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중독' 송승헌 "탐미적 베드신…현장은 전쟁터였다"

[노컷인터뷰] 운명적 사랑 불태운 장교 진평 열연…"배우로서 갈증 덜어"

배우 송승헌
'이 일을 계속 해야 하나….' 20대 시절 내내 배우 송승헌(37)을 따라다닌 고민이었단다. 그 나이라면 누구나 거치는 진로에 대한 두려움도 섞여 있었으리라. 나이 서른 무렵 군대를 다녀오니 스스로 만들어 둔 울타리 안에서 안주하려는 자신을 발견했다는 그다.
 
15일 서울 삼청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난 송승헌은 전날 개봉한 주연작 '인간중독'을 통해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는 배우로 거듭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그래서일까. 극중 송승헌이 연기한, 1969년 군관사 안에서 부하의 아내와 치명적인 사랑을 나누는 엘리트 장교 진평에게는 이러한 그의 목마름이 진하게 배어났다.
 
- 배우로 거듭나고 싶다는 갈증이 상당해 보이더라.

"김대우 감독님의 작품이라는 것만 알고는 아무런 사전정보 없이 인간중독 시나리오를 봤는데 진평이라는 인물 자체가 몹시 하고 싶었다. 그의 사랑법이 맹목적이고 무모해 보이기도 했지만 저렇게까지 사람을 좋아할 수도 있다는 데 확 끌렸다. 사실 결혼을 한 남자가 유부녀, 그것도 부하의 아내를 사랑하다는 설정이 부담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안하면 후회할 것 같았다."
 
- 드라마와 달리 대중의 머릿속에 각인된 영하가 없다는 데 마음 고생이 컸을 텐데.
 
"개인적인 성향의 영향도 있었던 것 같다. 20대 때는 드라마의 타이트한 시스템, 그러한 현장 분위기에 익숙했던 것 같다. 2시간 분량의 영화를 만드는 데 반 년을 투자한다는 게 지루했고, 연기를 일로만 생각하던 시절이다. 그러다보니 익숙한 드라마를 선호했고, 영화 배우로서 관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이미지를 만드는 데 소홀했던 듯 싶다. 지금은 60대가 돼도 연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다. 신인 배우의 자세로 이번 작품에 임했다."
 
- 촬영장에서 신인 배우 송승헌은 어땠나.
 
"10년 넘게 연기를 해 온 입장을 버리고 감독님의 모든 주문을 받아들였다. 시선 처리에서부터 대사 톤까지 세세하게 짚어 주시더라. 하던 대로 못하니 답답하기도 했다. 감독님께서는 진평의 성격이 내성적이고 소극적이니 상대와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게 하시고, 대사도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도록 신경쓰라 하셨다. 초반에는 답답하기도 했지만, 그러한 진평이 있었기에 클라이맥스의 충격이 배가됐던 것 같다."
 
- 엘리트 군인 이면에 깊은 상처를 지닌 진평을 어떻게 이해했나.
 
"진평의 사랑법이 실제의 저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저런 사람이 어디에 있냐'고 할지 모르지만, 숨도 못 쉴 만큼 가슴 아픈 사랑을 했던 입장에서 진평을 이해할 수 있겠더라. 이 영화를 찍고 난 뒤부터 결혼이 더욱 어려운 일로 다가오게 됐다. 결혼했는데 진평처럼 운명적인 사랑을 만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더욱 신중해졌다고 해야 하나."
 
- 인간 송승헌의 사랑법은 어떤가.
 
"지금이라도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면 당장 결혼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사람을 만나기가 어려운 것 같다. 그래도 운명을 믿고 기다리고 있다. 첫사랑을 만났을 때도 번개가 치는 것을 느꼈었다. 물론 결혼까지 가지는 못했지만, 그런 운명적인 느낌을 주는 사람을 네 명 만났었다. 집에서는 '참한 사람 있으니 선도 보라'고 말씀하시는데 열심히 살다 보면 언젠가 만나겠지 믿고 있다."

- 운명적인 사랑에 네 차례나 실패한 만큼 체념이 생겼을 법도 한데.
 
"물론 사람을 만나는 데 있어 두려움도 생기고 신중해지기는 했다. 선배님들이 자식 자랑할 때가 가장 부러운데, 아기가 갖고 싶다고 결혼할 수는 없잖나. 어떠한 사람과 결혼을 하느냐가 중요한 만큼, 그런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다릴 마음은 아직도 충분하다."
 
- 극중 베드신에서 몸이 아름답게 담겼더라.
 
"완성본을 봤을 때 '감독님께서 베드신 수위 조절을 하셨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 촬영 분량에 비해 영화에는 짧게 들어갔다. 물론 섹스가 사랑하는 남녀에게 자연스러운 일상이기는 하지만, 우리 영화에서는 자칫 베드신에 힘을 줬다가는 주인공들의 사랑이 육체적인 것에 머무른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었다. 사실 진평과 가흔(임지연)의 사랑은 불륜이다. 관객들이 이 불륜을 의식하지 못할 만큼 가슴 찡한 사랑을 전달하는 게 숙제였던 만큼 베드신도 아름답게 담긴 것이 맞다고 본다."
 
- 베드신 촬영 당시 심적으로 힘들지는 않았나.
 
"심적으로보다는 육체적으로 더 힘들었다. 이왕 하는 거 한국 영화 어떤 베드신보다 잘 찍어보자는 마음으로 임했는데 '컷' 소리가 나면 100m 전력질주를 한 것처럼 숨이 가빴다. 정말 힘든 액션신을 찍은 기분이랄까. 베드신은 이틀 찍고 사흘 쉬었다가 다시 이틀 찍고 했다. 처음에는 '편하게 한 번에 다 찍지 왜 나누나' 했는데, 감독님이 '안 된다'고 하시더라. 아니나다를까 액션신 이상으로 힘들었다. 촬영 마치면 헉헉거리며 물부터 찾았다. 처음 베드신을 찍는다는 심적 부담도 작용했을 것이다. 첫 베드신을 찍고는 속이 후련하더라. 울타리의 문을 활짝 연 느낌. 다른 세상을 본 만큼 다양한 캐릭터를 할 수 있다는 용기도 얻었다."
 
- 진평과 가흔의 첫 베드신은 둘의 사랑이 결실을 맺는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만큼 중요했을 듯 싶다.
 
"첫 베드신이 군용차 안에서 이뤄졌는데, 의자도 뒤로 젖히지 못하는 것이었다. '저 안에서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이 앞섰는데, 감독님이 자세 하나 하나까지 시범을 보여 주셨다. 스태프를 상대로 하다가 그마저 여의치 않으면 베개를 붙들고 시범을 보이셨다. 그런 모습이 코믹하기도 했지만, 감독님의 배려를 느낄 수 있어 좋았다."
 
배우 송승헌
- 꾸준히 관리한 몸이라는 인상을 주더라.
 
"평소 운동을 좋아하지만, 화면으로 보기 좋은 몸은 그런 관리로는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다이어트가 필요했다. 전문가들이 말하길 몸을 만들 때 운동은 20%, 음식 조절이 80%라고 한다. 인간중독을 찍으면서 어떤 작품을 할 때보다도 배가 고팠다. 당시 맥주, 김치찌개, 떡볶이처럼 맵고 짠 자극적인 음식 생각이 간절했다. (웃음)"
 
- 극중 진평이 줄담배를 피우던데 힘들었겠다.
 
"10년 동안 끊었던 담배를 촬영 들어가기 전에 다시 피우며 준비를 했다. 촬영에 들어갔는데 끊임없이 담배를 피우니 목소리가 안 나오더라. 그래서 금연초로 대체했는데, 금연초에 중독됐었다. (웃음) 진평은 와이프와 섹스를 마치고, 밥을 먹은 뒤, 사무실에서도 줄담배를 피운다. 어릴 때 우리 아버지들도 안방에서 담배 태우시지 않았나. 진평의 담배는 그 시대의 특징과 심리적 불안감을 나타내려는 효과였을 것이다."
 
-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을 꼽는다면.
 
"진평이 가흔을 좋아하게 되면서 춤을 배우는 장면이다. 사랑이 싹트기 시작하는, 어린아이처럼 열심히 배우는 모습이 귀엽기도 했다. 하나 더 꼽자면 제 신은 아니지만, 전혜진 선배가 '너희들은 누가 죽자고 따라다니면 어쩔래?'라고 묻는 장면이다. 우리 영화의 메시지가 함축된 대사였다고 본다."
 
- 관객들에게 인간중독을 선보이게 된 소감은.
 
"영화로 흥행 면에서 재미를 본 적이 없다. 상업 영화인 만큼 흥행이 잘 됐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무엇보다 '송승헌이 새로운 시도를 했네' '배우 냄새가 나기 시작하네'라는 이야기를 듣는다는 점이 좋다. 지난해 10월 촬영에 들어간 뒤로 그 전에는 들어오지 않던 배역들도 제안이 오고 있어 기쁘다."
 
- 영화 홍보차 TV 예능 프로그램에도 많이 출연하던데.
 
"작품 때문에 나간 것은 처음이다. 그동안 예능을 안 한 것이 이미지 관리 차원은 아니었다. 말주변도 없고,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어서 체질적으로 안 맞는다고 생각했다. 3, 4년 전부터 SNS가 활성화되면서 글 하나 올리면 팬들로부터 좋은 반응이 오더라. 무대 뒤 모습을 보여 주는 것에 굉장히 좋아하시더라. 예능도 그런 생각에 나갔다. 감독님, 배우들이 함께 나가고 평소 친분이 두터운 (신)동엽이 형도 함께하니 편했다. 지난 10년 동안 쌓아 둔 재밌는 이야기를 이번 예능 출연으로 풀었다. 이제 10년 뒤에 또 나갈 수 있으려나? (웃음)"
 
- 닮고 싶은 배우가 있는지.
 
"국내에서는 (이)병헌이 형과 최민식 선배님. 병헌이 형은 드라마 '해피 투게더'에서 함께했고, 앞서 제가 신인 때 단역으로 출연한 '아름다운 그녀'에서도 지켜봤던 선배다. 비주얼과 연기 면에서 모두 인정을 받은 배우로서 롤 모델이다. 최민식 선배님은 저와는 그릇이 다른, 색이 다른 배우이지만 선배님이 지닌 아우라를 항상 부러워하고 있다. 외국 배우 중에서는 덴젤 워싱텅. '트레이닝 데이'에서 주인공을 괴롭히는 악역을 하는데 압도적인 내공에 놀랐다."
 
- 김대우 감독이 노출 수위가 더 높은 작품을 제안해도 출연할 텐가.
 
"인간중독을 찍으면서 감독님께 노출 수위에 대해 물어본 적도, 의문을 품은 적도 없다. 진평의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었으니,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보다 더한 노출을 필요로 하는 영화는 아마 앞으로 나오기 쉽지 않을 것이다. (웃음) 무엇을 따지겠는가. 김대우 감독님 작품은 무조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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