 해경 구조단정에 올라 구조됐다.
오전 9시 46분. 선장과 항해사 등 조타실의 선원들도 해경 123호 소속 구조단정에 탑승했다.
이준석 선장은 배가 정지한 8시 52분부터 배를 버린 9시 46분까지 근 한 시간 동안 학생들이 대다수인 승객들의 안전을 위한 그 어떤 구호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안상돈 검경합동수사본부장은 "이준석 선장 등은 승객들을 퇴선시키지 않을 경우 익사하게 된다는 것을 명백히 인식하고 있었다"며 "내가 살아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했다는 진술도 있다"고 밝혔다.
선장과 항해사 등의 이런 행동을 미뤄 볼 때 "선실에 대기하라"는 안내방송을 끝까지 고수하며 탈출 지시를 내리지 않은 것이 자신들만의 안전한 구조를 염두에 둔 것으로 밖에 해석할 수 없다.
승객들이 우르르 밖으로 나올 경우 자신들의 구조 순위가 1순위에서 후순위로 밀릴 것을 우려한 극도의 무책임한 처신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 한꺼번에 500명에 가까운 승객들이 한쪽으로 몰릴 경우 기울고 있는 배의 침몰 속도가 빨라져 자신들이 구조되지 못할지 모른다는 개연성을 염두에 둔 행동으로 볼 수도 있다.
사실 이 때문에 승객 탈출 방송을 끝까지 외면했다는 의문이 강하게 든다.
검경합동수사본부는 그러나 이러한 의문에 대해서는 해명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